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예술을 ‘엿먹이다’ - 미술비평은 어떻게 거장 화가들을 능욕했는가?
로저 킴볼 지음, 이일환 옮김 / 베가북스 / 201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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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그 작품을 보는 순간 느끼는대로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확실히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그 작품을 감상한다면 내가 모르던 부분들을 많이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미술사조의 변천에 따라서 그 작품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 작가는 이 작품을 어떤 상황에서 그리게 되었는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알기 위해서는 미술 작품을 감상하기 전에 공부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되고, 전시회장을 갈 때에 도슨트 운영 시간을 이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예술 작품보다 더 장황한 배경설명이나 평론들이 그 작품을 돋보이기 위해서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대 미술작품에서는 더욱 그런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된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1917년 뉴욕 독립미술가전에서 'R.Mutt'라고 사인한 남성 소변기를 <샘>이란 작품명으로 출품했던 '마르셀 뒤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이 작품이 전시회에서는 거절을 당했지만, 기존의 예술 개념을 깨뜨린 '개념예술'이란 새로운 장르를 개쳑했다는 것이다.

<샘>이란 예술 작품 하나만으로도 예술, 그리고 평론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출처 : Daum 검색)

 

평론이 어떻게 예술 작품을 '엿 먹이'는가를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그럴듯하게 예술 작품들을 과대 포장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별 의미가 없는 작품을 천재의 작품인양 평가하기도 하고, 미적, 성적인 면에서 역겨울 정도인 작품을 이것은 예술 작품이니까 하면서 미화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거장들을 범하는 것이다. 어떤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 위대하다고 생각해 왔던 기존의 생각을 공격하거나 희석시키거나 때로는 전복시키고자 하는 평론을 쓰는 것이다.

이런 평론은 예술 작품에 대한 책을 몇 권만 읽어 보아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 <평론, 예술을 '엿먹이다'>는 예술사가 근본적으로 '정치적 개입의 한 형태'라는 관점에 대해 반격을 하고자 하는 책이다." 고 저자가 말하듯이 예술 작품이 평론가들에 의해서 어떻게 능욕당하고 있는가를 (평론계가 예술을 '엿먹이는'가를) 이야기한다.

저자인 킴볼은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7명의 화가들의 작품이 평론가들의 능숙한 글솜씨, 화려한 미사여구에 의해서 어떻게 평가되었는가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쿠르베, 마크 로스코, 사전트, 루벤스, 윈슬로우 호머, 고갱, 반 고흐에 대해서 그가 알고 있는 '엿먹이는' 평론의 사례를 이들 화가의 이야기와 함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화가들의 작품에 대한 평론 이야기이니, 그에 해당하는 작품이 함께 실려야 이해가 빠르겠으나, 작품 사진은 책의 중간에 몇 장이 한꺼번에 몰려서 실려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그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 장을 다시 그 부분으로 펼쳐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 책에서 언급된 작품 중에는 폴 고갱의 <죽은 자의 혼이 지켜 보다>가 있다.

 

 

" '예술가 고갱'은 그 어디에도 없다. 폴락 교수는 페미니스트적 논박을 하기 위해 예술을 버렸고, 아이젠만 교수는 다양한 도착적 환상을 위해 예술을 버렸다. 둘 다 참으로 말도 안 된다. 그들에게 영향력만 없다면, 그들의 글으 그저 웃어 넘기면 그만 일 텐테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들은 완전 혐오스럽다. " (p. 221)

폴락 교수와 아이젠만 교수가 폴 고갱의 <죽은 자의 혼을 지켜보다>에 대해서 어떤 평론을 썼는가는 책 속에 담겨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인 페미니스트적인 관점에서 또는 도착적 환상에서 이 작품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 작품을 그린 폴 고갱의 생각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가는 염두에도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유명 평론가들이기에 그들의 이런 평론은 그대로 작품을 이해하는 바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오류적 평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지는 감상하는 사람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로 남겨지게 된다.

빈센트 반 고흐의 <한 켤레의 신발>도 하이데거의 평에는 반 고흐가 실제로 이 그림을 그린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철학적 시나리오에 그의 그림을 끌어 들이는 사례가 되는 평론이다.

 

 

하이데거라는 철학자의 드높은 변주곡들은 반 고흐의 예술과는 별반 관계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그의 평론에 귀기울일 수도 있으니...

저자는 이 작품에 대한 데리다의 평을 '말장난', '요점없는 추상화 볶음 요리'라는 표현까지 쓰게 된다.

그러나 예술 작품에 대하여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나 감상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평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럴듯하게 표현하는 그들의 허튼 소리와 얼토당토 않은 평(글)을 그 평론을 쓴 사람의 인지도만을 믿고 그렇게 생각해 버리게 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예술 작품들, 그리고 문학 작품들을 대하면서 그 작품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는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시대사조에 따라서 작품들이 엉뚱한 평가를 받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 (...) 예술이란 이름 아래 창조되는 모든 작품 또는 행위를 정지적 올바름이라는 그럴싸한 핑계로 '엿먹이는' 수많은 이론가들이나 철학자들에게도 일침을 가하는 " (추천사 중에서) 그런 책이 필요하기도 한데, 그런 의미를 가진 책이 < 평론, 예술을 '엿먹이다'>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번역한 '역자의 말'을 읽어 보면 이 책을 쓴 킴볼 역시 " 좌파, 페미니즈, 포스트모더니즘, 성적 정체성 같은 관점에서의 해석들이 난무하는 데 대한 반작용이기는 하겠지만, 킴볼은 반대로 너무 우파적, 보수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 킴볼의 태도는 듣기에는 참으로 좋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순수할 때에만 진정한 가치를 지니는 말이 된다. " (p. 254)

어쩌면 좋을 것인가?

킴볼은 예술 작품의 이해에 있어서 교수들이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주입시켜서, 감상자들이 스스로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데에 오류를 범하는 것을 걱정하고, 평론가들의 평이 자신들의 생각에 지나치게 좌우되는 것을 염려했는데,

역자는 오히려 그런 저자의 생각들이 너무 한 방향으로 쏠리지는 않았는가를 또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훌륭한 예술 작품이나 문학작품에는 훌륭한 해석들이 존재하며, 그 해석은 그 작품들을 대하는 우리들에게 더 큰 감동을 준다는 말을 한다.

여기에서 내 생각을 말하자면, 훌륭한 작품들에는 그 작품에 대한 해석이 올바르다면 우리들에게 더 큰 감동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 해석 자체에 어떤 사심이 들어가 있다면 우리들이 작품을 대하는데 큰오류를 가져 오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평론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내려놓는 마음은 경쾌하지가 않다. 그동안에 평론이 작품을 위한 평론이 아닌, 평론을 위한 평론, 작품을 치장하기 위한 평론이라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평론에 대한 불신이 더 가중되는 것이다.

어떤 작품을 대할 때에 내가 느끼는 그것이 곧 내가 그 작품을 올바르게 감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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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12-08-07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받은 지가 한참 지났는데 여즉 서평을 쓰지 않고 있네요. 아직 다 읽지도 못했구요. 미술을 잘 이해하지 못하니 그런가봐여.

라일락 2012-08-07 15:38   좋아요 0 | URL
예술 작품에 있어서는 평론이 차지하는 부분들이 크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해 불가능한 작품들에 어떤 평론이 나오느냐에 따라서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게 되지요.
이 책은 읽기가 그리 쉽지 않은 책인데, 미술 작품에 대한 식견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역자의 말에 의하면, 저자 역시 한쪽에 치우친 견해를 주장하고 있다고 하네요.
무더운 여름에 읽기에는 힘든 책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