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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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작가에 대해서 그리 잘 알지는 못한다. 그의 책 중에서 내가 읽은 책이라고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밖에는 없다. 그 책을 읽게 된 동기도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던 벨라스케스의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좋아하는 그림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의외로 이 책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색다르면서도 흥미로웠다.
책표지의 그림은 '왕녀 마르가리타'의 연작 중의 한 작품인 '마르가리나 왕녀와 시녀들'이었는데, 왕녀 마르가리타가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못 생기고 뚱뚱한 시녀가 화폭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그러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이야기의 내용보다는 그가 소설의 모티브로 삼았던 벨라스케스의 '왕녀 마르가리타'를 평소에 좋아했던 그림이었기 때문에
그 시녀는 얼핏 보면 왕녀의 들러리 같은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녀에게도 그녀의 인생이 있고, 사랑이 있음을. 인생에 있어서 자신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소설이다.  박민규 작가의 소설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단 한 편을 읽었지만, 참 강한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작가를 소개하는 사진도 특이했고.


그런데, 새로운 소설 '더블'이 출간되었다고 하니, 아니 반가울 수가 있을까.
'더블' 역시 책표지부터 강하게 다가온다. 가면을 쓴 사람.
그리고, 책은 side 1, side 2,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박민규의 '더블 앨범'인 것이다. 이렇게 두 권으로 된 것은 두장의 LP 같은 느낌의 독특한 책을 만든 작가의 재치가 엿보인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일러스트 화집에는 두 권의 책에 실린 18 편의 단편소설에 대한 뒷이야기가 실려있다. 화려한 화보와 함께.



작가는 이 18편의 이야기를 모두 누군가에게 헌정하기 위해서 쓴 작품들이다.
'누런 강 배 한 척'은 아버지를 위해서. 치매걸린 아내와 함께 떠나는 마지막 여행길.

화단에선가, 가로수에선가/ 꽃잎 몇 장 떨어 / 진다. 떨어졌다. 내 인생에선 낙법이 통하지 않는 것인가.  (P56)
더는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견디기 힘든 것은 고통이나 불편이 아니다. ~~ 어디로 가는 걸까 ? (P65)

'축구도 잘해요'는 자전소설인데, 별의미는 없다고 한다. 자신의 전생이 마릴린 몬로라는 설정도 재미있고.
'낮잠'은 어머니를 위해서.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치매로 평택의 요양원에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는데....
요양원에서 만난 어릴적의 첫사랑. 그런데, 치매 할머니가 되어 있다. 자신의 있는 적은 돈을 모두 자식에게 나누어주고, 이곳에 왔는데. 애잔한 옛추억과 함께 노년이 되어서 가져보는 사랑, 그리고, 회한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서 어머니의 남은 삶이 봄날의 한 조각 낮잠처럼 포근하고 따뜻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말을 일러스트 화집에서 밝힌다. 이 대목을 읽으니, 이 작품이 또다른 감상을 갖게 해 준다.
이외에도, 친구를 위해서, 버락 오바마을 위해서, 알퐁스 도데를 위해서.


 

 

그런데, 이것은 작품을 읽은 후에 일러스트 화집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고, '더블' Side 1, Side2 에는 너무도 다양한 문체와 내용의 글들이 다채롭게 담겨져 있다.
'근처' '누런 강 배 한 척' '낮잠' 과 같은 작품은 서정적이면서도 섬세한 묘사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쉽고도 가슴 뭉클하게 잘 표현해서 읽기가 무난한 작품들이다.
그런데, 집중하지 않고 읽으면 무슨 내용인지 혼돈스러운 그런 4차원적인 이야기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존웨인'에서처럼 냉동보관된 인간들의 해동. '축구는 잘해요'처럼 전생에 관한 이야기 등.
지구위의 이야기도 아닌 우주 속 어떤 곳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21세기를 그들에게는 중세로 표현하는 먼훗날 어느 시점인지도 모를 정도로 미래의 이야기도 있고, 서울 하늘에 아스피린이 떠다니는 그런 이야기도 있다. '슬'의 경우에는 B.C. 17,000 년, 함남 이원 철산 지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도 있다. 오락가락 시공간을 초월하여 알듯 모를듯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다채로운 이야기와 다양한 문체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작품들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더블'의 주제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이 삶이 아무 것도 아니란 걸.
스스로가 아무 것도 아니란 걸.
이 세계가 누구의 것도 아니란 걸.
나는 그저 떠돌며 시간을 보냈을 뿐이란 사실을.
나 혼자 느끼고 또 느낀다.
나는 무엇인가.
이쪽은 삶, 이쪽은 죽음...
나는 비로소 흔들림을 멈춘 나침반이다.
나는 평생을 나무의 근처를 배회한 인간인 것이다.
 

박민규가 말하는 나
그것은

나라는 이름의 그.
박민규의 '더블'은 '나와 그'의 더블 인생이라는 것인가보다.
나와
그리고
가면 속에 가려진 나.
독자들이 가면 속의 인물을 알고 있다면, 가면에 가려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속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가면 속의 인물을 알지 못한다면, 가면에 가려져 있는 그를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독자들이 박민규의 작품 세계를 안다면 작품 속에 숨겨진 박민규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을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박민규의 어떤 작품들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쨋든, 작가 박민규는 어떤 소재와 주제가 주어질지라도 그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멋들어지게 하나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대단한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느낌을 맛 볼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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