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황홀 - 온 세상을 끌어들이는 한국의 정원
윤광준 지음 / 아트레이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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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정 석축의 아름다움을 스쳐버리면 안 된다. 납작돌만을 써서 쌓은 2단 석축의 안정감은 각별하다. 전라남도 화순에 있는 운주사의 석탑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 있다. 돌의질감과 색깔이 중요하다. 만든 이는 석축 쌓는 돌의 재질과 방법도 허투루 여기지 않은 미감을 지녔음이 분명하다.

_ 보성 열화정 중 - P223

체화정 양옆엔 배롱나무 고목 두 그루가 있다. 형제의 우의를 다지기 위해 만든 정원이니 서로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붉은 배롱나무꽃으로 둘러싸인 체화정은 여름 한 철 화려함을 뽐낸다.

_ 안동 체화정 중 - P231

만휴정 앞의 송암폭포가 얼어붙은 겨울에 이곳을 찾았다. 여름에 가보니 이런 풍경은 마주칠 수 없었다. 주변 숲의 울창함에 파묻혀버려서다. 만휴정은 우리 정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폭포가 있는 멋진 경치 속에 사람이 들어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만휴정에선 넉넉해진다. 산과 물, 하늘이 몽땅 내 것 같은 시선의 포만감을 느끼게 될 테니까.

_ 안동 만휴정 중 - P238

강을 멀리 돌아 들어와야 고산정에 닿는다. 누마루에 앉으면 이어지는 청량산과 낙동강이어우러진 풍경을 만든다. 바깥에 있는 이들은 절경 속의 고산정을 보고 안에 있는 이는 넉넉하지만 소박한 보통 풍경을 본다.

_ 안동 고산정 중 - P250

배롱나무꽃 만발한 명옥헌에 때맞춰 들른다는 건 거의 행운에 가깝다. "바쁘다 바빠!"를입에 달고 다니는 현대인에게 시간의 여유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나도 열 번 넘게 명옥헌을 찾았지만 배롱나무꽃 핀 모습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사진 속의 명목헌도 만개된 상태가 아니다. 온 산은 붉은색으로 넘실대고 내는 핏빛으로 흐른다는 소문은 언제 확인해볼 수 있을까.

_ 담양 명옥헌 중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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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스무 번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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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을 둘러보며 아내가 물었다. 아내는 그간 많은 걸 잃어왔는데 믿음이나 신뢰, 약속 같은 것만이 아니었다. 유머와 여유도 잃었다.


_ 어쩌면 스무 번 중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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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황홀 - 온 세상을 끌어들이는 한국의 정원
윤광준 지음 / 아트레이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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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선정은 우리 정원의 특징을 말할 때 제일 먼저 등장하는 ‘자연속으로 들어가 하나가 된다‘의 좋은 사례다. 와선정 주위를 살펴보면 인간이 자연 속으로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가 보인다. 원래부터 있던 숲에 인간이 거처할 공간만 있으면 되는 거였다. 시간이 흐르면 인간의 거처조차 자연의 일부로 바뀌는 동화의 과정을 거친다. 이런 상태가 되면 자연이 인간인지 인간이 자연인지 구분되지 않을 때가 있다.

_ 봉화 와선정 중 - P178

무기연당 담장 밖은 여느 마을과 다를 게 없다. 전선이 어지럽게 지나가고 주변 공단의 공장 건물이 보이기도 한다. 마을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무기연당은 그래서 보석과 같은 정원이 됐다. 숨막힐 듯 아름다운 빗속의 무기연당을 본 이후 이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겐 소나무 한 그루만으로 정원을 완결하는 능력이 있다

_ 함안 무기연당 중 - P187

소쇄원은 생각보다 돌아볼 권역이 많다. 영화로 치면 몇 부로 나누어지는 셈이다. 소쇄원에 들어오는 진입부에서 자연암반 위를 흐르는 시냇물이 있는 아랫부분 담장 밑을 뚫어 물이 들어오게 한 끝 부분이 1부다. 인간의 공간인 제월당에서 마당을 거쳐 광풍각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2부가 된다. 나는 인간의공간인 제월당에서 보이는 소쇄원 전체 모습과 차경된 산이 좋다. 산과 하늘, 흐르는 시냇물까지 다 가진 넉넉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 때문이다. 달빛 내리는 가을밤 이곳 누마루에서 들었던 가야금 연주는 평생 잊지 못할 듯하다.

_ 담양 소쇄원 중 - P195

소쇄원은 타협 없는 성품으로 인간의 바른길을 찾으려는 지식인의 현실 도피처였다. 정원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 짐작할 대목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수양과 기억의 환기를 위해 이곳을 만들었을 뿐이다. 양산보가 꿈꾸었던 이상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설명하기 어려운 관념은 직설보다 상징적은유법으로 전달하는 게 효과적이다. 대나무 숲, 나무와 풀, 바위, 흐르는 물과 들리는 소리까지.. 계절이 바뀌고 날씨와 기온에 따라 달라지는 하루하루의 인상은 상징을 입고 더 큰 의미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_ 담양 소쇄원 중 - P200

《택리지>에서 이중환은 이렇게 말했다. "산수가 없으면 감정을순화하지 못하여 사람이 거칠어진다. 산수란 멀리서 보면 큰 포부를 갖게 해서 인물을 만들어내고 가까이서 보면 마음이 깨끗해지고 즐거워진다." 서원을 하나같이 산수 경치 빼어난 곳에 들어서게한 이유다. 그 가운데서 으뜸이 병산서원이라는데 아니라고 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_ 안동 만대루 중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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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황홀 - 온 세상을 끌어들이는 한국의 정원
윤광준 지음 / 아트레이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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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좋은것은 감추어져 있어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정원이란 처음 만들기가 어렵다. 그다음은 시간의 몫이다. 제자리에 안정된 나무와 숲은 원래 있었던 것 같은 자연스러움으로 커진다. 영속의 자연이 정원의 아름다움과 힘을 키워주는 셈이다. - P114

일본 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문화적 사치의 용인을 드러내는 킨카쿠지다. 건물에 순금을 씌워 장식했을 정도이니까.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로더 유명해진 곳이다. 그 앞의 경호지와 소나무 섬의 구산팔해석은 스쳐버리기쉽다. 둘이 어우러진 킨카쿠지 정원을 보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 P131

슈가쿠인 리큐에선 우리나라의 누정에서 보던 풍경과 너무 흡사하다는 데 놀라게 된다. 일본 황실의 뿌리가 백제계라는 걸 알면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 P136

처음엔 커다란 나무가 가로막고 서 있는 삼은정을 지나칠 뻔했다. 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에 들어서니 헝클어진 머리칼처럼 얽혀 있는 나뭇가지가 심란했다. 공간을 보면 사람이 읽힌다. 정원은 작정하고 스스로를 유폐시키려는 듯했다.

_ 밀양 삼은정 중 - P154

피하지 못하는 사람과 나라, 세상까지… 어쩔 수 없이 그들과살아야 하는 인간의 선택은 제 눈을 감는 거였다. 삼은정은 외부의 시선을 거둬 자기만의 세계를 꿈꾸었던 인간의 도피처였다. 다시 삼은정을 보니 땔감과 물고기, 술은 그럭저럭 해결했을 듯하다. 하지만 함께할 친구가 없는 적적함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정원 안에서 계속 드는 의문이다.

_ 밀양 삼은정 중 - P160

높이의 차를 두면 시선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다. 전자는 볼거리가 먼저이고 후자는 보는 사람을 우선한 정원이 된다는 차이가 있다.

_ 아산 송화댁 중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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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황홀 - 온 세상을 끌어들이는 한국의 정원
윤광준 지음 / 아트레이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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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은 지루하고 권태로운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용도였다. - P78

보르비콩트의 숨은 아름다움은 연못에 있다. 거울 효과로 성의 전모가 극적으로 다가온다. 하늘과 건물이 동시에 보이도록 거리와 크기를 감안해 만들었다. - P89

반대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더 엄청난 풍경과 마주친다. 3개의마을을 없애고 늪지를 파서 만든 운하다. 운하의 규모는 상상 초월이다. 길이는 1.5킬로미터 이상이고 폭도 60미터가 넘는다. 양편에 도열한 군사들처럼 촘촘하게 나무를 심었다. 거대한 인공 숲으로 감싼 셈이다. 운하는 파리 도심을 지나는 센강보다 크게 느껴진다. 루이 14세는 이 운하의 길이를 인간 시선의 끝점과 이어지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세상을 다 가졌다는 포만감이 시선의 독점으로 확인되길 바랐을 것이다. - P92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왕의 정원은 허망함을 환기시키는 장치 같기도 하다. - P97

스타우어헤드 정원.
원래 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영국의 풍경정원. 이런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자연의 훼손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자연의 재료들을인간이 재배치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들어가고 볼 수 있는 정원이 된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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