헤어진다는 것 안에는 멀어지는 힘과 함께 돌아오는 힘이 작용하는 것 같다. - P220

자신은 빛을 발하지 않는다. 죽어서 재가 되면 아무것도 남지않는다. 아니,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죽어서 남는 것이 있다.
면 그것은 말이 아닐까, 하고 아유미는 생각한다. 내가 아버지에게 했던 말, 어머니에게 했던 말은 한순간 공기를 진동시키고 차례로 사라진다. 그래도 부모님의 기억 속에 몇몇 말의 단편은 남을지도 모른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귓속에 머무는 기억으로 남는 일이 있지 않을까. - P224

"그런 건 전혀 남지 않네. 개한테 과거는 없어. 번식은 있어도가족 같은 것은 없지. 같이 자라며 훈련을 쌓으면 썰매를 끄는한 무리를 만들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건 가족과는 다르다네.
그냥 무리지, 무리.
~~ (중햑) ~~" - P247

"천문학은 아마 학문의 최초, 원점 같은 것이지요. 지금은 우주물리학이라고 하나. 세계의 성립과 법칙을 밝히려는 최첨단 학문이지요. 지구가 전쟁으로 완전히 변해버려도 올려다볼 별이 가득한 하늘은 변하지 않아요. 천문학은 태양의 수명을 알고 있고요. 경제학은 십 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도 답할 수 없어요. 천문학에 비하면 덧없는 학문이지요." 우주에 대한 오해를 지적하는 것은 간단했지만 ‘덧없다‘라는 의외의 말이 귓가에 남아 아유미는 그저 잠자코 있었다. - P258

"신앙이 반드시 사람을 구한다, 잔인하지만 그런 건 없습니다. 각자에게 찾아오는 위기에 정답은 없는 것입니다. 모든 장면에서 항상 정답은 없습니다. 만약 신앙보다 먼저, 빛보다도 먼저 길 잃은 사람에게 닿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연민을 느끼는 마음도 아니고, 눈물을 흘리는 눈도 아닙니다. 그저 들어주기만 하는귀입니다. 얼마나 귀를 쫑긋 세우고, 얼마나 귀를 기울일 것인가. 이걸 잘못하면 바닥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에 두레박을 떨어뜨리고 맙니다. 줄도 같이 말입니다. 두 번 다시 끌어올릴수 없게 됩니다. 밑바닥에 있을 지하수도 바싹 말라버립니다. 듣기에는 간단한 것 같지만 어렵습니다. 만약 입으로 말을 해야 한다면 완전히 다 듣고 난 후 주뼛주뼛해야 하는 겁니다." - P269

인간이 그림을 그리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것을 형태에 의탁하는 일이다. 말은 부자유하다. - P270

등산가는 산 정상에 서면 자신의 몸이 절반 이상 죽음 쪽에 서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죽음은 무표정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중요한 이웃이다. - P280

남동생인 하지메를 보고 있으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을 수밖에 없는 역할은 누나를 가진 동생의 숙명인가, 하고 느낄 때가 있다. 동생은 다정하다. 하지만 그것은 누나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심약함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 P319

전파를 받아 천체를 관측하는 것도, 화재로 그림을 보는 것과어딘가 유사하다. 전파망원경은 측정된 수치만을 전해준다. 최초의 데이터만으로는 별들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은 숫자나 계산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그건 실마리에 지나지 않지. 항성, 성운의 모습을 파악할 때는 일단 숫자를 나보지 않으면 안 되네. 떠나보내면 이제는 상상력이야. 점과 점을 잇는 것은 숫자가 아니지. 가설은 상상력에서만 생겨난다네.
마지막에는 언제나 자, 어떤 재미있는 거짓말을 해볼까, 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편이 낫지." - P362

가족은 가족을 어색하게 보낼 수밖에 없다. 이치이는 아유미가 숨을 거두기 전에 아유미를 편안하게 보내는 절차를 조용히 혼자, 아니 누나와 둘이서 순조롭게 밟았다. 그때 누나는 이미 죽음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라고,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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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복잡하고 무르다. 사소한 일로 감정을 곤두세우며 정색을 하고, 뒤로 물러설 수 없는 데까지 일부러 자신의 발을 차내며 얇은 판을 밟아 구멍을 내버린다. 남자 동급생들처럼 이치이에게도 그런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달갑지 않은 발견이었다. 하지만 왜 그런 걸까. - P129

동생과 자신은 피로 이어져 있어도 어떻게 생각하든 다른 인간이다. 타인이 겉으로 보면 아주 닮았다고 해도. - P132

"그런 존과 폴의 조합이 있었기에 비틀스는 그렇게까지 될 수있었던 거지. 운명이고 조합이고 노력이야. 인간은 절대 피가 아니라고." - P134

풀리는 대상조차 되지 않고 눈에 띄지도 않은 채 태곳적부터 이어지고 있는 생태나 현상, 기능이나 구조는 아직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이 생각만으로 아유미의 가슴속 깊은 곳에 뭔가가 반짝 켜지고 심근에 미약한 전류가 흐르며 고동이 세지고 빨라진다. 세포가 싱싱하게 기뻐하는 것을 느낀다. - P167

하지메의 주위에는 투명하고 단단한 담이 둘러쳐져 있었다. 담장은 바깥에서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기력은 있으니까, 한동안 담장 안쪽에서 느긋하게 지내면 되겠지. 살아가는 데는 괴로운 일도 있지만 세포 하나하나가 들끓는 기쁨도 있다. 그런 것을 도저히 말로 전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 P182

신조는 영화 말미에 도모요 몰래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쳤지만 도모요는 전혀 감동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여자다. 남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여자를 찾으려 한다. 결혼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난 절대로 안 할 것이다. 영화 관람 직후에는 그렇게 다짐할 정도였다. - P192

떠 있을 때의 기쁨과 두려움은 자신이 혼자라고 느끼는 것과 비슷했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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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동안 수업은 점점 더 전문적이 되어갔다. 그것에 반비례하여 학생에 대한 교사의 열정은 잦아들었다. 공부를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학생에게 달렸다는 덤덤한 느낌은 어느 교사에게서나 공통되었다. 학생도 교사와 거리를 두게 되어 아무도 ‘××선생‘이라고 하지 않았다. 심약해 보이는 아이까지 포함하여 남학생은 다들 뒤에서 교사를 성으로 막 불러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부모나 교사와 자신사이에 있는 거리를 점점 넓혀가는 거라고 아유미는 고지식하게 생각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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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과 모래, 비늘, 물고기 피 등 흘러나오는 것을 수상히 여기지 않고 그대로 신속하게 배수구로 옮기는 개수대는 대범하고 자기 방식대로 사는 첫째 가즈에. 말을 하지 않는 조리대는 얌전한 둘째 에미코, 부우 하는 소리와 함께 파란 불꽃을 올리며 주전자 소리를 시끄럽게 내는 가스레인지는 셋째 도모요. 훌륭한 역할 배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찬동해주는 누군가가 옆에 있는 것은 아니다. 도요코에게 말해봤자 노여움만 살 뿐이다. 하물며 본인들에게 대놓고 말할 수도 없다. - P30

십 몇 년 후 도쿄에서 신조와 결혼하게 되었을 때 요네는 남에게 넘길 수 없는 작은 것 세가지를 지참하고 시집을 갔다. 오이와케로 돌아오기 전 양부모와 셋이서 니혼바시의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 박달나무 빗, 글자가 빼곡히 적힌 녹색 수첩. - P74

"서두르는 서두르지 않는 결국 걸리는 시간은 이 초 차이도 안 나. 그런데도 서둘러 열고 닫지. 서두르고 있다고 자기주장을 하는 것에 불과해."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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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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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대 중반의 불안이 평소의 신중함과 이어져 있었다. 이런 겁 많은 자신에게 다소 넌더리가 나기도 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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