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한다는 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내가 그의 작품을 접하게 된 것은 '여행의 기술'을 통해서이다. 여행관련 서적들을 많이 있다보니,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여행에세이라고는 하지만 글을 풀어나가는 방법이 신선하고 독특하면서도 책속에 담겨진 구절들중에 마음에 와닿는 내용들이 많았다. 그렇게해서 시작된 '알랭 드 보통'의 작품은 '행복의 건축'.
여기까지는 무난하게 읽게 되었는데, 그 다음에 읽게 된 작품은 좀 힘겹게 읽었다.
바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였다. 분명 사랑에 관한 소설이라고 알고 읽었건만 그 느낌은 이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은 거의 다 느꼈을 그런 느낌.....
책을 별로 읽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중간에 포기하고 말 그런 책인 것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브리티시 항공 보잉기 안에서 1인칭 화자와 클로이(여)의 만남에서부터 헤어짐까지의 사랑의 과정을 저자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엮어 나간다.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는 비행기 탑승의 확률 계산으로 부터 시작한다. 보잉기의 내부 그림까지 곁들여 가면서 계산한 확률은 5840.82분의 1이란다. 이것이 두 남녀의 '낭만적 운명'에서 정해진 필연적 사건의 만남이 될 이야기의 시작이다. 그이후의 과정별 상황 전개의 심리적 분석, 어떤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 그때의 철학적 분석 등이 계속 이어진다. 모든 상황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마르크스, 자유정치, 공포정치까지 동원하여 설명이 이어진다.
그러니 달콤한 사랑이야기를 생각했다면, 읽는 도중에 많은 갈등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읽고 나면 '사랑'의 과정 과정의 심리적 분석과 철학적 사유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너를 사랑한다는 것'이미 1995년에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소개된 작품이다.
'알랭 드 보통'의 작품 중에 소설로 분류되는 작품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Essays in Love>(1993>,<우리는 사랑일까 The Romantic Movement>(1994),<너를 사랑한다는 건 Kiss and Tell>(1995), 이렇게 세 편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모두 작가의 20대 작품들이니, 초기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세 작품을 묶어서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이라고 칭한다고 한다.
그러니, 이 세 작품 중의 한 작품이라도 읽어 보았다면 '알랭 드 보통'의 초기 작품의 성향을, 그리고 그의 작품의 특색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결코 소설이라고 분류는 되지만 소설, 철학적 사유가 담긴 에세이인 것이다.
그런데, '너를 사랑한다는 건'은 여기에 전기(傳記)라는 형식을 더 첨가해야 할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2010년 인터뷰에서

“내 글은 모두 일종의 자서전이죠. 나는 늘 독자와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관련을 맺는 것, 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p334)

위와같이 이야기했으니, '너를 사랑한다는 건' 주인공도 역시 작가의 페르소나인 '나'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나'는 그동안 애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공감할 줄 모른다.", " 자기밖에 모른다."는 말을....
'알랭 드 보통'이 다방면에 걸쳐서 지적 수준이 상당히 높으니, 자칫하면 들을 수 있는 말들임에는 틀림없다.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할 줄 모른다면 더욱....
그래서 그는 이사벨을 만나게 되면서 그녀를 알아나가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나, 성격만이 아닌 그녀에 관한 어떤 작은 것이라도 낱낱이 분석하고 생각하고 알아가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그녀에 대한 전기를 쓰는 것이다.
전기란 흔히 특별한 사람의 일생을 쓰는 것이지만, 이런 기존의 전기가 아닌, 자신이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는 이사벨의 전기를 쓰는 것이다.


새로 만나게 된 여자의 전기를 자신의 손으로 써 나가는 것이다.
그녀에 관한 일이라면, 조상대부터 시작해서, 그녀의 부모, 친지, 가족, 그녀의 태어남, 학창시절 등.... 시시콜콜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조차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써 나가는 것이다.

 


이사벨을 알기 위해서 이사벨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전기를 써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이니, 그렇게 쉽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는 않을 것은 이미 짐작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토대로 작가는 철학적 사유, 문학 등 그가 알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폭넓게 펼쳐 보여주는 거이다.
'알랭 드 보통'만이 쓸 수 잇는 독특한 문체로 설명이 필요하다면 그 어떤 자료도 모조리 수집하여 ....



그런 이야기속에는 작가의 자전적 경험과 풍부한 지식, 유머 등이 함께 담겨 있다.
위트를 엿 볼 수 있는 내용 중엔 '코딱지 파기'에 대한 요령과 처리방법까지 소개되니....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것. 그리고 책읽기만으로도 서로 다른 것을 읽게 된다는 것은 너무도 수긍이 가는 문장들이다.
내가 읽은 <호밀밭의 파수꾼>, <죄와 벌>.
알랭 드 보통이 읽은 <호밀밭의 파수꾼>과 <죄와 벌>.
그리고 이사벨이 읽은 <호밀밭의 파수꾼>과 <죄와 벌>은 모두 다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들의 배경에 대한 생각에서부터 작품 속의 이해까지...
이사벨이 그리스 여행을 가려고 할 때 그녀가 범하는 '그리스'의 위치에 대한 오류. 그것 역시 작가는 그만의 재치있는 생각을 보여준다.


이렇게 '알랭 드 보통'은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문체와 작품의 전개 방법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의 기쁨과 슬픔>, <공항에서 일주일>을 쓸 수 있는 것이며, 그 작품들 속에서도 작가의 독특한 문체와 함께 모든 일에 한치의 틈도 보여주지 않는 완벽함과 열정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알랭 드 보통'의 작품들이 내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들도 있고,
그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나의 지식이 너무도 짧음에 나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계속 그의 작품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작가의 페르소나인 '나'와 이사벨은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 궁금할 것이다.
이렇게 완벽하게 타인을 이해해 가려는 노력을 했는데,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에 대한 답은 바로 책 속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다보면 중간 부분을 넘어서 몇 페이지에 걸쳐서 사진이 나오게 되는데, 그 사진들을 보면 이사벨과 그의 부모, 가족, 사귀었던 남자친구들의 사진까지 나오게 된다.


역시, '알랭 드 보통'의 글들은 모두 자전적 내용이었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의 작품은 만나면 만날수록 친해지게 되는 그런 작품들이다.
읽기에 좀 힘겹게 느껴지더라도 한 번 끝까지 읽게 되면 그의 작품을 또 찾게 되는 매력이 있는 그런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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