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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 (컬러 명화 수록 무삭제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62
너새니얼 호손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3월
평점 :
<주홍글씨>를 다시 읽으려는 생각을 한 것은 얼마 전에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읽으면서 이다.
" 호손의 천재성에 경의를 표하며 <모비 딕>을 그에게 바친다"는 허먼 멜빌의 글을 봤기 때문이다.

내가 <주홍글씨>를 읽은 건 중학교 시절로 기억한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주홍글씨>를 읽었는데, 기억나는 것은 여자 주인공은 가슴에 주홍글씨 A자를 평생의 짐처럼 달고 다녀야 했다는 것, 그리고 목사가 아기의 아버지였다는 것 정도였다.그런데, 한참 나이가 들어서 이 책을 읽으니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작가인 '너새니얼 호손'(1804~1864)는 19세기 미국 문학의 거장이며 미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소설가이다.
이 소설의 배경인 미국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은 작가의 고향이다. 그의 선조는 1630년에 신대륙인 미국에 이민을 왔다. 5대조, 특히 4대조인 존 호손은 지역의 판사로 마녀 재판에서 무고한 이들을 처형했다. 죄업을 불러 오는 악한 본성, 죄업의 유전, 종교적 경건함과 인간적 죄악 사이의 갈등은 작가의 선조로부터 후손들에게 오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이 <주홍글씨>의 소재가 됐다.
또한 <주홍글씨>의 첫 부분에 있는 '세관 <주홍글씨>서문'에서 읽을 수 있듯이, 호손은 세관에 근무하면서 이 소설과 관련이 있는 육필 원고를 발견했다는 이야기와 '조너선 퓨'라는 유령을 만나 두루마리에 새겨진 A를 받았다는데 이것이 소설 창작의 시작이라 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감옥에서 처형대를 향해 가는 여인의 모습이다. 헤스터 프린은 가슴에 A라는 글씨를 달고 있다. 붉은 색 천에 금실로 정교하게 수놓아서 환상적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글씨. 분명 A라는 글씨는 수치의 상징인 주홍글씨인데, 여인은 섣달쯤 된 아이를 안고 거의 평온한 모습으로 시장 끝부분에 있는 처형대 앞으로 간다. 나무 계단을 올라가서 구경꾼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처형대 위에서 3시간을 서 있어야 한다.
17세기 매사추세츠 식민지에서는 간통죄는 평생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 했다. 헤스터의 남편인 영국인 학자는 수년 째 소식이 없는데, 여인이 안고 있는 아이는 누구의 아이란 말인가.
"말하시오, 여인이여! 어서 말하시오, 당신의 아이에게 아버지가 누군지 알려주란 말이오!" (p. 97)
이런 이야기라면 여인은 누구와, 언제, 어떻게 이런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렀을까 하는 내용이 소설 속에 담길 것인데, 그런 이야기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물론, 아이의 아버지가 젊은 목사인 딤스데일이라는 것은 알 수 있는 힌트들이 여기 저기에 있고, 결국에는 밝혀진다. <주홍글씨>에서 말하고자 하는 '악'은 어떤 개인의 악이 아닌 인류 전체가 안고 있는 악을 말한다.
헤스터는 아이의 출생으로 죄인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다니는 세상에 '드러난 악'
딤스테일은 목사라는 숭고한 직책을 가졌지만 죄을 짓고도 그것을 감추고 신도들에게 설교를 하는 자신의 악을 감추고 살아간다. '감추어진 악'은 위선 속에서 살아가면서 스스로 모멸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그는 수척해지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
칠링워스는 헤스터의 남편으로 대륙에서 여기 저기 다니면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의사가 되어서 헤스터를 찾아 온다. 그런데 그 날이 바로 헤스터가 처형대에 올라가 있으니....
그는 딤스테일과 함께 살면서 헤스터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 선을 가장하여 딤스테일을 피폐해지게 만든다. 악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섣달 정도였던 펄은 7살 여자 아이가 되어 다른 형태의 주홍글씨, 살아 움직이는 주홍글씨로 주변 아이들로부터 소외된다. 그러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성숙한 면을 보일 때도 있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어린이기도 하다.

소설의 내용은 잔잔하면서도 가슴에 많은 여운을 남겨 준다. 그러나 <주홍글씨>는 단순한 불륜을 다룬 소설이 아니다." 종교적 위선과 죄의식 그리고 인간 영혼의 어두운 구석을 파헤친" (p. 338)소설이다.
"그는 도덕의 가면을 쓴 폭력과 위선을 폭로하는 동시에, 인간 내면에 공존하는 선과 악, 그리고 구원의 가능성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특히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독특한 기법으로 보편적이며 세속적인 주제(성과 사랑, 죄와 벌, 빛과 어둠 등)를 심오하고 강렬한 서사로 빚어냈다. 이 환상적 리얼리즘은 미국 문학이 유럽의 그늘에서 벗어나 고유의 예술적 정체성을 확립했음을 선언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출판사 리뷰 중에서)
"<주홍글씨>는 '허먼 멜빌'의 <모비 딕>과 함께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인데, 두 소설은 악의 주제를 천작하는 심리적, 종교적 배경을 갖고 있고 노예제도 철폐라는 당대의 중요한 사회적 주제를 서브 텍스트로 갖고 있다. " (역자의 해설 중에서)
출판사 현대지성의 <주홍글씨>는 영국 최고의 삽화가 '휴 톰슨'의 컬러 일러스트 31점이 담겨 있다. 또한 약 60페이지에 달하는 역자의 해설이 있어서 소설의 이해를 도와 준다.
고전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이런 작품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배경지식도 얇팍하고 소설 속에 감추어진 뜻을 이해하기 힘들다.
소설의 분량도 많아서 지루하게 느껴졌던 고전들이 요즘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