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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
엘리엇 부 지음 / 지식노마드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라는 책제목을 보는 순간,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삶을 자신의 의지로 끝내는 자살이란 행위를 어떻게 우리의 일상이 되어 버린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가벼움과 함께 나열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나는 시원한 커피 한 잔 보다는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책 제목에 끌리게 되고, 브라운 톤의 차분한 느낌의 책표지에 끌리게 된다.
책이 도착한 날, 책의 종이 질감때문인지 500 페이지의 책의 부피는 너무도 두껍게 느껴진다. 한 사흘은 읽어야 할 것처럼.
책을 펼치는 순간, '이런 이런.... ' 책 소개글을 분명히 읽었건만 이런 책이란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책의 제목인 '자살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는 '알베르 카뮈'의 글을 인용한 것이며, 책 속의 모든 내용은 철학자, 작가, 시인, 예술가, 과학자 등 272 명의 글을 인용한 것이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272 명의 글 중에서 인용한 글들로 짜집기 되었던 것이다.
'아니, 다른 사람들의 글을 가지고 이렇게도 자신의 글을 만들 수 있구나' 하는 경이로움(?) 이 든다.
이런 구성과 조금 다른 구성의 글들도 있는데,
책의 왼쪽 페이지에는 오른쪽 글을 말한 사람의 사진을, 그리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그 사람이 쓴 한 구절의 글,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엘리엇 부가 자신의 생각을 적어 넣은 한 구절, 그리고, 그 문장들을 영문으로 다시 적어 놓은 것이다.
말하자면 272 명의 공저자와 저자의 대화글이라고 해야할까.

" 이 책에서 온전히 저자의 목소리를 내는 곳은 ‘서문’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그들의 언어를 빌어 자기 생각을 엮었으며, 272명의 ‘친구’들의 말에서 나온 700여개의 인용quote으로 이루어져 있다." ( 출판사 책소개 글 중에서)
저자인 엘리엇 부는 한국인으로 건축사무소 대표였으나, 지금은 하와이에 거주하면서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서 '인문공간 정보융합'을 강의하고 있다.
그는 굉장한 다독가인데, 한 번에 20권의 책을 쌓아 놓고 그 중의 한 권을 한 장이나 일부분을 읽고 나서 다른 책을 앞서 읽은 주제와 관련된 장이나 그렇지 않은 장을 읽는 식으로 책을 읽는다고 한다.
그런 독서 방법이 아마도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와 같은 책을 펴내게 된 것이리라.
" 이 책은 인문공간의 탐험기록서다.
이 책은 일종의 항해일지와 같은 것이다.
이 책은 이를테면 지도와 같은 것이다. " (서문 중에서)

그렇다면, 여기에서 인문학과 인문공간의 정의를 알아 보아야 할 것이다.
" 인문학은 보통 문학, 사학, 철학을 의미한다.
(...)
인문공간은 문예, 역사, 사유를 의미한다. " (서문 중에서)
그는 자신은 독창적인 생각의 작가가 아니기에 '인문공간'의 단편들을 수집한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이 책
임을 이야기한다.

"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한 군데 머물면 한 페이지까지 인새이다. - 세이트 오거스틴
독서는 세계 여행이다.
독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출장만이 있을 뿐이다. - 엘리엇 부 " (p. 143)


400 페이지 정도의 글은 이런 '인문공간'의 단편을 수집한 것이고, 그 뒷 페이지는 이 책의 공저자라고 할 수 있는 272명의 이름, 그리고 그 뒷 페이지부터는 이 책의 각 파트의 영문 원문이 실려 있다.
참으로 특이한 책.
책제목까지도 인용한 글이라니...
그런데, 같은 주제에 대한 공저자들의 각기 다른 글들, 그리고 같은 생각의 글들을 읽는 것은 생각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장점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시도를 한 책이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뭔가 모를 어색함이 엿보이는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