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좋았던 시간에 - 김소연 여행산문집
김소연 지음 / 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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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사지들을 두루 방문하고 나서 내게 남은 잔상은 오로지 이끼였다. 햇빛이 비스듬한 시각, 곁에 있는 사람의 옆얼굴에서나 보이던 솜털 같은 이끼. 길에 카펫처럼 깔린 이끼, 바위를 망토처럼 덮고 있는 이끼, 불상에 표정처럼 끼인 이끼. 팔다리나 머리가 잘린 채로 훼손된 석상도 아름답게 감싸며 세월의 깊이를 풍겨오던 이끼. _ 이끼 순례 중 - P158

모두가 찾아와 사진에 담게 되는 나무라서 좋다. 누가 사진에 담아도 멋질 수밖에 없는 멋지게 생긴 나무라서 더 좋다. 무엇보다 이나무를 맨 처음 만났던 그 거실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다. _ 누구나의 나무 중 - P182

복잡한 네트워크 안에서 맺어진,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관계 맺기가 아니라 그냥 지나칠 사람에게서 그냥 지나칠 정도의 따뜻함을 살포시 얹어보는 수수한 마주침. 통성명 없이도, 전화번호를 교환하지 않은 채로도, 누군가와 마주하는 일. 목소리는 조금 퉁명스러워도 표정에는 구수함이 묻어 있다거나, 이마에 흐른 땀을 옷소매로 훔쳐내면서 인심을 쓰며 씨익 웃는다거나, 그렇게 실재하는 사람을 마주치는 일. 돌아서는 뒷모습에다 대고 기약 없이 또 보자고 괜히 한마디를 얹어보는 일. 나와 유관할 리 없는 이에게서 얻는 수수하고 별것 없는 다정함. 내가 요즘 가장 간절하게 되찾고 싶은 감각이다. _ 수수한 마주침 중 - P243

결속력 없이도 행할 수 있는 다정한 관계, 목적 없이도 걸음을 옮기는 산책, 무용한 줄 알지만 즐기게 되는 취미생활, 이름도 알지 못하는 미물들에게 잠깐의 시선을 주는 일,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 싱거운 대화, 미지근한 안부 식물처럼 햇볕을 쬐고 바람을 쐬는 일. 인연이 희박한 사람, 무관한 사람, 친교에의 암묵적 약속 없는 사람과 나누는 유대감. 이 수수한 마주침을 누리는 시간이 나는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간에 사람은 목소리와 표정과 손길로 실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_ 수수한 마주침 중 - P245

좋은 시간을 보낼 때에 휴대폰을 꺼내지 않는다. 그러는 게좋은 시간에 대한 나의 예의라고 여긴다. 그럴 때는 당연히 카메라도 꺼내지 않는다. 꺼낼 생각을 하질 못한다. 주로 좋은 순간들을 잘 겪고 난 이후에나 사진을 찍는다. 잔향처럼 좋은 공기가 나를 둘러싸고 있을 때에 그 좋음이 내 눈망울에 담겨있을 때에, 내가 찍은 사진을 나는 마음에 들어 한다. 아주 드물게, 그런 식으로 평생 간직할 한두 장의 사진이 생긴다. _ 공기 중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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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좋았던 시간에 - 김소연 여행산문집
김소연 지음 / 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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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늬와 마주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사람의 뒷모습에 대해.
사람의 진짜 뒷모습은 뒤통수가 아니라
발자국이라는 사실에 대해.

_ 무늬의 뒷모습 중 - P79

모르는 사람의 뒤에 앉아 그의 등을 꼭 껴안고 바람을 가르며 밤길을 달려본 유일한 날이었다. _ 길을 잃고서 만난 사람 중 - P102

두 사람

어떻게 한 사람은 두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도대체 얼마만큼 서로 멀리 있다가
그 옆으로 나타나게 된 것일까.

한 사람은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함께 지낸 어제를 두 사람은
얼마나 비슷하게 기억할 수 있을까.

지금 두 사람에겐 아무것도 없다.
한 사람만이 있다.

해는 서서히 식어 붉어지고
바다 너머로 사라지고

바다 건너 먼 곳으로부터 한 겹 한 겹 파도가 도착한다.

_ 두 사람 중 - P104

시골마을


목적지보다는
목적지에 가다가 만난
시골 마을이 더 좋았다.

시골 마을보다는
시골 마을의 사람없는 골목이
더 좋았다.


사람 없는 골목보다는
심야에 혼자 불 켜진 라멘집이
더 좋았다.


라멘을 먹는 일보다
라멘을 먹고 돌아온 숙소의
따뜻한 이부자리가 더 좋았다.


백년 전에 지어진 집의 삐걱이는 마루를 걷는 일.
백년 전부터 그 자리에 놓인 낡은 반닫이 서랍을 열어보는 일.
백년 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나란히 두고 보는 일.


목적지에 가서
따뜻한 음료수 한병 사 먹고
차가운 공기 속을 걸어가는 일.


목적보다는
목적한 적 없는 것들이
언제나 좋았다.

_ 시골 마을 중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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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바꾸는 생각들 - 유발 하라리부터 조던 피터슨까지 이 시대 대표 지성 134인과의 가장 지적인 대화
비카스 샤 지음, 임경은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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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프라임을 텍스트로 보는 느낌이다. 주제 하나하나가 생각을 하게 하는 내용들이지만, 정체성부터 민주주의까지...자신의 생각부터 석학(?)의 생각까지 읽어보면서 고민해보는 그런 책이다.

갠적으로 리더십과 기업가정신을 다룬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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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지음 / 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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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을 지키기 위해 지나치게 용의주도해지고 지나치게 예민해진다. 그래서 아무것도하지 않아도 피로하고 피로하다. 조여오는 것들에 적절하게 저항하는 것만으로도 지치기 일쑤다. 어떨 때는 멍청이가 된것 같고, 어떨 때는 비열해지는 것만 같고, 어떨 때는 비루해지는 것만 같고, 대부분 낙오되는 것만 같다. _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 중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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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바꾸는 생각들 - 유발 하라리부터 조던 피터슨까지 이 시대 대표 지성 134인과의 가장 지적인 대화
비카스 샤 지음, 임경은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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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과 갈등은 경제, 정치, 사회 영역의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혹은 이 요인들의 결합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인종과 종교는 전쟁에서 대중을 선동하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저는 종교 자체가 전쟁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전쟁에는 거의 항상 돈과권력이 얽혀 있어요. _ 갈등 중 - P310

"저는 종교 자체가
전쟁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전쟁은 거의 항상 돈과 권력이 얽혀 있어요.
인종과 종교 외에 전쟁에서
대중을 선동하는 또 다른 수단은
상대편을 ‘그들‘로 규정하고
‘우리‘보다 못한 존재로 보이게 하는 겁니다."
-- 조디 윌리엄스

_ 차별 중 - P313

모든 인간에게는 잠재적인 공격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타고난 본능이라 해도 인간은 교육과 훈련으로 억제할 수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학교 역사 수업에서 전쟁을 비난하기보다 숭상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분쟁과 전쟁으로 얼룩진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학교의 역사 수업 내용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_ 차별 중 - P317

"당신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되면,
그들은 더 이상
당신의 마음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 마리나 칸타쿠지노

_ 차별 중 - P327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평화를 찾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나에게 이로운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이롭고, 나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해를 끼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메시지를 다음 세대 또는 그들의 미래 사회에 평화를 이룩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 시린 에바디

_ 갈등 중 - P340

"민주주의는 개체의 총합이 아니라
변증법적 대화입니다.
즉 개인들의 생각, 열정, 아이디어가
서로에게 반영되는 것입니다."
- 야니스 바루파키스

_ 민주주의 중 - P346

"기본적으로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 정부 정책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지만, 우리는 그런 부분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데다 그와 관련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저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기의 상당 부분은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진 데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 마이클 루이스

_ 민주주의 중 - P358

정치는 누가 더 오른쪽으로 가는지, 누가 소비를 조장해 더 많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킬 수 있는지 겨루는 경쟁이 되었습니다. 결국 소비를 할 때만 자유가 허용되는 존재로서 우리는 정치의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되었죠. 정치는 하나의 오락으로 전락했고, 국민은 자신들의 의견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되었어요. _ 민주주의 중 - P362

"무엇보다 법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프레임워크를 제공합니다. 민주주의는 투표로 선출된 사람들에게 특정한 안전장치가 마련된 상황에서 법을 제정할 기회를 줍니다. 저는 법치주의가잘 정립된 사회라면 민주주의도 잘 작동할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 해리 케네스 울프

_ 민주주의 중 - P384

"정치인들이 외교 정책을 결정할 때
가장 우선순위로 고려하는 것은
국민의 주권도 아니고 국가 안보도 아닙니다.
그들의 목적과 관심은 다른 것에 있습니다."
- 촘스키

_ 민주주의 중 - P390

"세상에는 우리 내면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도록
자극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용기를 낼수록
자신의 이야기를 더 잘 들려줄 수 있습니다."
- 마야 안젤루

_ 문화 중 - P74

"훌륭한 글의 조건이요?
그건 바로 ‘진실성‘입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글은 별 쓸모가 없어요.
진실이 담긴 이야기는,
그러니까 인간과 삶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하는 이야기는
백인 노인, 아시아계 여성, 농장 주인까지 모두
‘그래, 맞아‘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할 겁니다."
-마야 안젤루

_ 문화 중 - P85

"음악은 우리 마음 깊숙이 남아서 우리가
성장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현재와 미래를 말해주기도 합니다."
• 랑랑

_ 문화 중 - P105

"식탁에는 인간의 특성이 집약되어 있으며,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문명화한 공간입니다."
- 알랭 뒤카스

_ 문화 중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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