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의 소녀>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역시 기욤 뮈소'는 타고난
이야기꾼이구나!' 하는 감탄사가 나온다.
그리고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지는 것은 딸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붕괴된 한 가정의 안타까운 이야기.
물론, 이건 소설 속의 아주 작은 일부분의 이야기이다.
결혼을 3주 남겨두고 사라진 안나를 찾아 나선 라파엘을 도와서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전직
형사 마르크에게 쓴 딸의 편지글을 읽고 드는 생각이다.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깊은 감동을 주기에 이 이야기는 소설의 끝부분에 밝혀지는 아주 작은
부분에 해당하지만 나에게는 이 부분이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었다.
마르크의 딸인 루이즈는 14살 6개월이란 어린 나이에 사이코 패스에게 납치되어 지하실에
감금되고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하루 하루 지옥과 같은 날을 보낸다. 그러나 그 상황 속에서도 소녀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아빠와의 추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장 자체로는 너무나 아름다운 문장이지만 그 문장을 담아냈을 루이즈를 생각하면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 아빠, 나 지금 무서워, 어서 나에게로 와줘! 절대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야. 난 지금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이 갈가리 찢어지는 느낌이야. (...) 사실 평소에 아빠와 마음이 잘 통하지는 않았지, 최근에는 거의 말도 하지 않고 지냈어. 내가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도 없고, 지금은 몹시 후회하고 있어. 자주 아빠를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하고, 우리가족에게
아빠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진작 느꼈어야 하는데 이제야 후회막급이야. 만약 지옥에 떨어진다면 행복한 추억이 가득 담긴 상자를
가지고 가야 할 것 같아. 난 힘들 때마다 끊임없이 행복했던 순간들을 머릿속에서 끄집어 비춰보고 있어. 추억을 떠올리는 순간 만큼은 춥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으니까.
(...)
나는 하지에 활활 타오르는 환희의 불이고, 에트르타 해변에서 뒹구는 조약돌이고, 폭풍우에도 끄떡없는 베네치아식
등불이기도 해. (...) 나는 바닷가 열대과일 나무가 실어 나르는 바나나 향기이고, 수증기를 머금은 대지가 뿜어내는 흙냄새이기도 해. 나는
파란자개 스페인 나비의 날갯짓이고, 늪지대에 자주 출몰하는 도깨비불이기도 하고, 너무나 빨리 떨어져 버린 하얀 별의 먼지이기도 해. (p.p.
418~421)
이 부분은 <브루클린의 소녀>의 아주 작은 부분에 해당하지만 이토록 마음이
아려온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본다.
프랑스 작가인 '기욤 뮈소'는 프랑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뮈소 신드롬'이 있을
정도로 거의 1년에 한 편씩 나오는 그의 소설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상당히 많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나
!!
본격적으로 '기욤 뮈소'의 소설에 빠지게 된 것은 <종이여자>이지만,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새로운 소설이 나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읽었고, 그 이전에 나온 소설들도 시간이 날 때마다 읽어서 '뮈소'의 소설을 모두
읽었다.
그런데 '뮈소'의 소설 중에 <종이여자>, <지금 이
순간>,<내일>등은 스릴러 소설이면서도 시간여행이나 판타지 색채가 짙은 작품들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은 후에 뭔가 산뜻하기
보다는 '역시 소설!'이란 생각이 드는데, <브루클린의 소녀>는 소설이지만 현실 속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허구라는
소설의 영역을 벗어나 현실적 감각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인기 소설가인 라파엘은 싱글대디이다. 부인은 어린 테오와
라파엘을 버리고 자신의 일을 찾아 떠났다. 가정 보다는 자신의 성취욕이 더 중요한 커리어
우먼이다.
라파엘은 아픈 테오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가 소아과 전공의인 안나를 만난다. 결혼식을 3주
앞두고 떠난 여행에서 라파엘은 안나에게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을 이야기해 주기를
원한다.
그런데, 안나가 내민 핸드폰 사진을 보고 라파엘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안나가 저질렀다는
그 사진 속의 사건은 무엇일까.....
라파엘은 충격 속에 안나를 그곳에 두고 떠나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곧바로 펜션에
돌아간다. 그러나 안나는 이미사라지고 없다. 그래서 라파엘은 자신의 이웃에 사는 전직 형사 마르크와 함께 안나을 찾아
나선다.
안나는 일명 '브루클린의 소녀'로 신문의 사회면을 차지하던 사건의 한 축에 있었던
소녀이다. 하인츠 키퍼라는 인면수심의 사이코패스에게 납치되어 약 2년간 감금되어 온갖 고문과 강간을 당하다가 어느날 구사일생으로 탈출하는데,
소녀가 탈출한 후에 그곳은 화재가 나면서 하인츠 키퍼와 감금되어 있던 세 명의 소녀가
숨진다.
안나는 당시에는 그곳에 다른 소녀들이 자신과 같이 감금되어 있는 줄을 몰랐는데,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고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소녀는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위해 프랑스에 왔다가 납치되었던 클레어인데, 자신의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면서 클레어에서 안나로 신분세탁을 하고 프랑스에서 제 2의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라파엘은 첫 번째 결혼에서 시행착오를 겪었기에 이번에는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고 결혼을
하고 싶었고, 어떤 비밀이라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안나의 실종사건을 밝혀 나가는 과정에서 그녀가 어떤 이유로 신분세탁을 했는지를 알게 되고,
그녀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추적하다 보니 안나가 사라진 것은 단순한 실종사건이 아님을 감지하게
된다.
한꺼풀 벗겨지는 듯한 이야기의 전개는 다시 새로운 사건의 전개로 이어지면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안나가 16살에 납치되어 25살 의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약 10년의 이야기이지만 소설
속에서는 2016년 8월 31일에서 9월 5일까지의 단 6일 동안에 일어나고 밝혀지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퍼즐처럼 한 장, 한 장 맞춰 나가는 재미가 있는데, 두 가지 사건이 따로 따로
전개되다가 하나의 큰 퍼즐의 그림이 된다.
하나는 프랑스에서 몇 년 전에 일어난 미성년자 납치 감금 살인사건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또 다른 하나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픽션으로 전개된다)
2016년은 미국에서도 대통령 선거로 이런 저런 잡음들이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
탄핵의 단초가 된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화두였는데, 그래서인지 소설 속의 정치판 이야기가 실감있게 다가온다. 사이코패스의 미성년자 납치 감금,
권력층의 비리, 혼외자, 출생의 비밀, 대통령 만들기, 경찰, 검찰에 대한 권력층의 압박 등이 이야기의 소재인데, 그런 소재들이 아주 잘
버무려진 소설이다.
분명 소설이기는 한데, 어느 사회, 어느 나라에서 일어났고, 일어날 수도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 <브루클린의 소녀>를 읽으면서 소설에 빨려 들어가게 되는 요인이다.
'기욤 뮈소'는 한국에서 자신의 소설이 베스트 셀러의 순위에 오른다는 것을 의식한 듯,
소설 속에 수연이라는 한국 여성을 잠깐 등장시킨다.
사건을 풀어나가는 수법도 흥미로운데, 전직 형사인 마르크는 형사적인 입장에서 상황을
분석하고, 소설가인 라파엘은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시도가 또한 소설 속에서 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을 따라잡는 독자들이
재미있게 소설을 읽을 수 있는 매력이다.

'기욤 뮈소'는 새로운 소설을 쓸 때마다 장르에 있어서도 새로운 변신을 꾀하는 작가이기에
그의 소설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소설마다 색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 인간의 덧없는 욕망이 빚어내는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사랑과 가족에 대해 깊이있는 통찰을 시도한다. " (저자 소개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