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에게 관심이 생기는 건 무엇 때문일까. 여타의 예술 장르와 마찬가지로 그 작품이 청자(혹은 독자)에게 어떤 감회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 작품을 접하고서는 과거의 자신과 조우를 한다든지, 미지의 세계로 들어선다든지, 혹은 아득한 그 무엇을 느낀다든지. 내가 무언가를 느꼈는데 그 대상에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건 무엇을 느끼지 않았다는 말과 같은 말이 아니겠나.

 

 

선물받은 쇼팽 곡은 즉흥곡과 전주곡 모음이었다. 아, 즉흥환상곡도 있었다. 쇼팽의 즉흥환상곡은 워낙에 유명한데다 조금이라도 피아노를 만져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쳐봤음 직하겠다. 내게도 역시나 너무나 익숙한 곡이어서 옛 생각을 잠시 떠올리며 추억에 젖어들었고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24개의 전주곡(프렐류드)들을 귀를 열어놓고 그냥 들었다. 몇 개쯤 들었을까. 갑자기 공기의 떨림이 생겼다. 어떤 한 음이 지속적으로 똑똑 떨어지면서 닫힌 창문임에도 어디선가 부는 바람이 느껴졌다. 의아한 생각에 창가를 기웃거려봤지만 열린 곳은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시원한 청아함이 느껴졌다. 다시 여기저기를 훑어보다가 그제서야 알았다. 오디오에서 들리는 소리의 청량함 덕분에 내가 착각했다는 것을.

 

 

 

 

근무 중 어떤 생각이 떠오른 나는 집에 오자마자 집안 이곳저곳을 뒤졌다. 그러니까 만화책 몇 권이더라..카이가 폴란드에서 열리는 쇼팽콩쿨에 나간 후의 일이니까 15권 전후겠구나..아..16권이다. 맞네. 이 부분. 내가 젤루 좋아하는 부분. 곡제목이 뭔지 알기도 전에 카이의 연주하는 장면만으로 감동받아 좋아했던 곡이었어. 이 곡을 연주하는 카이의 회상에 무척 공감이 되어 상상만으로도 멋졌고 슬펐고 눈물이 났었지. 음악은 귀로도 듣지만 마음으로도 들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랄까.

 

빗방울이 듣는다. 맑은 호수에 한 방울 또르르, 코에 걸친 안경에 한 방울 또르륵, 연인의 머리 위에 툭툭, 하나씩 떨어지는 빗방울은 이내 대지를 적시고 사람들의 마음을 적신다. 그리움은 바람결 따라 저멀리 쇼팽의 고향 지인들에게도 가닿는다. 그리움은 먼지의 냄새를 눅힌다.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아직 버티고 있구나. 요양하러 간 휴양지에서 연인(조르주 상드)을 기다리며 내리는 빗방울에 젖어들어 느꼈을 어떤 감흥.

 

 

                                  

 

                                       

 

 

                                  빗방울전주곡

 

 

 

유투브에선 ben kim의 곡을 찾지 못해  alfredo perl 의 연주를 올린다. 이 사람 연주도 아주 느낌이 좋다.

 

 

피아노를 치는 손가락이 매우 잘 보인다. 빗방울 소리는 왼손의 A플랫으로 설정이 되어있으며 때론 부드럽게 때론 아주 애절하게 터치를 하면서 빗방울의 굵기를 달리 나타낸다. 오른손의 멜로디 라인 사이사이에 들리는 A플랫음은 멜로디의 보조음(통상적으로 왼손이 담당하는)이 아니고 오히려 소리가 들리는 공간을 너른 들판으로 확장시킨다. 만화 특유의 과장된 표현법이 통한다, 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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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하 2012-06-01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같이 쾌적하고 좋은 밤에도 의외로 잘 어울립니다.
빗방울이든, 추억이든, 행복이든...잔잔히 젖어들게 되네요.//
A플랫 설명, 최곱니다! 손가락도 열심히 보며 감상했어요.
(혹시 맨 아래 동영상이 달사르님일까? 기대해봤지만 아니군요..ㅠ.ㅠ)

달사르 2012-06-01 20:5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연습을 해볼까? 생각하면서 아래 동영상을 좀 열씨미 보고 있슴돠. 히히히.
그나저나 여행길에 이 음악을 아이폰에 좀 넣으려고 했더니만, 컴사장님의 복귀가 이제사 이뤄져서 재촉하기가 좀...아..컴맹의 비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