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어준다면
게일 포먼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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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선택도 아니었는데, 어떤 불가항력적인 것에 의해 깊은 상실감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얼마전의 연평도에서의 병사의 죽음. 휴가를 가려던 길에 일어난 엄청난 폭탄세례에 의한 전사. 그것이 운명인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단란한 한 가정의 행복이 눈이 살짝 내린 날의 교통사고에 의해서 송두리째 무너져 버렸다. a.m 7:09 시속 60마일로 달리던 4톤 픽업트럭이 조수석을 강타하면서. 그것은 원자폭탄과 같은 강한 파괴력을 가졌다.
단란한 가정에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그 누군들 생각했겠는가.
사고 차량 안에서는 여전히 베토벤 첼로 소나타 3번이 흐르고 있었다는 구절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래서 더 애석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미아는 이 사고 후에 자신의 가족들의 안위를 챙겨 본다.
아버지의 끔찍한 모습, 그리고 엄마의 모습. 동생 테디는 아직은 살아 있는 듯....
그리고, 미아는 튕겨져 나와 도로 한켵에.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그리고 자신을 헬기로 병원으로 후송하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본다.
여기까지 난 잠깐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다른 가족은 모두 죽거나 중태인데, 어떻게 가족들을 챙기며 다닐까. 그리고, 자신의 상태까지 짐작하는 것일까.
그것은 미아의 몸에서 빠져 나온 영혼(?)이 내려다 보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더 애잔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 소설의 구성은 이처럼 미아 가족이 차를 타고 도로로 나오는 a.m. 7:09 에서부터 다음날 a.m.7:16까지의 미아가 가족들의 죽음과 자신이 중환자실에서 있으면서 미아의 회복을 애타게 바라는 남자 친구 애덤과 여자친구 킴의 이야기와 행동을 몸에서 분리되어 나온 영혼이 모두 지켜보는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축의 이야기는 엄마, 아빠의 결혼, 직업선택, 그리고 미아가 태어나고, 남동생 테디가 태어나게 되는 이야기. 미아가 선택한 첼로에 얽힌 이야기. 친구 킴과 애덤과의 관계 등으로 이루어 진다.
이렇게 구성된 작은 이야기들이 주는 여운은 좀 색다르다. 미아의 기억 속의 이야기들을 통해 펑크족 뮤지션이 되고자 했던 아버지가 가족이 생기게 되면서 중학교 영어 교사를 선택해야 했던 것. 엄마가 테디를 낳게 된 이야기. 자신이 애덤을 첫 남자 친구로 사귀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첼리스트의 길을 걷기 위해서 줄리어드에 입학시험을 보게 된 이야기 등이 모두 선택을 해야 했음을 상기시키게 된다.
지금 중환자실에 주렁주렁 링거를 매달고 있는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들이 모두 떠난 이 세상에 살아 남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가족 곁으로 가야 하는가를 자신이 선택하여야 하는 것인 것처럼.
깨어나기를 원하는 것도. 그리고 이 세상에 남을 지, 말 지를 결정하는 것도 자신의 선택인 것처럼

 
 
그렇다면 아버지의 인생은 할아버지의 선택이 아닌 아빠의 선택이었을까? 이전의 자신의 물음에 대한 아빠의 대답을 기억해 본다.

아빠는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아. 이건 참이 아니면 거짓인 수학 명제가 아니거든. 선생이냐, 음악이냐, 청바지냐, 정장이냐 그런게 아니야. 음악은 언제나 아빠의 인생의 일부일 거야. (...) 살다보면 때로는 내가 선택하기도 하고, 때로는 내 선택이 나를 만들기도 하지. (p208)
제발 깨어나기를 바라는 애덤의 기대. 그것은 단 일 초만이라도 자신이 여기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딱 일 초면 돼. (...) " 왜? 일 초동안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데?" (...) "내가 여기 왔다는 걸 보여주려고.... " " 아직 누군가 여기 있다는 걸" (p136~137)
미아는 킴과 애덤이 자신이 누워 있는 중환자실에 오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하는 이야기를 육체에서 빠져 나온 영혼의 형태로 듣게 되는 것이다.
가정이 없는 이 곳에서 혼자라도 꼭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택은?
이 소설의 마지막 시간인 다음날 a.m. 7:16 어렵게 중환자실에 들어 올 수 있게 된 애덤은 미아를 위해 음악을 듣게 해 준다.
꺼져가는 생명을 남게 하기 위해 귀에 헤드폰을 씌워주고 가슴에 아이팟을 올려 놓았다. 애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 아니라서 미안하다며 그게 최선이었다고 말했다. 내가 아침 공기 속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애덤은 볼륨을 높였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았다. 요요마다. '안단테 콘 포코 에 모토 루바토] 낮은 피아노 선율이 마치 경고처럼 들린다. 그리고 피 흘리는 심장 같은 첼로 소리. 내 안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는 것 같다.  (p249)
이 소설은 이렇게 교통사고로 인하여 한 가정의 행복이 무너져 버리는 이야기. 그리고 중태에 빠진 딸이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는 이야기로 커다란 상실감을 느끼게 하게 하기도 하지만, 중환자실의 딸의 혼이 가족들의 단란했던 추억을 더듬어 가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지면서 가족간의 사랑, 친구와의 사랑, 자신의 미래에 대한 선택 등 삶의 의미와 사랑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작가의 친구 가족의 실제 이야기가 바탕이 된 소설인데, 작가 후기의 한 구절이 소설의 모든 이야기를 함축시켜 주고 있다.
사랑은 결코 죽지 않으며 사라지지도 희미해지지도 않는다. 당신이 사랑을 놓지만 않는다면 사랑은 불멸을 가능케 한다.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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