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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슬픔을 가볍게, 나는 춤추러 간다 - 댄스 스포츠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
방현희 지음 / 민음인 / 2012년 4월
평점 :
흥겨움에 어깨춤이 둥실 둥실 들섞이는 것은 아마도 사람들에겐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그런 작은 춤사위는 각 민족들의 역사와 전통이 담겨지면서 그들 나름의 춤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춤을 배우러 다닌다' 고 하면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리 고운 눈으로 보지 않았었다. 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서 '춤바람'이란 말이 나왔고, 춤추다가 그렇게 된 사람들도 다수 있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에는 여가를 이용해서 취미 활동으로 댄스 스포츠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삶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으로 선율에 맞추어 추는 춤은 그 어떤 스트레스도 확 날려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며칠 사이에 우연찮게 춤에 관한 책을 두 권 읽게 되었다.
박종호의 <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그리고 방현희의 <오늘의 슬픔을 가볍게, 나는 춤추러 간다>이다.
2 권의 책을 읽으면서 춤의 역사와 의미를 자세하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탱고만을 다루었지만, 깊이 있는 내용의 책이었고, <오늘의 슬픔을 가볍게, 나는 춤추러 간다>는 각종 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춤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는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오늘의 슬픔을 가볍게, 나는 춤추러 간다>를 처음 접할 때는 춤에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춤에 대한 이야기을 풀어 나가겠거니 했는데, 그보다는 삶의 이야기 속에서 춤에 대한 이야기가 곁들여져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 책의 저자인 방현희가 소설가이기에 그의 삶의 이야기 속에 곁들여져서 춤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춤추는 소설가의 춤 에세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삶의 한 자락에서 춤을 배우게 되고, 그 춤은 또 다른 춤을 배우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 속에 있었던 각종 상처들을 치유하여 가는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신나게 춤을 추면서 흘린 땀방울이 마음 속의 슬픔을 잠재울 수도 있었고, 춤에 몰입하는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나 자신만의 시간으로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그동안 댄스 스포츠를 통해서 다양한 춤을 배우면서 알게 된 춤에 관한 이야기를 자신의 삶, 문학, 가족, 친구 이야기와 함께 풀어나가는 것이다.
춤의 역사에는 삶의 애환이 담긴 춤들이 다수 있다. 룸바, 탱고, 플라멩고, 살풀이 등을 들 수 있다.
룸바는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흑인 노예들의 춤으로, 그들은 다리에 쇠사슬이 채워진 채로 힘겨운 낮의 노동에서 풀려나 어두운 밤에 그들의 슬픔을 춤에 녹여 나갔던 것이다.
그래서 다리에 쇠사슬이 채워져 있기에 춤사위는 느리면서도 슬픔이 배어 있는 것이다.
탱고 역시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이주민들의 애환이 담긴 춤이며 한국인의 정서에는 가장 잘 맞는 춤이기도 하다. 탱고에 관련된 영화들도 많이 상영되고, 탱고 음악도 낯설지 않아서 친근하게 느껴지는 춤이 탱고인 것이다.
" 탱고는 4분의 2박자에 맞춰 추는 매우 육감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춤이다. 왈츠가 우하한 볼룸에서 추는 춤이라면 탱고는 거리에서 추는 춤이다.
룸바가 사랑의 춤이라면 탱고는 열정의 춤이다. 자이브가 경쾌함의 진수라면 탱고는 비극적 아름다움의 극치다. " (p. 60)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춤은 아마도 왈츠가 아닐까 한다.
다뉴브 강의 물결처럼 흐르는 듯. 미끄러지듯 원을 그리며 추는 춤.
학창시절에 왈츠나 포크댄스는 수업시간을 통해서 배우기도 했기에 그 춤의 매력을 떠올릴 수가 있다.

<탱고 인 부에노스>의 저자인 박종호도, <오늘의 슬픔을 가볍게, 나는 춤추러 간다>의 저자인 방현희도,
"춤은 인생을 닮았다"고 이야기한다.
인생의 기쁨과 슬픔이 춤 속에 녹아 있기때문에 하는 말이 아닐까....
책 속의 룸바, 탱고, 왈츠, 자이브 와 같은 춤은 들어 보기도 했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보기도 했지만, 다소 낯선 춤들도 등장한다.
파소 드블레, 폭스 트롯.
파소 도블레는 투우를 형상화한 라틴댄스의 한 종목으로 4분의 2박자의 빠르고 율동적인 리듬을 탄ㄴ다.
이 춤은 힘차고 절도있는 동작이 특징이다. 쿵쿵 울리면서 딱딱 끊어지며 진행되는데 음악과 춤이 절정에 이르면 케이프 아래에 이끌려 온 소에게 칼을 꽂은 춤이다.

폭스 트롯은 1910년대 미국에서 시작한 사교춤이며 왈츠가 고상하고 큰 물결을 나타낸다면, 폭스 트롯은 굴곡이 많은 잔 물결을 나타내기에 웨이브가 크고 조금 더 빠르고 가벼워 보이는 춤인데, 인생의 희노애락이 진한게 묻어난 춤이라고 한다.
이 책은 통하여 춤의 종류가 이처럼 다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 춤은 몸과 몸이 움직이는 것, 몸은 그 사람의 일생을 담고 있는 것. 몸은 오직 그 사람만의 희열과 서글픔과 눈물을 내비치는 것. 그들의 손을 타고 몸을 타고 그들의 삶이 흐른다. " (p. 241)

우리 민족도 예로부터 삶 속에서 춤을 추었건만, 어느 사이 그 춤들은 우리에게서 멀어진 감이 있다. 모내기를 하면서도, 추수를 하면서도, 한바탕 신명나게 놀아 보았던 민족인데...
우리의 춤도 다시 살리고, 서양의 춤들도 배워가면서 인생의 구비 구비를 넘어간다면 훨씬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