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세상을 바꾼 여인들
이덕일 지음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어릴적에 아버지가 사다주신 책들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습관처럼 삶의 한 부분이 되어온 독서.
좋은 책을 만났을 때의 뿌듯함은 어릴적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마음인 것이다.
오래전 '재미있는 역사이야기'(아동 도서) 시리즈를 읽으면서 역사 속의 이야기들에 흥미를 느껴서 한때는 사학을 전공하려던 꿈도 있었지만 대학입시에서 실패하면서, 지리학을 전공하는 것으로 학문의 길을 바꾸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는 이루지 못한 꿈이 있기에 역사서나 역사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그런 장르의 책들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우리 역사 속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한 여인들.
그들의 이야기는 영화, 드라마, 소설 등의 소재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이다. 
특히, '이덕일의 세상을 바꾼 여인들'에 나오는 25명의 여인들은 단골메뉴처럼 각종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소개되고 있다.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천추태후', '선덕여왕'의 선덕여왕과 미실, 장희빈, 정난정, '인수대비 한씨', '헤경궁 홍씨' '어우동' 등의 이야기는 너무도 잘 알려진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나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기에 이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 것인지는 확실하게 알지를 못한다.
그러나, 이런 드라마가 전개될 때마다 떠도는 이야기에는 역사적 사실과의 거리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라는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전에 읽었던 소설 중에 '소설 이사부(정재민, 고즈윈/2010)' '소현(김인숙, 자음과 모음/2010) 등도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작품들이었다.
또한,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역사서는 승리한 자들을 기로이기에 정확한 사실보다는 정권유지를 위한, 정권을 탈취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비리들은 은연중에 숨겨진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요인은 그 역사서가 쓰여진 시점이 아닌, 현세에 들어와서 정권을 잡은 사람들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부풀려지고 미화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거론되는 인물 중의 '신사임당'.
신사임당이 5만원권 지폐의 모델인데, 모델이 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이 많았다.
'왜 지폐의 모델이 남성중심적이냐?" 란 반발에 선택된 인물이 신사임당이지만, 그녀가 정말 '양처'였을까 하는 관점. 그리고 현대 여성들의 롤모델이 '현모양처'를 지향하는가 하는 물음에도 "그렇다"라고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과 함께, 나 자신이 역사속의 인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소설적 허구보다는 좀더 사실에 입각한 인물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시대가 오래되면 오래될 수록 역사속 인물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문헌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최소한 독자들이 역사속의 인물을 바로 알고나서 그다음에 소설적 허구가 가미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역사속 인물의 모습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드라마, 영화, 소설을 통해서 알고 있는 사실들이 진실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때문이다.


 

'이덕일의 세상을  바꾼 여인들'은 이런 나의 생각을 너무도 잘 반영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이 책을 읽는내내 하게 해 주었다.
너무도 낯익은 역사속의 25명의 여인들.
그들은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태어났기에 여러가지 제약들이 있었고, 자신이 타고난 운명이 비천하기에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였으며, 그 결과 드디어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도 하였고, 그중의 몇 명은 더 큰 것을 얻으려는 욕망에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불태워 버려야만 했던 여인들도 있는 것이다.
책 속의 인물중의 여인인 '신사임당'.
그녀는 시와 그림에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과연 현모양처였을까?
그녀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의 많은 부분이 신사임당의 아들인 이이가 쓴 '나의 어머니 일대기'에 의존하기에 객관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들이 쓴 어머니의 일대기는 "쓸 것"과 '못 쓸 것"을 충분히 구분해서 썼을테니까.
신라의 3명의 여왕들. '선덕', '진덕'.'진성'. 그녀들은 통일신라의 주축을 이룬 업적을 세웠지만, 그녀들이 여인이었기에 과소 평가되는 점도 있는 것이다.


 

특히 '진성여왕'에 대한 남성편력같은 것은, 신라시대에 있을 수 있는 근친혼에 대한 시각을 여왕을 깎아 내리기 위한 수단으로 썼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대의 풍습은 그 시대의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화랑세기>뿐만 아니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살펴보아도 신라 지배계급에게 족내혼은 자연스런 풍습이었다. 후대인의 시각과 관습으로 과거인을 비판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이자 횡포일 뿐이다. (p235)

'소현세자빈 강씨'는 청나라 볼모로 끌려가서까지 인질생활에 좌절하기보다 대규모 영농과 국제무역을 주도하는 경영가로 변신을 하였지만, 인조의 과민한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희생당한 여인이다.

 
 

이처럼 정권유지를 위해서, 당파의 정권 장악을 위하여, 희생된 여인들은 연산군의 어머니인 성종의 비인 윤비, 장희빈 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서는 많은 부분을 의도적으로 가리고 있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이덕일은 역사속 25명의 삶을 문헌을 통해서 추적해 나간다.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역사서들의 내용을 들추어서, 그것도 한 권의 역사서로는 많은 오류를 범할 수 있기에 '실록'을 비롯하여 각종 문헌들을 살펴보면서 이들의 삶을 재조명해 나간다.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의 마지막 인물인 '최용신'을 읽으면서 오래전 흑백 영화로 보았던 '상록수'의 한 장면과 심훈의 '상록수'을 읽을  때 감동적이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일본인들에 의해서 학당에 들어올 수 없는 학생들이 제한되자, 창문 너머에 다닥다닥 붙어서 수업을 들으려는 시골 어린이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식민지 시절에 가난한 농촌의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주민들을 계몽하기 위해서 일생을 받쳤던 '최용신'의 모습이 이 책의 그 어느 여왕보다, 권세를 누리던 어떤 여인들보다,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 갖은 야망을 충족시켰던 그 어느 여인의 이야기보다 값지고 값지게 느껴졌다.

 
언제나 역사소설을 읽으면서, 역사서를 읽으면서 몇 % 부족하게만 생각되었던 이야기들이 '이덕일의 세상을 바꾼 여인들'을 읽으면서 많이 충족 된 느낌을 가지게 해준다.
제법 두꺼운 책인데도 책읽는 재미에 빠져서 언제 읽었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읽혀 나가던 책이다.
청소년을 비롯한 우리의 역사의 진실된  이야기를 읽기를 원한다면 이 책은 그런 마음을 충분히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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