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의 무덤에 다녀왔다.

한참 전부터 엄마와 아빠는 당신들이 묻힐 땅을 사놓으셨고, 영정 사진도 곱게 찍어놨다. 미래의 그날이 고정된 시간이라면 한 치의 느림이나 빠름도 없이 초를 세며 다가올 테지만, 우리는 당장 내일의 일도 알 수 없기에 그날은 탄성 있는 고무줄 처럼 멀리까지 늘어난다.

 

인간이란 게 늘상 존재의 불안함을 짙든 옅든 간에 안고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된 건 엄마의 영정 사진을 보고나서다. 동년배 지인들과 같이 영정 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할 때 이미 마음이 불편했지만, 막상 곱게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의 영정 사진을 접하고 나니 심장이 무거워졌다. 막연히 언젠가는 올 거라 생각했던 그날이 내 생각보다 훨씬 가까울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었을까. 아직까지 부모형제에게 큰 사고 없이 무탈하게 지내온 지금까지의 여정이 새삼 감동스러워 울먹여져서일까. 아니면 나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거대한 심연을 잠시라도 들여다 본 것일까. 가끔 엄마 몰래 엄마의 영정 사진을 꺼내본다. 엄마가 곁에 있어도 느껴지는 먹먹함을 무기로 엄마에게 재롱도 떨어보고 청소도 가끔 해주고 용돈도 드리며 밤에는 자는 엄마의 얼굴을 자주 들여다본다.

 

작년 봄엔 엄마와 같이 쑥을 캐러 들판에 나갔다. 시장 좌판에 가면 3000원에 한 웅큼이나 쥘 수 있는데도, 차에서 내리자마자 엄마는 쑥을 캐는 소녀의 마음으로 이미 구름 위 콩밭 인양 자세를 취하고 앉았다. 늘상 다리가 아프다면서도 쑥을 캘 때는 얼마나 재빠른지 다람쥐 같았다. 쑥을 캐는 법도 몰라 어색한 나는 자꾸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오고가는 차가 없는 깊은 산중의 들판과 하늘의 흐르는 구름은 그림 속 장면처럼 정지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그날이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언젠가의 그날 이후 난, 오늘의 엄마 모습을 눈이 시리도록 기억에서 꺼내볼 거라는 걸. 먼 미래가 저만치서 날아와 내 눈에 담겼다.

 

 

 

주말에 다녀온 부모님의 산소 자리는 지금은 밭이다. 십 년도 전에 사 놓은 그 밭은 심심산천인 아빠의 고향에서도 한참을 골짝으로 들어간 곳에 있었다. 그나마 최근에 농로길이라도 나서 차가 들어갈 수 있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꼼짝없이 걸어서 십 여분을 걸어가야 되는 곳이었다. 멀미날 정도로 꼬불꼬불한 산길을 지나 넓은 들판이 나왔고, 군데군데 무덤과 상석 들이 보였다. 차에서 내려 주차를 하려니 우리 차 뒤를 따라 온 차 두 대가 빵빵거린다. 갈림길까지 내려와 길을 비켜주니, 지나가는 차들이 아니었는지 인근에 주차를 한다. 내리는 사람들의 모자와 복장을 보니 작업복 차림이다. 우리도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니 그쪽에서 아는 체를 하는 게 아닌가. 아빠 고향 사람들이었고, 우리처럼 선산 자리에 심어놓은 유실수를 관리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간만에 만난 고향 사람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지기 시작했고 우린 차에서 짐을 내렸다.

 

트렁크를 열어보니 비료 포대가 너댓 개 보였고 삽이며 호미, 낫, 가위 등이 있었다. 남동생이 비료 포대를 하나 안고 밭으로 걸어갔고, 나도 따라서 비료 포대를 하나 들어서 매실 나무가 있는 우리 밭 두렁에 놔뒀다. 차에서 매실 나무 밭까지는 100 미터 정도 되었다. 동생이 비료 포대를 또 하나 들었고, 나도 또 하나 들었다. 좀 무겁다는 느낌이 들어서 5킬로그램이나 나가려나 생각하던 찰나, 엄마와 수다를 떨던 할머니 한 분이 나를 보고 여장부라며 놀라셨다.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동생에게 비료 포대가 얼마나 나가냐고 물어보니, 20킬로그램이라고 말했다. 비료 포대의 무게를 먼저 알았다면 절대 들지 않았을 무게다. 비료 포대와 도구들, 음료수 등을 놓고 나서 밭을 둘러보았다. 300 평의 작은 밭떼기에 매실이 서른 그루 쯤 보였고, 곳곳에 더덕꽃을 메단 더덕 줄기의 흔적이 보였다. 엄마가 아침부터 우리를 현혹시켰던 문제의 더덕 줄기다. 신이 났다. 더덕꽃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 더덕줄기 밑만 찾으면 더덕은 절로 캐어지리라. 마음은 이미 더덕무침을 하고, 더덕전을 부치느라 부산하다.

 

더덕줄기는  잡풀들과 서로 엉켜 매실 나무를 어지럽게 휘감아 자랐던 흔적이 있었다. 아직은 추워 새로 돋는 더덕순은 보이지 않았다.  매실 나무에는 새순이 가지마다 들어찼다. 어디선가 듣기로 열매를 크고 튼실한 걸 얻기 위해서 가지치기를 한다고 했다.가지치기는 육체적으로는 힘들지 않고 머리를 써야 되는 일 같아서 나는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섰다. 촌사람인 엄마와 아빠는 일을 능숙하게 하려니 싶어 따라나섰건만 웬걸. 다들 엉거주춤 자세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이날까지 한 번도 만져보지도 않은 낫을 들고 나는 잡초베기를 시작했다. 매실나무 주위를 정리하려니 더덕줄기가 자꾸 몸에 걸린다. 일단 더덕을 캐야겠다. 더덕줄기를 잡아당기면서 뿌리를 찾으려 했으나 오줌줄기 시원찮은 뒷방 늙은이 처럼 더덕줄기는 밑으로 내려가면서 그 줄기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해서 다른 더덕줄기도 찾아봤으나 모두 매한가지다. 졸지에 더덕줄기를 보고서도 더덕 뿌리를 찾지 못하는 눈 먼 사람이 되었다.

 

당장 더덕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도 않은 더덕줄기는 이제 어쩐다. 어지러운 더덕줄기 때문에 매실나무는 세파에 찌든 젊은이 처럼 찌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뿌리인 더덕이 땅 속에 있으니 더덕줄기를 베어내도 무방하겠다 싶어 과감히 낫질을 시작했다. 이름 모를 잡풀들도 꽤 많이 보였는데 죄다 낫질을 했다. 낫질에 잘려 매실순 근처에 남겨져 세찬 바람에 휘날리는 더덕줄기는 손으로 잡아당겼다. 아빠와 나는 매실나무 주변을 정리했고, 동생은 정리를 마친 매실 나무 주변에 동그랗게 도랑을 만들었다. 엄마는 호미를 들고 딸기나무를 하나씩 캤다. 딸기나무는 자라게 되면 옷에 들러붙기도 하고 가시도 많고 해서 무리지어 자라기 전에 뿌리를 캐내야 되었다. 언니는 낫도 호미도 들지 않고 손으로 더덕줄기를 잡아서 떼어내더니 이내 차로 들어갔다. 다들 자기 요령껏 일을 하는 형국이었다. 나는 장장 2 시간을 쉬지도 않고 일을 마친 다음 허리를 펴고 하늘을 봤다. 불현듯 작년 봄의 하늘이 떠올랐다. 그때 처럼 엄마는 하늘 한 번 쳐다보지 않고 바지에 흙이 묻는 것도 모르고 땅만 보며 손을 놀리고 있었다. 눈에 이슬이 비치려는 찰나, 동생이 부른다.

 

 

"누나. 비료 좀 들고 와. 이제 구덩이에 비료 넣을거야. 올해 매실 농사는 풍년이다 풍년."

 

 

 

서투른 농부의 말과 함께 고정된 하늘이 다시 흐른다.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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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6 18: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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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6 18: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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