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희 몽골방랑 -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김홍희 지음 / 예담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아마도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길을 나서고, 길 위에 오르며, 길을 찾아다니지 않을까.

낯선 여행길에 만난 사람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그 사람들은 '낯섬'이라는 이유로 먼 훗날의 그리움을 앞당긴다.

 

책표지다. 표지를 들추면 검은 속지가 나온다. 나는 책의 속지 색깔을 유심히 보는 편인데 김홍희는 검은 색을 택했다.  사진이 인화되기 전의 검은 방의 느낌. 세상에 나오기 전의 어머니 뱃 속 자궁의 느낌. 검은 색은 탄생 직전의 색깔, 여명 직전의 색깔이다. 표지를 들추려다보면 왼쪽도 같이 들리는데 살짝 들여다보면 표지와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장면이 나온다. 어떤 의미일까. 김홍희는 카메라의 셔터를 깜박이는 눈에 비유한다.

 

 

 

 

어떤 것을 보는 순간은 뜬 눈이지만, 메모리가 되는 시간은 눈을 깜박이는 탄지의 순간이다. 그러니 실제로 촬영되는 어떤 광경이란 실제로는 사진가가 보지 못하는 순간이다. 그것이 카메라의 숙명이자, 사진가의 운명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찍는 척하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찍는다. (중략)

 

그것들은 내가 거기 있었다는 증언이 되어 떠돈다. 그러나 그 증언은 나는  거기 있었지만 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는 또 다른 사실의 증거이기도 하다.

 

                                                                                                           p.21

 

 

 

김홍희의 몽골방랑은 몽골 소개가 아니다. 미리 당긴 그리움으로 그동안 제법 알게 된 몽골의 풍경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새로운 것에 대한 소개도 없다. 유명한 곳을 찾아가지도 않는다. 그가 보고 싶었던 건 발길 가는데로 가다보면 뭐가 나오나, 가 아니었을까. 길 위에는 사람이 있고 그리하여 사람을 알게 되고, 알아듣든지 말든지 간에 사람 말소리를 듣게 되고, 밥을 먹고, 자고, 말 보러 가며 낯섬을 곱씹는다. 여기서 말 보러 간다는 말은 몽골식의 화장실 가는 풍경을 지칭한다. 하지만 김홍희는 이 표현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써먹지 않았다. 아마 일부러 안 써먹은 듯하다. '차이'를 느끼러 간 여행이 아니기 때문에 이 표현을 쓸 이유가 없었을까. 그는 그저 그곳에서 아이들의 사진을 찍었을 뿐이다. 두루마리 휴지를 말아 몸 하나 감추기 버거운 작은 바위 뒤에 숨어 볼 일을 보는 그와 달리, 사방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휴지도 없이 일을 보는 몽골의 아이에게 부끄러워하면서.

 

 

 

카메라가 정면으로 그들의 얼굴을 겨누자 하던 일을 멈추고 약간 경직된 듯이 렌즈 속 깊은 곳으로 던진 눈빛은 무차별한 어떤 힘에 대한 반항이나 분노 같은 것이었다. 수바뜨라는 말놀이를 하며 내 주위를 맴돌앗고, 누이 아무라도 가까이 오지는 않았지만 내내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는데 불쑥 카메라를 코앞에 들이댄 순간 둘의 태도가 그렇게 바뀌었던 것이다.

 

                                                                                                       p.60

 

 

 

 

몽골 특유의 집인 게르, 몽골 특유의 돌탑인 어워, 몽골식 사냥인 매 사냥도 김홍희에게는 어느 나라에나 흔히 있는 주유소를 찍을 때와 같은 느낌인 듯하다. 특별하게 생각되는 것은 이윽고 보편의 자리로 퇴락하고야 만다는 의미일까. 우리에겐 특별한 것이 그 나라 사람에겐 일상일 터이고 그렇다면 낯선 여행객에 불과한 타인인 우리가 굳이 호들갑을 떨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미일까. 김홍희의 여행은 특정 장소조차 보편화시켜 여행 그 자체의 의미에 집중시킨다. 지구별을 여행하는 우리에게 특정 장소가 보편 장소이고, 보편 장소가 특정 장소와 같다는 걸 이미 안다는 듯이. 그는 특정 장소를 보편화시키는 신기한 마법을 부려 그곳의 사람들까지 보편적으로 만든다. 평생 만나볼 일 없는 사진 속 사람들이 보편화되어 내 시야에 들어온다. 김홍희가 그렇게 그들과 만났고 그 만남들은 한 장의 사진이 되어 나와 만난다. 그들과 나의 만남에 안면이 없어도 공히 느껴지는 이 무엇. 이 무엇의 정체가 무엇일까.

 

김홍희의 무심한 듯 보이는 방랑의 매력에 빠져 들 즈음에 신기루가 나왔다.신기루도 김홍희에게 보편의 자리일까. 괜히 궁금해진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이미 눈 감은 순간의 장면임을 눈치챈 김홍희에게 신기루 역시 가짜 장면이다. 한 장의 사진이 과거라는 시공의 논증에 불과하다면 도대체 황량한 사막 위를 몇날 며칠을 달려 한 장의 사진을 구하겠다는 이 행위 역시 무의미하지 않은가. 사진을 찍는 사진가의 정체성의 혼란에 빠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신기루가 신기루이기 때문일까. 김홍희가 신기루가 신기루임을 인정했기 때문일까. 갈증과 허기를 느끼며 생라면을 씹고 목 마른 입에 물을 들이붓는 순간 어떤 생각이 스쳤다. 김홍희는 이미 찍은 신기루 사진들을 돌려보았고 이미 지나쳐왔지만 사진기 안에 생생하게 찍혀있는 신기루를 보면서 자각했다. 한 정점의 순간이다.

 

 

 

그것은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구나' 하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신기루란 이런 것이구나'하는 증명의 사진도 아니었다. 신기루를 보고 황홀경에 빠져 있던 과거 시간의 내가 거기에 있었다. 그 순간에 빠진 황홀경의 감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감흥은 더 증폭되어 현재 나에게로 전이되었다. 눈으로 보는 사진이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고스한히 찍고 전이시켰다. 그것은 시공을 넘어선 짜릿한 교감이었다.

 

                                                                                                p.146

 

 

 

 

그리고..

머나먼 이국의 내가 같은 사진을 보면서 김홍희의 느낌을 교감할 수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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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하 2012-06-07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사르님의 글이랑 발췌하신 글들이 너무 좋아서 꽤 천천히 곱씹으며 읽었어요.
그리고 한참 생각했죠. 이렇게 특별하지도 않고(말씀대로 특별한 것까지 보편화시키고), 때론 황량하기까지 한 사진들에 왜 제가 매료되었을까..하구요. 아마도 기대(의 몽골)->기대의 무너짐->공허->방랑의 지속->의지->구도자의 느낌..이런 흐름이 뭔가 마음을 정화시켰기에 그렇지 않았나 결론지어 봅니다.

이런, 제 페이퍼 쓰러 왔다가 달사르님 리뷰만 열심히 읽고 가네요.^^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달사르 2012-06-07 12:29   좋아요 0 | URL
네. 이런 사진집은 처음 봤어요. 김홍희 님은 사진과 풍경, 그리고 그 사이의 사진가라는 기본설정에 대한 고민을 줄기차게 하시는 분 같애요. 언젠가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들었는데요. 자신의 직업, 자신의 일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것은 아주 특별한 능력이라구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가진 것 말고 자신에게 없는 것에 대한 환상을 품으며 그것을 갈망하고 또 그것을 가지는 방법에 대해 골몰하기 마련인데요. 김홍희 님은 자신에게 이미 존재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꾸준하게 생각하고 그것으로서 다시 세상을 비춰보는 그런 철학적 마인드가 보이더라구요. 분홍신님이 화살표로 언급하신 그런 마음과 김홍희님의 그런 마음의 접점이 있었기에 이 책이 분홍신님에게 좋았나봐요. 저에게도 마찬가지이구요.

그래서, 이분을 소개해준 분홍신님에게 고맙다는..(쑥스..) 알라딘의 페이퍼, 리뷰를 읽으며 이런 좋은 사람을 책으로, 사진으로 알게 되는 기쁨, 그리고 이것에 대해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는 벗의 존재를 새삼 느꼈다고나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