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나는 달라요. 나는요.
우선 '원스'같은 음악영화를 좋아하죠. 돈을 팍팍 들인 티가 나는 영화는 되려 싫어하구요, 소자본 느낌 나는 영화 좋아해요. 무엇보다 음악으로, 열정으로 승부하는 그런 영화 좋아해요. 내가 '원스'를 보고 얼마나 펑펑 울었는데요. 음..경태씨도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았다구요? 뭐, 그렇담..뭐..그래도 썩 싫지는 않았지요? 예술영화는 느낌이거든요.
아, 그리고 영화 보는 동안 팝콘 먹는 거 싫어하시는군요? 아니, 팝콘이란걸 먹으며 영화 본 적이 처음이시라구요? 몇 개 먹고 말았는데 같이 영화 본 여자가 팝콘 사달라고 졸라놓고, 그리고 태반을 먹어놓고선, 영화 끝나고 나서 그거 안 들어줬다고 삐졌대요? 참 이상한 여자네요. 자기 먹을거를 왜 남보고 들어달라고 그래요? 뭐, 나도 한때 남친에게 가방 심부름도 시켜보기도 했지만 그게 다 한때거든요. 재미없어요. 지 물건은 지가 들어야지요. 그리고, 영화관에서 나올 때 아주 큰 비닐봉지가 앞에 있잖아요? 거기에 사람들이 먹다남은거 다들 버리던데요? 지가 들기 싫었으면 거기 버리면 되었잖아요. 아까웠다면 걍 지가 들고 먹었으면 되구요. 아, 뾰족구두를 신었다구요? 그래서 다리가 아파서 양 팔에 팝콘과 콜라를 들기가 부담스러웠다구요? 그렇다면 입이 있잖아요. 뒀다 뭐해요. 좀 들어달라고 애교 섞인 말로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요. 남자가 그걸 미리 눈치 못채고 못 들어줬다고 입이 그렇게나 댓발이나 나와있어요? 에이..연경씨도 차암..
연경씨는 얼굴도 이쁘고 몸매도 착한데, 마음씨까지 배려심 있으면서 그날따라 왜 그랬대요? 경태씨와 첫만남에서 술주정뱅이로 화한 경태씨의 작은 '실수'까지 배려해주는 깊은 마음씨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래요? 경태씨가 자꾸 비아냥거리고,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을 배려해주지 않아서 그랬어요? 그동안 서러웠던게, 차곡차곡 담아뒀던게, 그날에 모두 폭발한 거였어요? 아..그랬군요. 그럼요. 연경씨가 고작 팝콘 하나 땜에 그런 몰상식한 행동을 하진 않았을 거에요. 안내하는 직원에게 눈을 부리라며 나가는 출구 이외의 장소로, 그러니까 영화를 다 봤기 때문에 더 이상은 갈 수 없는 장소인, 영화를 보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의 장소로, 굳이굳이 가겠다고 길을 비켜달라고 강요를 했던 건 고작 팝콘 하나 때문이 아니었어요. 그렇죠? 연경씨 스스로도 낯이 뜨거운 걸 참았던거죠? 에유..그렇게 참고 참았는데 경태씨는 그것도 몰라주고..연경씨를 되려 타박하는 경태씨 때문에 더는 참을 수 없었던 거로군요. 게다가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장소가 하필이면 사람들이 엄청 많은 극장 안이었구요..
맞아요. 더는 참을 수 없는 그런 시간이 있어요.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죠. 뭐. 그냥 폭발하게 냅두는 수 밖에요. 경태씨와 연경씨는 그 참을 수 없는 시간마저 같은 시간대였군요. 누구 한 사람, 양보가 안되는 그런 시간을 지나고 나면 다시 만나기는 힘이 들죠. 나는 내가 연경씨가 된 것처럼 상상하고 책을 읽었더랬어요. 연경씨와 나는 닮은 곳도 있었고 다른 곳도 있었죠. 연애를 시작하면 누구나가 그럴 거에요. 몇 십년동안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로 지내온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데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겠어요. 조금씩 나와 다른 타인의 여러 가지 것들을 인정하면서 연애를 하는 거죠. 그런데 그 속에 하필이면 종교가 있었군요. 후우..힘드네요..
연경씨는 원래 불교였다가 기독교로 개종했군요. 우리나라는 뭐든 종교가 개입되면 민감해져서 연애도 힘들게 힘들게 하더라구요. 저야 뭐 아무것도 아니어서 누가 뭐를 믿든 상관 안 하지만 말입니다. 단, 나를 개종시키려 드는 순간부터는 힘이 들긴 하지요. 하하. 연경씨는 그래, 경태씨를 개종시키고 싶었어요? 본인 스스로 은혜입음에 무척 감동받았나봐요. 그 순간이 벅차기도 했을까요? 그랬군요..연경씨, 그건 개인적으로 참 축복스런 시간이었겠어요. 그러나 그건 연경씨의 개인적인 축복이지 타인의 행복과는 조금 차이가 나지 않을까요? 그런 축복스런 시간을 타인과 나누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그렇게 연애하는 사람에게 개종을 권하는 식의, 당신네 교회 나와보라는 이야기는 좀 오버이지 않았을까요? 이미 한국의 종교는 다양할 때로 다양하고 그 속에서 개인의 행복추구를 위한 믿음 역시 다양하지 않을까요? 당신이 독실한 기독교인임을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듯이 당신은 독실한 이슬람교인 역시 인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바로 종교의 자유, 인거지요. 그런 자유로움이 있어야 연애도 아름답게 하지 않겠어요? 연애는 구속이 아니거든요. 연애를 함으로써 충만감을 느끼고 행복해지는건, 타인의 가슴을 더 넓히는 일이기 때문이거든요.
경태씨와 연애하면서 많이 힘들었죠? 경태씨를 바꾸려해서 그래요. 사람은 쉬이 바뀌지 않아요. 그리고 애써 바꿔봤자 시들어버린 꽃, 일텐데 그런 사내가 또 눈에 차겠어요? 그러니 연경씨. 앞으로는 연애할 때 꼭 명심하자구요. 이번의 실수를 발판으로 삼아, 다음 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구요. 종교문제는 그렇게 상대방의 자유를 인정하는게 좋아요. 연경씨도 앞으로 또 언제 다른 종교로 개종할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사람의 미래는 모르는 일이거든요. 아! 그렇게 말하는 내가 연애박사같다구요? 연경씨도 차암..연애박사는 이런 글 쓸 시간이나 있겠어요? 나도 그저 연애에 매번 실패하는 그런 노처녀인게지요. 내 입으로 그런 말을 차암..연경씨를 보니 동지의식이 느껴져서 쓸데없이 이런 간섭이나 하고 앉았네요. 음화화. 그치만 연경씨. 다음 번엔 잘 해봐요. 다음 번엔 성공할 거에요. 꼭 좋은 사람 만나길 바래요. 연경씨, 팟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