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은 나무들을 뿌리째 뽑으려고 한다. 저렇듯 부질없이 악착을 떠는 바람이란 얼마나 슬픈 힘인가! 따뜻한 난로 옆에서의 난폭한 구타 장면 구경하기, 문명을 이렇게도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 P154
사회가 사라진다고 해도, 은둔자는 은둔의 삶을 계속할것이다. 반면에 저항자들은 실업상태에 빠진다. 은둔자는 무엇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고, 다만 어떤 삶의 방식을 채택할 뿐이다. 그는 거짓을 고발하지 않고, 다만 어떤 진실을 추구한다. 그는 물리적인 위해를 가할 수 없는 존재이며, 사람들은 마치그가 야만인과 문명인을 중개하는 집단에 속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를 용납한다. - P167
지구를 자기 방으로, 동물들을 자기 장난감으로, 나무들을 자기 노리개로 생각하는 변덕스러운 아이들이다. - P195
용기 있는 태도는 사물을 직시하는 것이리라. 나의 삶과 나의 시대와 기타 다른 것들을 똑바로 쳐다보아야 할 것이다. 낭만적인 사람들은 향수와 우수와 몽상이 어떤 의로운 도피라는환상을 품는다. 이것들은 세상의 추함에 대한 멋진 저항의 수단들로 간주되지만, 실은 비겁함을 숨기는 가리개일 뿐이다. 나는 누구인가? 세상에 겁을 먹고, 숲속 깊은 곳 오두막에 숨어든 비겁자이다. 자기 시대의 광경을 보지 않으려고, 모래톱을 거닐다가 자신의 양심과 마주치는 일을 피하려고, 조용히 술에 취하는 겁쟁이일 따름이다. - P204
아아, 그러나 우리는 같은 물에 두번 다시 몸을 담그지 못한다. 깨달음은 결코 반복되지 않는다. - P241
행복하다는 것은 지금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아는것이다. - P256
글쓰기, 그리기, 고기잡기. 시간에 경의를 표하는 세 가지의 방식이다. - P263
한대의 밀림은 식물의 박물관이고, 열대의 정글은 엽록소의 실험실이다. - P275
내가 누리는 사치? 그것은 매일, 내 욕망의 처분만을 기다리며펼쳐지는 24시간이다. 시간들은 나를 섬기기 위해서 햇빛 속에서 일어서는 순백의 처녀들이다. 만일 내가 이틀 동안 침대에 뒹굴며 소설책 한 권을 읽고 싶다면,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을까? 또 땅거미가 질 때 숲속에 들어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누가 그것을 말릴 수 있을까? 숲속의 고독한 인간에게는 사랑의 대상이 둘 있으니, 하나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공간이다. 첫 번째 것은 그가 마음대로 채울 수 있고, 두 번째 것은 그가 이 세상 누구보다 잘 안다. - P281
곤충의 자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은 마침내 풀들에게 한 세계의 차원을 부여하는 것이다. - P282
숲의 인간은 일종의 에너지 재활용 기계인 셈이다. 숲에 의지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동차가 없으니 은둔자는 걸어다닌다. 슈퍼마켓이 없으니 낚시를 한다. 보일러가 없으니 손수 장작을 했다. 이런 비위임(非委任)의 원칙은 정신에도 적용된다. 텔레비전이 없으니 책을 펼친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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