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그린 그림>의 작가 '김홍신'은 1980년대 암울했던 시절에 사이다처럼 '톡' 쏘는 시원함을 가져다 준 소설
<인간시장>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주인공인 장총찬은 현대판 홍길동, 로빈 훗에 비길 수 있을 정도로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부조리와 불의에 맞서서 한 판 승부를 겨룬다.
조폭, 인신매매, 부정부패 정치인, 타락한 종교인, 비리투성이 사학재단 등 장총찬이 가는 곳에는 정의가 살아나게 된다. 그야말로 힘없고 배경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속시원한 소설은 없었을 것이다. 그당시에 출판계의 신드롬이라고 할 수 있는 최초의 밀리언셀러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시대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소설가 김홍신은 장총찬의 후광을 입었을까, 8년간 국회의원을 지내게 되는데, 그때에도 때로는 당론 보다는 소신에 따라서 행동한 적이 여러
번 있는데, 거대한 여당 속에서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후, 작가로 돌아온 김홍신은 <대발해>라는 대하소설 10권을 출간하기도 하고, 에세이, 소설도 발표한다.
그 중에 에세이와 소설 <단 한 번의 사랑>을 읽었다. 내용은 젊은 날에 사랑했던 여자가 홀연히 사라진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재벌 2세의 부인이 되어 나타나는데, 그녀는 말기암 환자이며 남편과의 이혼을 원하면서 첫 사랑과의 남은 인생을 보내기를 원한다고
하니....
김홍신의 사랑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이번에 신간을 발표하게 된다.
<바람으로 그린 그림>
" 천둥이란 내가 사랑한다고 외치은 소리이고
번개란 내 영혼이 그녀에게 달려가는 속도이며
바람이란 우리의 사랑이 자유롭기를 바라는 것...." ( 책 속의 글
중에서)
아주 전형적인 사랑이야기, 어떻게 표현하자면 진부한 사랑,
작가인 김홍신의 젊은 날에는 통할 수 있었던 사랑.
지금의 청춘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랑.
이야기는 1인칭 화자 시점에서 번갈아 가면서 전개된다.
리노는 가톨릭 사제가 되기를 희망하는 고등학생 복사. 그가 다니는 성당에서 성가대 반주를 하는 모니카는 리노 보다 7살 연상의 대학생.
성당에서 주로 많이 볼 수 있는 이루어질 수 없는 커플, 사랑인지 아닌지 조차 애매한 그런 성당 누나와 남동생. 지금이야 7살 연상이
무슨 대수일까마는 그땐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런 사랑.
리노는 모니카의 권유로 사제가 되기를 포기하고 의대 진학을 위해서 공부를 하게 된다. 어느날 리노는 공부를 위해서 모니카의 목장에서 방학을
함께 보내게 되고....
간절히 원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이기에 모니카는 선을 보게 되고, 만난 남자는 집안도 좋고, 학벌도 좋지만 성품이 수준 이하...
폭력까지도 행사할 정도로...
그후에 모니카는 착실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는데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불구가 된다. 모니카는 시험관 시술을 통해서 딸을 낳게
되고, 리노는 결혼을 하여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들의 자녀들이 커서 사랑을 하게 되니....
소설은 초중반을 거치면서 너무도 지루한 작가의 청춘 시절의 연애 감정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한다. 그리고 설득력없는 모니카의 결혼, 이어서
리노의 결혼.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 이야기, 각본에 짜인듯이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흥미를 반감시킨다. 아마도 내가 이런 사랑를 주제로 한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기욤 뮈소'나 '더글라스 케네디', ' 무라카미 하루키'의 사랑이야기에는 독자들이 미쳐 생각하지 못하는 어떤 트릭, 추리, 스릴,
반전들이 있는데, 그런 요소들이 빠지니 밋밋한 사랑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 사랑이 고통스러워도 물러설 수 없는 것은 그 어딘가에 황홀함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상처를 추억으로 삼으면 향기가 되고 고통으로 여기면 후회만 남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리노와 모니카의 사랑처럼 그들의 사랑은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잔잔한 사랑이지만 상처가 나고 아픔이 있다.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견딜 수
있게 해주던 자녀들.
그러나 그 이야기 속에도 아픔과 슬픔이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