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건 때문에 사 년 정도 모아놨던 글들을 순식간에 다 날려 버렸다. 아깝다고, 안타까워하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컸지만(나 스스로도 무척 안타까웠지만) 내 고민을 같이 다 날리고 새로 시작하고픈 마음도 조금 있었다고 해야겠다. 그런 마음의 근간에는 양귀자가, 그리고 양귀자를 소개해 준 분에 대한 존경심이 자리를 했다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 나는 사람을 잘 존경하지 않는다. 속까지 해맑은 사람을 잘 못 봤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기 자신에게 치열하게 사는 모습을 잘 못 봤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김훈의 글을 좋아하고 김훈의 고민에 공감하지만 존경심이 생기진 않는다. 하루키의 글에 매력을 느끼고 하루키가 계속 신간을 내주기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지만 역시나 존경하지는 않는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지은 수전 손택. 새로이 진가를 알게 된 고 문익환 목사. 그리고 몇 명. 최근 들어 존경하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 무척 감사한 마음이다.
글 한 편을 읽고서 단박에 누군가를 존경하게 되었다면 우스우려나. 그러나 나의 고민 지점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글 속에 들어 있고 내가 지향하는 지점을 넘어서 저 위에 우뚝 서 있는 양귀자를 알게 된 순간, 아니 기쁠 수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 글이 부끄러웠다. 나는 내 약국에 오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의 관심을 두었나. 약국을 벗어날 수 없으니 시간 때우기 식의 관심이었나. 그들에 대한 존경심의 관심이었나. 연민이었나. 쓸쓸함에 대한 재해석이었나. 약국 손님에 대한 글이 하나씩 늘 때마다 내 마음 속 아픔도 동시에 하나씩 늘었다. 내가 쓴 글을 읽어보면 실제의 그들과 미묘하게 약간씩 달랐다. 그 순간의 장면을 사진 찍듯이 고대로 묘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솔직하게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뭐가 하나 빠져 있었다. 온갖 재료로 맛있게 요리한 음식에 정작 가장 중요한 소금간이 빠진 것처럼. 그 빠진 무엇 하나 때문에 글이 하나씩 늘 때마다 나의 의기소침 또한 같이 늘어났다.
내가 만나고 사귀었던 한 사람 한 사람을 설명해 나가는 작업은 의외로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그 삶들 속에 모든 삶의 비밀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의 실체가 정확하게 알려져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한 인물에 대한 보고서는 곧 그 인물의 삶이 박혀 있는 사회에 대한 보고서일 수도 있다.
양귀자는 시작점이 나와 달랐다. 양귀자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대놓고 표현을 했고, 그들에게 관심 있음을 드러냈다. 나는 양귀자가 관찰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 모든 삶의 비밀이 숨어 있다고 하는 말을 읽는 순간 온전하게 알아차렸다. 양귀자의 삶의 철학이 저 한 마디에 집약되어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양귀자의 글은 사람들에 대한 관찰에서 끝이 나지 않는 것 같다. 양귀자가 관찰한 사람들을 묘사하는 글을 읽노라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다 고만고만한,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을 소재로 해서 그려주는 글 솜씨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양귀자의 글을 읽고나면 주위 사람들을 괜히 안아주고 싶고, 이뻐요~하고 등을 토닥여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게 바로 양귀자의 글의 힘인가 보다. 양귀자의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나는 내가 그동안 가지던 궁금점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 나는 사람들을 이야기의 소재거리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아픔도 소재거리 속에 포함된 아픔이었던 것이다. 아픔이라고 같은 아픔이 아닌 것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자신을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니까. 나는 약국 사람들을 묘사하는 글을 쓰고 나서 이제는 더 이상 이전처럼 마음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과한 진실이다. 실지보다 더 슬픈 진실은 부담스러운 법이다. 양귀자는 삶을 가볍게 털어내는 글을 쓴다. 도장을 파고 나서 부스러기를 털어내야 도장의 기능을 할 수 있듯, 이제 부스러기는 아끼지 말고 털어내야겠다.
양귀자는 또한 유머가 있다. 글 중간 중간에, 짖궂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연민이 들어가는데, 이 연민의 감정이 또 나와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부분 역시 내게 약한 부분이다. 내게 모자라는 부분을 발견하는 건 상당한 즐거움이다. 내게 모자라는 부분을 자각할 때의 그 스릴은 말로 하지 못할 기쁨이다. 누가 지적해주지 않아도 자신의 모자란 부분은 사람들이 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다만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자각 단계까지 이르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양귀자의 책을 읽고 나서, 약국에서 손님들을 대하는 태도가 이전에 비해 조금 달라졌다. 물론 하루종일 약국을 봐야 하니 진상이 올 경우 피곤한 표정을 감출 수 없지만, 분명한 그 무언가가 달라졌다. 약국에 오는 단골들을 좀 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을 좀 더 따뜻한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내게 가르쳐 준 양귀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