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좋았던 시간에 - 김소연 여행산문집
김소연 지음 / 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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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늬와 마주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사람의 뒷모습에 대해.
사람의 진짜 뒷모습은 뒤통수가 아니라
발자국이라는 사실에 대해.

_ 무늬의 뒷모습 중 - P79

모르는 사람의 뒤에 앉아 그의 등을 꼭 껴안고 바람을 가르며 밤길을 달려본 유일한 날이었다. _ 길을 잃고서 만난 사람 중 - P102

두 사람

어떻게 한 사람은 두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도대체 얼마만큼 서로 멀리 있다가
그 옆으로 나타나게 된 것일까.

한 사람은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함께 지낸 어제를 두 사람은
얼마나 비슷하게 기억할 수 있을까.

지금 두 사람에겐 아무것도 없다.
한 사람만이 있다.

해는 서서히 식어 붉어지고
바다 너머로 사라지고

바다 건너 먼 곳으로부터 한 겹 한 겹 파도가 도착한다.

_ 두 사람 중 - P104

시골마을


목적지보다는
목적지에 가다가 만난
시골 마을이 더 좋았다.

시골 마을보다는
시골 마을의 사람없는 골목이
더 좋았다.


사람 없는 골목보다는
심야에 혼자 불 켜진 라멘집이
더 좋았다.


라멘을 먹는 일보다
라멘을 먹고 돌아온 숙소의
따뜻한 이부자리가 더 좋았다.


백년 전에 지어진 집의 삐걱이는 마루를 걷는 일.
백년 전부터 그 자리에 놓인 낡은 반닫이 서랍을 열어보는 일.
백년 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나란히 두고 보는 일.


목적지에 가서
따뜻한 음료수 한병 사 먹고
차가운 공기 속을 걸어가는 일.


목적보다는
목적한 적 없는 것들이
언제나 좋았다.

_ 시골 마을 중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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