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정육점 문지 푸른 문학
손홍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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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읽기전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키인이 한국에 살면서 한국 고아를 입양하여 살아가는 잔잔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책의 분량도 230 여 페이지에 달하기에 그저 그런 흔한 고아 소년의 성장기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이질적인 문화로 다가오는 이슬람 문화. 이슬람 문화의 성격이 그래도 좀 완화되어 있는 터키. 그곳의 사람들은 한국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그들의 삼촌이, 아저씨가..... 뭐 이런식으로 자신들의 친척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했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와 형제의 나라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한국전쟁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던 터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낯선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몸에 큰 흉터를 지닌 하산아저씨.
그리고 그가 고아원에서 입양한 한국 소년 역시 몸에 많은 흉터들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도 보기 흉할 정도로 큰 흉터. 그 흉터는 소년의 기억에도 없는.... 그러나, 그 흉터로 많은 마음의 흉터가 더 크게 남아 있는.....

지옥에서 살았던 사람이 지옥이외의 곳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건 또 다른 지옥일뿐이겠지. (p27)
네 흉터는 그냥 흉터가 아니란다. 그 흉터는 역사가 날염된 것이야. 내몸의 모든 흉터들 역시 내 개인사가 날염된 것들이지. (p221)
이 두 주인공은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있는 근처의 후락한 마을에 살고 있다. 그 허름한 골목에 모여 사는 사람들. 그들의 인생도 찌그러진 인생임에는 틀림없다.
하산아저씨와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그대로 눌러 앉아 살고 있는 그리스인 야모스 아저씨. 허름한 충남식당의 안나 아주머니. 그리고 말더듬이 유정. 기억력이 상실된 사람....   그들은 모두 마음의 흉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밖에도 소년이 있었던 고아원의 벙어리 신부.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정상이 아닌 말더듬이, 벙어리. 기억력이 상실된 사람 등 소외되고 장애를 지닌 그런 인물들이다.
특히, 하산아저씨는 이슬람신도이기에 모스크를 찾기도 하고 기도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슬람교에서 금기시하는 돼지 정육점을 한다.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난도질하는 유일한 무슬림이 아닐까....
소년은 상처투성이 몸과 마음을 가진 누굴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다. 해외로 입양이 되어 입양가족에게 장기를 제공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지 않고 하산아저씨와 살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아이이다.
이런 하산 아저씨와 1인칭 화자인 '나' 즉 소년이 그렇다고 오손도손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고아원에서 입양은 해 왔지만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상을 꾸려 나가는 것이다. 소년은 동물의 말을 알아 듣는 유정과 그리고 하산아저씨, 야모스 아저씨, 안나 아주머니와 부대끼며 살아간다.
작가는 이런 이야기들 중간 중간에 환상 소설이 아닐까 하는 엉뚱하고 터무니없는 소재들의 이야기를 슬쩍 끼어 넣기도 하면서 소년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름답지도 않고 흉터로 보기싫은 세상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나쁘지도 않은 세상을 그려나간다. 이야기속의 사람들의 삭막하고 피폐한 마음을 소년의 눈을 빌어서 차분하게 그려나가기에 더욱 서글픈 마음이 들도록 유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산 아저씨와 소년의 몸에 있는 비슷한 흉칙한 흉터.
하산 아저씨는 고아원에서 왜 소년을 입양했을까.
하산 아저씨와 야모스 아저씨는 전쟁중에 어떤 일을 겪었을까.
소년이 왜 얼굴 스크랩을 할까.
"너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보이지 않는 끈을 발견한 것 같구나."
"그걸 가르쳐 준 사람은 바로 아저씨예요. 보세요. 아저씨, 아저씨 얼굴을요. 아저씨는 어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답고 어떤 터키인보다 더 터키인 다워요"
" 한국인인지 터키인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겠지"
"맞아요, 분간할 수 없게 된다는 것, 아무나 그렇게 될 수는 없는거잖아요. "
   (....)
"안다고 해서 실제로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요. 사랑, 우정, 평화, 자유.... 그런 말은 알지만 그걸 실제로 본 적은 없는 것처럼요. "    (p220)
사람은 본성적으로 누군가를 인종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없다. 그건 우리가 곧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는 능력만을 지녔다는 뜻이기도 했다. (p222)
이런 모든 의문점을 작가는 속시원하게 확 풀어 놓지를 않는다.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서 읽는 이들이 스스로 풀어나가도록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둔다.
그래서 소설의 줄거리보다는 작가의 섬세한 인물묘사와 비유적인 표현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그런 소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첫 문자은 '내 몸에는 의붓 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로 시작하여 '내 몸에는 여전히 의붓 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로 끝맺음한다는 것이다.
이 두 문장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읽은 후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 '이슬람 정육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장소설이라는 틀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런 소설.

 

구부정한 거인을 연상시키는 하산 아저씨의 뒷 모습은 매번 이별을 하는 사람처럼 아득하고 쓸쓸했다.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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