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늘 안정에 의해 힘을 얻었다. 그것은 정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것은 정체였다. 이제 모든 형태의 위로는 사라졌고, 위안이라는 항목 밑에는 황폐만이 있었으며,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이질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질감, 이것은 그의 언어에서는 그에게 낯선 어떤 상태를 묘사하던 말이었다. (p. 135)
이런 뼈아픈 교훈에도 불구하고 다음 12월이면 그는 또다시 새로운 화분을 들이고 집 안에 겨울 정원 꾸미기를 시도한다. 끊임없는 순환과 반복, 그것이 바로 자연의 섭리 아니겠나. (p.196) _ 정원가의 12월 중
단지 땅속에 숨어 있기에 새싹을 보지 못하듯, 우리 내부에 자리하고 있기에 우리는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러져버린 과거의 잔여물이 풍기는 쇠락의 냄새는 곧잘 맡는다. 하지만 이처럼 노쇠하고 헐벗은 땅속에서 끝없이 움트는 하얗고 통통한 새싹은 왜 보지 못하는지!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순간이다. (p. 186) _ 준비
밥조사이에는 정치적 입장도, 소속 연구회도, 가치관도, 세대도, 성별도, 사투리도, 프로야구팀도 크게 문제될 게 없다. 그 모든 차이를 압도하는 판사로서의 고뇌라는 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밥을 다 먹은 우리는 다시 각자 책상으로 돌아가 홀로 판단하고 혼자만 책임질 글을 쓴다. 그런데 요즘 섬들의 상태가 말이 아니다. 엄혹한 시기다. (p.279) _ 에필로그 중
슬픔을 경멸하고 아픔을 회피하는 사람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뿐 타인을 위해 울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