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끔찍하고 충격적인 사건들.
그러한 사건을 파헤치고 폭로하는 기사들은 관심있게 읽곤 하지만, 사건의 피해자들이 겪어야 하는 힘겨운 날들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한다. 때로는 한낱 가십거리로 생각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나영이 사건이나 그와 유사한 사건들도 피해자들이 언론을 피해 다녀야 하는 고충을 겪기도 했다.
이런 문제점들은 한 번쯤은 짚고 넘어 가야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언론에 의한 피해도 피해이지만, 피해자들이 가지게 되는 트라우마에 대한 생각들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부딪혀 보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 깨닫게 되기도 했다.

 
 '룸'의 이야기는 2008년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던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났던  납치, 밀실 감금에 의한 장기 성폭력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은 소설이다.
그런데, 의외로 오스트리아에서는 이런 사건이 알려진 것만해도 3건이나 있으며, 유사한 사건이 이탈리아에서도 일어났다.
올드 닉이란 성폭력범은 학교앞에서 19살 대학생을 납치하여 7년간이나 지하 밀실에 가두어 둔다. 이 소녀는 납치범의 첫아이는 사산을 하고, 두번째 아이인 잭을 낳게 된다. 그리고, 창문 하나 없는 습하고 탁한 작은 밀실에서 아이와 함께 생활을 한다. 어김없이 밤 9시에는 올드 닉이 찾아오고, 그 시간이 되면 잭은 방안의 가구에 들어가서 잠을 청하게 된다. 이런 비참한 생활 속에서 엄마는 잭에게 이런 저런 교육을 시키게 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5권의 책과 TV , 그리고 작은 세면실과 조리를 할 수 있는 곳. 그리고 닉이 가져다 주는 최소한의 먹을거리와 남루한 옷.
태어날 때부터 좁은 공간의 밀실, 그리고 머리위의 작은 천창뿐.
잭은 5살 생일이 될 때까지 이 세상은 그 좁은 밀실과 TV 속의 세상만을 보고 자란다.
영리한 엄마는 아이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가르쳐 준다. 아이가 세상을 알 수 있도록....

바깥 세계는 모든 것이 다른 것 같았다. (P130)
"예전에 텔레비전 안에서 산 적이 있었어?"
"말했잖아. 텔레비젼이 아니야. 진짜 세상 얼마나 넓은지 넌 상상도 못할 거야." (P145)
모자는 무섭지만 용감하게 탈출을 시도한다. 잭이 알고 있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탈출처럼 잭이 죽은 걸로 위장하여....
모든 탈출 계획은 잭이 알고 있는 동화나 이야기를 통해서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이해시켜야 한다. 영리한 엄마, 그러나 불안한 엄마.

"무서운 느낌이 드는 건 당연한거야. 하지만 행동을 용감하게 해야 한단다. (P198)
"우린 무섭 용감하지? 우린 무섭- 용감한 사람들이야. 바깥에서 보자" (P230)
처음 세상에 나가는 잭이 그 낯선 세상에서 과연 탈출을 성공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얻어 엄마까지 구할 수 있을까?
'무섭-용감'하게 탈출하여 엄마까지 구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한순간에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어 신문과 텔레비젼에 까지 나오게 되지만, 그것은 이들이 바깥세상에서 홀로서기 위해서는 너무도 힘든 현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정신병동에 입원하기도 하고, 엄마는 자살까지 시도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편안하게 쉴 곳은 그리 마땅치가 않다.
엄마는 밀실에 대한 기억이 끔찍하지만, 잭에게는 그 방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내용은 잭과 엄마의 탈출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이런 현실에 처했던 사람들이라면 탈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삶일 것이다.
특히, 잭과 엄마는 조금은 다른 입장일테니까.
엄마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기에 그 밀실이 지옥과도 같은 끔찍한 곳이지만, 잭은 그곳에서 낳고 자랐기에 그곳이 잭에게는 편안한 곳일지도 모른다.
그런 엄마와 아이의 입장차. 그리고 안에 갇혀 있다가 얻게 되는 자유에 대한 반응. 그리고 밀실에 대한 밖의 세상에 대한 적응.
이런 난제들을 '엠마 도노휴'는 5살 잭의 눈으로 그려낸다.
이들에게 밖의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이 책의 끝부분에 나오는 내용처럼 자신이 갇혔던 곳에 가보는 것이다.
엄마에게는 끔찍했던 기억을 잊을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고, 잭에게는 왠지 그리워지는 지난날에 대한 장소에 대해서 잊을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부딪혀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깨트리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를 느끼게 된다.
하나는 인간의 잔인함은 어디까지일까 하는 것.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하는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인간은 이성을 가졌건만 그것을 망각한 듯한 행동을 일삼는 인면수심의 인간의 모습. 엄마가 잭에게 이야기했듯이 올드 닉은 가슴이 없는 사람. 감정이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은 환경에 의해서 굳어진 생각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밀실에 오랜 세월 갇혀 지내다 보면, 이 생활에 순응하게 되어 타인의 말을 무조건 믿게 되는 4~5살의 인지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한다.
마지막으로 사람에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는 부딪혀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들이 인간다운 생각과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 잭의 말, 뇌리에 스쳐간다.

"안녕, 천정아."
엄마는 나를 쿵하고 내려놓았다.
"안녕, 방아."
나는 천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말했다.
"인사해. 안녕, 방아."
엄마는 소리없이 말했다. 나는 한 번 더 돌아보았다. (P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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