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 - 최갑수 골목 산책
최갑수 글.사진 / 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때로는 이전에 찾았던 곳을 찾아감으로써 언젠가 마주쳤던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가고 있는 것인지를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추억이 담겨져 있는 청파동 골목 길을 아주 가끔씩 들여다 보곤 한다. 그곳엔 내 어린 날의 추억이 깃들어 있다. 내가 살던 집은 그 누군가에 의해서 연립주택으로 탈바꿈을 해 버렸고,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복숭아 나무, 앵두나무, 넝쿨 장미, 그리고 라일락 나무는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늦은 밤엔 집에 돌아오는 길이 무서워서 아랫 골목 길로 가지 않고, 윗 골목 길에서 언덕을 뛰어 내리면서 '문 열어!!'하면서 소리치기도 했는데, 어른이 되어서 가보니, 그 언덕길은 너무도 짧은 길이었던 것이다.
친구들과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축대가 높다란 어느 집 근처에서는 그 근처에서 고양이가 죽었다고 하면서 소리치면서 도망다니기도 했는데....
청파동. 이곳은 내가 자랄 때만 해도 일본인들의 적선 가옥이 많았던 동네여서 높은 축대에 넓은 마당을 가진 좋은 집들이 많았다. 은행장 집도, 육군 준장 집도.
그래서 동네가 참 아름다웠다. 담장에는 넝쿨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고, 라일락 향이 풍기는 그런 동네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큰 집들이 연립주택이 되어 버렸고, 동네가 을씨년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바로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텐데'의 한 꼭지가 '단편으로 남아 있는 골목의 흔적, 서울 청파동 만리시장길'이다.
만리시장길도 어릴때에 가끔씩 엄마를 따라서 갔던 시장이지만, 우리집은 주로 청파시장을 애용했었다. 그 길은 효창공원을 놀러 갔다 오는 길에 들리곤 하던 길이다.

어릴 적 추억이 담긴 내가 살던 동네를 책 속에서 만나니, 감회가 깊다고 해야 할까.

서부역에서 숙명여대쪽으로 바라다 보면 언덕 능선을 따라 성냥갑 같은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용산구 청파동이다. 한 때 일본식 주택과 한옥, 서민형 주택 등 다양한 양식의 집들이 어울려 독특한 공간감을 빚어냈지만, 1990년대 중반이후 연립주택이 점령하기 시작하면서 서울의 여느 동네처럼 평범해져 버리고 말았다. 옛 골목길의 풍경은 청파동 여기 저기에 단편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p33)
이처럼 최갑수는 강남의 번화한 거리들이 아닌, 강북의 어찌보면 퇴락해 가는 동네들, 가파른 계단이 힘겹게 느껴지는 골목길, 그리고 소읍의 초라한 골목들을 지난 1년 동안 휘젓고 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동네 어르신들과 대화도 나누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아 낸 것이다.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주름살 굵은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정겨운 책으로~~~
진안 백운면 원촌 마을의 독특한 간판들. 인쇄체가 아닌 손글씨가 멋들어진... 그래서 이 곳은 진안의 간판마을로 자리매김을 한 곳이다.


 
그리고, CF와 vj 특공대를 비롯한 프로그램에서 소개되기도 하곤하는 철길마을.
지금은 열차 운행이 중단되어 사진기를 둘러맨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다는...



부산 문현동의 벽화마을.
허름한 집들이 즐비한 마을에 그림쟁이들에 의해서 벽화가 그려지니 마을엔 꽃이 피고, 새가 날고....
글쓴이가 찾은 곳들은 깨끗하게 단장한 그런 곳들이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 그래서 계단 따라 오르고 올라가야 하는 곳들. 지저분하고 추하고 가난한 모습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그 속에서 버려진 깡통과 빨래줄에 꽂혀 있는 빨래 집개마저도 정겹고 운치있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풍경은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서 이렇게도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는 것이고, 인간미가 물씬 풍겨 나는 것이다.
시인다운 서정적 문체와 여행기자다운 느낌있는 사진이 함께 어우러져서 소박하고 잔잔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 비록 가난하더라도 이렇게 모여 살면 그럭저럭 견딜만하지 않을까, 비슷한 자세로, 비슷한 모양새로, 같은 풍경을 나누며 살다보면 우리 좀 더 다정해지지 않을까. (p113)
또, 나그네는 길을 떠난다. '유쾌한 골목, 정겨운 골목- 서울 낙산 이화동, 삼선동 1가'
이곳은 얼마전 TV프로그램 '1박2일'에서 소개된 곳인데, 이승기가 '천사 날개'를 찍었던 곳이기도 한데, 이로 인하여 관광객이 몰려서 밤낮없이 떠들고 셧터를 눌러대니, 주민들의 반발로 '천사날개'가 철거된 곳이다.
'1박2일' 이전에도 디카족들에게 촬영장소로 소문난 곳이었다는데, 이렇게 시민의식이 없어서야.....
그러나, 낙산공원을 상징하는 조형물인 백민섭의 설치 작품 '가방든 남자와 강아지'는 그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낙산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으로도 넉넉하게 그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북촌 한옥마을'까지.
 
 

홍제동의 개미마을의 벽화, 그리고 통영의 동피랑.
동피랑은 동쪽 피랑(벼랑)에 자리한 마을이란 뜻으로 통영의 '몽마르뜨'라고 한다.
나는 통영을 여러 번 찾았건만, 동피랑을 미처 챙기지 못했던 것이다.
저자를  따라서 숨가쁘게 골목길을 오르내리다 보니, 마지막 장에 이르게 된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내용중에 우리의 초라하고 가난한 마을에는 유독 벽화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공공 미술 프로젝트의 일환 등으로 화가, 미술대학생 등에 의해서 그려진 벽화.
내가 사는 동네의 중학교 담벼락에도 여러 해 전에 동화 속의 그림들이 그려졌었다. 그런데, 그 그림이 어쩌보면 유치하기도 하고, 그리 잘 그리지도 못했던 그림들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가 오고, 눈이 오고... 여러해가 지나니, 이제는 벽에 그려진 그림들이 얼룩덜룩 벗겨지고 퇴색하여 흉물이 되어 버렸다.
동피랑에 그려진 그림들은 2년 후에 다시 그려진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전국 여기 저기에 그려진 벽화들을 제대로 관리하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생기게 된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졍겨운 사진들과 골목 길 이야기.
1년의 발자취가 그대로 담긴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텐데'
넉넉한 마음으로 읽고 보고 느끼게 되는 그런 책이다.

삶은 긍정이라고,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할 때도 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을 사랑하는 재능을 갖추고 있다.
꽃 앞에서 잠시 이렇게 생각했다.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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