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
멜라니아 마추코 지음, 이현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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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은 후에 책장을 덮는 내 마음은 먼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느낌이다. 아름답고 환상적인 여행이 아닌, 20세기초의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투포와 로마, 그리고 미국의 뉴욕, 클리블랜드, 오하이오를.
그곳의 한가운데에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자유를 찾으려고, 사랑을 지키려고 허우적거리는 헐벗고 굶주린 이민자인 디아만테와 비타가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Vita는 이탈리아어로 삶, 인생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여자 주인공 소녀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더 한층 이 단어가 나타내는 중의성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이 소설은 이탈리아의 국민작가라고 할 수 있는 '멜라니아 마추코'가 자신의 아버지와 큰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전설처럼 내려오는 집안의 이야기를 추적하면서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마추코' 가문의 가계도와 집안의 내력이 밝혀지게 되는 과정을 소설로 엮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의 할아버지인 '디아만테'와 여자 주인공 '비타'를 비롯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실존인물인 것이다. 거기에 이탈리아의 유명한 마피아 '검은손'그리고 장례업자인 '본조르노 형제' 성악가 '엔리코 카루소' 역시 실존인물인 것이면 소설의 후반부에 디아만테에게 자선을 베풀어서 병원비를 내주는 '찰리 채플린'은 그당시 무명 유랑극단의 배우로 작품에 까메오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작가가 '마추코'집안의 내력을 추적하는 과정과 이 소설을 쓰게 되는 과정이 이야기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 거기에 '다이'대위, 즉 '디아만테2세'의 소설 첫부분부터의 등장은 이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더해 주기도 한다.
1903년 4월 12일, 이탈리아에서 대서양을 거쳐서 미국에 도착한 한 척의 배에서 내리는 12살 디아만테와 그의 손을 꼭 잡은 소녀 비타. 이미 십여 년전에 하모니카 하나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곳에서 하숙집과 가게를 운영하면서 뉴욕에서 살고 있는 투포 사람중에서는 가장 부유한 아넬로, 그는 비타의 아버지이며, 이탈리아에서 가난에 시달리는 투포 사람들을 미국으로 건너 올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다. 아넬로의 주선으로 단 돈 12달러를 들고 미국땅에 들어오는 디아만테에게 미국은 화려한 신기루의 나라가 아닌 가난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는 땅인 것이다.
가난은 굴레가 아니던가.
맨해턴의 화려함이 아닌 세계 각지에서 도착한 이민자들로 들끊는 가난한 도시의 뒷골목, 그곳에는 거지, 도둑, 살인이 있는 것이다.
미국인들에게 이민자들, 특히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초대받지 않은 외국인이자 달갑지 않은 이방인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힘겨운 것은 먼저 온 이탈리아 이민자들. 그리고 힘있는 이탈리아인들이 이들에게 행하는 폭력과 착취가 더 힘겨운 것이다.

이 힘겨운 곳에서 버티어 나가는 디아만테의 이야기가 너무도 안타깝게 그려진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비타와의 엇갈리는 운명과 사랑이 애잔하게 느껴진다.
이 시대의 이탈리아 젊은이들에게는 미국은 환상의 나라였고, 친숙한 나라처럼느껴졌기에 그들은 돈을 벌어서 가족들을 부양하고자 하는 마음에 미국으로 향했지만 돌아온 것은 그 무엇이었는던가.....
디아만테가 뉴욕을 떠나기로 한 날에 비타와 함께 춘  축제의 춤.
그리고 우승의 순간.
바닷가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고 비타와 결혼을 하겠다고 다짐을 하곤 그녀의 곁을 떠나지만....


 
그 길은 디아만테에겐 더 힘겨운 워터보이의 길이었고, 4년동안 강제노역과 감옥 생활과 같은 삶 속에서 남은 것은 고작 30달러.
그리고, 도망쳐서 비타를 찾고, 사랑의 날을 보내지만 또다시 그녀와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디아만테의 삶과 사랑.
이 소설의 내용은 시대의 순서가 약간 뒤바뀌어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뒤바뀐 순서때문에 나중에 나오는 내용들의 심리파악이 더 쉬워지기도 한다.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들 중에는
어느날 로마에 돌아와 살고 있는 디아만테를 찾아온 미군 대위 '다이'.
다이가 생각하던 디아만테는

그는 신비에 싸인 남자였고 부모들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유령이었다. (...) 그는 실제 인물이면서 동시에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페르세 폴리스의 공주를 영원히 사랑했지만, 10년 만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녀를 떠난 궤린 메스키노처럼, 그리고 레프쉬 처럼 말이다. (p229)
뜻하지 않은 그의 방문에 '디아만테'는 자신의 신분을 속이지만, 그가 누구인가를 어렵지 않게 짐작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한 번의 안타까운 만남은
오랜 세월이 흐른후, 로마까지 찾아온 비타와의 만남.

하지만 모든 것은 그들이 마시는 커피, 너무 진하고 씁쓸하고 추억처럼 먼지가 낀 커피와 함께 침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사람이 맞나? 이렇게 투명한 눈을 가진 이 남작 디아만테였나?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실물처럼 나타났던 그 소년이 맞나? 구명보트에서 그녀에게 와서 그녀를 꼭 안고 밤을 보냈던 그 소년인가? 다이아몬드는, 아주 귀하고 눈부시게 빛나고 유리를 자를 수 있기도 하지만 빛이 비칠 때에만 빛이 난다. 어둠 속에서는 아무 가치도 없다. (p339)

그토록 잊지 못했던 사랑앞에 디아만테는 그녀와의 짧은 만남을 끝으로....


다이 대위앞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그리고 비타와 마지막 남은 생을 함께 하지도 못하는 디아만테의 마음이 쓸쓸하고 서글퍼 보인다.
마치 한 사람의 쓸쓸한 작은 뒷 모습을 보는 듯한 그런 마음이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추천의 말'들에서 찬사가 쏟아지는 글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 궁금증은 이 책을 몇 페이지 읽지 않아서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거의 100 여년에 걸친 '마추코'집안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작가의 섬세하고 치밀한 구성과 문체가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흥미롭게 그려진다.
그당시의 미국 사회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이민자들의 고달프고 힘겨운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그 이야기들에는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가 바탕이 되면서 소설적 요소인 허구의 인물이 함께 하기도 하는 사실과 허구가 어우러진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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