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읽으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우선 책의 두께에 압도당해 버릴 것이다. 빽빽한 글씨로 쓰여졌던 옛 세계 고전 시리즈를 읽은 이후에 이처럼 한 권의 책이 엄청난 두께로 묶어진 책은 그리 쉽게 볼 수 없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도 꽤 두꺼운 책이지만 2권으로 분권이 되었고, 그밖의 요즘 책들은 적당히 분권이 되니, 읽는 도중에 쉬었다 읽어도 무난하다.
이 책은 본 내용만 735쪽, 그리고 후기, 부록, 작품론 까지 799쪽에 달한다.


그러나, 책의 두께에 비해서는 읽는 속도는 그리 느리지 않게 읽을 정도로 속도감이 붙기도 한다. 그래도 여러 날을 손에 들고 있어야 함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가 어떤 연관성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기엔 좀 동떨어진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의 약력과 이 책의 의미를 알게 된다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한 권의 책 속에 두 권의 책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측면은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하는 기행문의 의미. 그리고 또 다른 측면은 여행중의 모터사이클 관리를 중심으로 관념에 대한 이야기, 즉 고대 희랍인의 시각과 그러한 시각이 갖는 의미에 관한 철학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에 따라서 철학적인 내용이 힘겹게 읽혀진다면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하는 부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읽어도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한 편의 소설적 구성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철학서이기도 하지만 이와 동시에 문학 작물이기도 하다. (...) 작가 자신의 말대로 이 책은 " 관념에 관한 한 권의 책과 사람들에 관한 또 한 권의 책" 이라는 "두 권의 책" (부록 751)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관념에 관한 한 권의 책이 철학서라면 " 사람에 관한 또 한 권의 책" 에 해당하는 것은 바로 소설 형식의 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p768) - 역자의 글 중에서




 
 
여기서 잠깐 저자인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에 대해서 알아 본다.
그는 화학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나, 학업을 중단하고 군 입대를 하게 되는데, 한국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  그때에 동양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래서 인도에 가게 되고, 그때부터 철학공부를 하면서 저널리즘 공부도 겸하게 된다. 이렇게 우수한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가지게 되기도 하는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정신병원에 수용되기도 하고, 회복된 후에 아들인 크리스와 서덜랜드 부부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을 하게 되는데, 바로 이 여행이 '선과 모터사이클의 관리술'의 기본 골격이 된는 것이다.
그러니, 선(禪)의 의미가 동양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선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모든 관념의 이야기와 연관을 가지게 된다.
또한, 이 여행은 어디에 도착하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확실한 계획을 짜놓지 않은 상황에서 모터사이클 여행 자체를 즐기기 위한 것이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린다는 것은 그저 경치를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경치 속에 몰입되는 것이고, 폭풍우도 분명히 그 경치의 일부분이다. (p52)

그리고, 이 여행은 처음엔 서덜랜드 부부와 아들이 크리스,이렇게 4명이 떠난 여행이지만 서덜랜드 부부와는 1부,2부에서 동행을 하게 되는 9일간의 이야기. 그리고 3부,4부는 아들인 크리스와 계속 8일간을 더 여행을 하게 된다.
그 여행 과정에서 그는 '야외강연'이라는 이름의 자신과의 말하기를 통해서 철학적 사유를 뱉어낸다. 
그리고, 자신속의 또다른 자아. 즉 그를 정신병자가 되도록 몰아간 장본인이라고 생각되는 '파이드로스'.  과거의 자신을 파이드로스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자신이 거쳐가는 길 위에서 과거의 자신이 그 길 위에 있었음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과거의 그'라고 생각하는 '파이드로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그의 과거의 행적과 행동, 생각들을 독자들이 알 수 있도록 한다.
파이드로스. 그것은 오래전 잃혀진 과거의 기억을 거머쥔 존재이기에 희미한 과거가 되어버린 잃어버린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파이드로스가 추적했던 바로 그 유령을 좀 더 깊이 추적해 보고자 한다. 말하자면, 합리성 그 자체, 그러니까 근원적 형상이라는 지루하고 복잡하며 고전적인 유령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p192)

그의 여행길은 과거와 마주치는 장소이며, 이야기들이기도 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학적 의미의 묘사가 돋보이기도 하는 문장들과 철학적 의미의 사유의 계층 체계 속에서 잃어버린 가치를 탐구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방대한 분량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힘겨운 독서이기도 하지만, 이 책의 역자의 열정적인 번역이 있었기에 우리들이 이처럼 대단한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며, 역자가 강조하듯이 '사서 보든, 빌려 보든, 베껴 보든, 빼앗아 보든, 훔쳐 보든, 놓치지 마라!'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

아마도 이 책을 읽게 되는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독서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