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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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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와 같은 세계적인 소설로 만나 보았던 헤르만 헤세.

그런 헤르만 헤세의 일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에세이가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만약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그의 진솔한 마음의 세계를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헤세가 31세에서 77세에 이르기까지 그의 정원과 관련하여 쓴 글들을 한데 모아 놓은 책이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헤세에게 있어서 정원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여 볼 수 있었다.

그의 어린 시절, 어머니는 집 뒤의 가파른 땅에 작은 화단을 만들어 꽃을 심어 놓고는 헤세에게 그 정원을 돌보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정원에 대한 지울 수 없는 추억의 시작이다.

그후 헤세는 어떤 곳에 살든지, 가는 곳 마다 정원을 만들었다. 해마다 땅을 파고 나무를 심고 씨를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고 나무와 꽃을 가꾸고, 열매를 수확하기도 했다.

헤세에게 2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은 '낯설고 유쾌하지 않은' 것이었기에 망명 상태에 해당하는 생활을 했는데, 그때에는 사람들과의 사회적 교류도 끊고 오로지 정원을 가꾸면서 계절마다 바뀌는 정원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과의 교감을 나누었다.

훗날 이런 모든 것을 생각해 볼 때에 그에게 정원은 자신을 치유하는 힘을 주는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책 속에는 정원에서 일하는 헤세의 사진과 그가 직접 그린 수채화 여러 점이 소개된다. 그에게 화가로서도 손색이 없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다.

목련꽃이 활짝 핀 나무 아래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실린 여름 목련나무에 대한 글은 그의 섬세한 관찰력은 목련꽃이 피고 질 때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마치 목련꽃이 필 때부너 질 때까지의 모습을 촬영해 놓은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 꽃은 대개 이른 아침에 창백한 녹색을  띤 꽃봉오리로 부터 피어난다. 그것은 순수한 백생이다. 마법 속에서 나타난 듯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하늘거린다. 마치 하늘을 받치는 거대한 아틀라스의 하얀 기둥처럼 빛난다. 그리고 어둡게 반짝이는 강인한 상록수 입사귀는 하루 동안 젊음을 간진한 채 찬연히 빛나며 하늘거린다. 그런 다음 꽃잎은 조용히 색이 바래기 시작한다. 가장자리가 노랗게 변해가면서 형태를 잃어간다. '피로에 지쳐 굴복해간다'라는 감동적인 표현이 잘 어울릴 만큼 늙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모든 노쇠현상도 겨우 하루밖에 안 걸린다. 하루가 지나고 나면 하얀 꽃송이는 이미 색이 바래 연한 계피 색으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어제만 해도 아틀라스의 기둥처럼 단단했던 꽃잎들이, 오늘은 마치 섬세하고 부드러운 천연가죽처럼 힘없이 늘어진다. " (p.p. 53~54)

여름 목련나무(북쪽 지방의 봄 목련나무와 혼동하지 말라고 한다)와 난쟁이 분재의 대립되는 두 그루의 나무는 각 나무의 특징과 풍기는 느낌마저 다른데, 그의 섬세한 표현이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가지게 한다.

헤세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때를 가장 사랑했다고 한다. 바로 요즘이 아닐까. 그만큼 정원이 풍성해지는 때이니, 그에게 기억 속의 영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리라.

정원에서 가장 오래된 복숭아나무가 며칠만 견디어 냈다면 '분홍빛으로 된 봄의 화관을 피웠'을텐데', 그만 나무가 가지가 꺾이고 부러져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되니 우울할 수 밖에....

" 내 소중했던 복숭아 나무여! 하지만 너는 적어도 품위있고 자연스럽게 온당한 죽음을 맞이하였으니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너는 더는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버텼으며, 거대한 적이 네 가지를 비틀 때까지 반항했다. 결국 너는 굴복하고 쓰러져 뿌리가 뽑히고 말았지만 그래도 너는 공중 폭격을 받아 산산히 부서지진 않았다. 악마처럼 독한 산(酸)으로 태워지지도 않았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처럼 고향 땅에서 뿌리가 뽑힌 채 피를 흘리며 고향을 등지고 다시 낯선 땅에 임시로 심어졌다가 다시 짐을 싸는 실향민이 되는 운명을 겪지도 않았다. 너는 네 주변에 일어나는 몰락, 파괴, 전쟁, 수치를 겪으면서 비참하게 죽어가지 않아도 되었다.너는 나무가 갖는 가장 평범한 숙명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행복하였으리라. 너는 우리보다 더 멋있고 아름답게 나이 들었고 기품있게 죽어갔다. 나이가 들어서도 독으로 오염된 비참한 세상에 저항해야 하는 인간보다, 썩은 내 진동하는 시궁창 같은 세상에서 깨끗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매일 투정해야 하는 인간보다. " (p.p. 161~162)

아름다운 정원 속의 모습을 영롱하게 표현하던 헤세의 이같은 글은 세상을 향해서 그가 내뺃고 싶었던 함성이 아닐까. 전쟁 중에 그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이 복숭아 나무의 죽음을 통해서 세상에 울려퍼지는 듯하다.

이 책의 해설제목이 '전쟁과 폭력, 비인간화에 대항하는 헤세의 정원'인 것처럼, 이 책은 헤세가 전쟁 중에 망명생활을 하면서까지 '전쟁, 폭력, 비인간화'에 동조할 수 없었던 그의 사상이 담긴 책이기도 하다. 물론, 그 모든 것은 그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이고.

정원 속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는 모습의 헤르만 헤세의 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헤세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정원의 모습을 담은 수채화들은 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세련되고 섬세한 글솜씨는 그의 소설 속에서 보다 더 정서적인 글들이기에 대문호의 문장에 매료되기도 하였다.

소설로만 접하던 헤르만 헤세가 아닌 새로운 모습의 헤르만 헤세를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면 좋을 것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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