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깨어 있네
이해인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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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의 책을 처음 만난 것은 '민들레의 영토'를 통해서이다. 나에게도 첫 만남이었지만, 이해인 수녀님 역시 첫시집이었던 것이다. '민들레의 영토'는 1976년에 초판이 발간되었고, 내가 소장하고 있는 시집은 1986년 25쇄, 1,800원 정가이다. 그후로도 그녀의 시를 읽으면서 아침이슬과도 같이 맑고 투명한 싯구에 마음이 설레이기도 했던 기억들이 새삼스럽다.


그런데, 2010년 1월에 시인은 우리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서 '희망은 깨어 있네'라는 책을 선보였다.
희망, 감사, 작아짐, 사랑. 이런 생각이 듬뿍 담긴 시와 단상들, 그리고 추도의 글까지......

아침에 잠이 깨어 옷을 입는 것은 희망을 입는 것이고, 살아서 신발을 신는 것은 희망을 신는 것임을 (...) 희망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불러야만 오는 것임을, 내가 조금씩 키워가는 것임을, 바로 곁에 있어도 살짝 깨워야만 신나게 달려오는 것임을 (...)   (책머리글 중에서)


이 책을 손에 드는 순간부터 마음이 숙연해지고 경건해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이해인 수녀의 근황을 익히 들어 알기 때문이다. 그동안 암수술, 방사선치료, 항암치료. 그리고 그런 일련의 생활들 속에서 그녀를 더욱 힘겹게 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영원한 이별이었을 것이다.
절친한 사람인 장영희 님, 김점선 님, 그리고 그녀에겐 신앙에서 있어서 아버지와 같았던 분이신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일생에 있어서 한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도 힘겹건만, 약간의 시차를 두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헤어짐은 병마에 시달리는 수녀에게는 그 어떤 시련보다도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그래서, 수녀는 자신을 '작은 이'가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외로움과 추위를 / 기도 안에 녹여주는 작은 이가 되리라/ 누구에게나 / 정겨운/ 작은 수녀 / 작은 천사가 되리라.  (시 '작은 이' 중에서)
단아하신 모습의 이해인 수녀가 작은 이가 되고 싶어 싶어하는 맘은 평소의 생각이기도 하겠지만, '고통의 학교'에서 수련을 받은 학생이기에 고통 속에서 우러나오게 된 진심어린 고백이라고 생각된다.
책을 잡은 손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왜, 이리도 숙연해지고 내 자신이 작아지고 있는지....
나 자신 욕심없이 살아 왔고, 살아가는 삶이건만, 수녀앞에선 너무도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내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그러니, 내 삶의 모습을 어찌 되돌아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희망은 깨어 있네'의 구성은
1장: 희망은  깨어 있네
2장: 병상 일기
3장: 계절 편지
4장: 채우고 싶은 것들


 


아픈 날의 편지
내가 / 살아서 몇 번이나 더 / 당신을 볼 수 있을 지 / 뜨는 해 지는 해를 / 볼 수 있을지요/ 그리고 / 몇 편의 시를 더 / 쓸 수 있을지요 / 그런 생각을 하면 / 졸다가도 / 정신이 번쩍 들어요 / 언젠가 내가 / 세상을 떠나는 날 / 나는 당신을 위한 / 하얀 새가 되어 / 날아가고 싶어요 / 사랑의 시를 쓰는 바람으로 / 땅에 묻혀도 자유롭고 싶어요 / (p84)

여기까지는 시인이 그동안 써 놓았던 시 100여 편이 실려 있다. 특히, 2장의 병상 일기는 암투병 속에서 겪게 되는 고통 속에서 몸의 아픔은 그녀를 겸손하게, 맘의 아픔은 그녀를 고독하게 해 주고 있음을 섬세하고 깊이있게 표현하고 있다. 그 고통 속에, 아픔 속에서 멀잖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느끼게 된다. 꿈 속에서의 그리운 어머니와의 만남이 절절하게 쓰여지기도 했다.

오늘의 행복
오늘은/ 나에게 펼쳐진/ 한 권의 책/
두 번 다신 오지 않을 / 오늘 이 시간 속의 / 하느님과 이웃이 / 자연과 사물이 / 내게 말을 걸어오네 /
시로 수필로 / 소설로/ 동화로 / 빛나는 새 얼굴의 / 첫 페이지를 열며 /읽어달라 재촉하네 /
때로는 / 내가 해독할 수 없는 / 사랑의 암호를 /사랑으로 연구하여 / 풀어 읽으라 하네 /
아무 일 없이 / 편안하길 바라지만 / 풀 수 없는 숙제가 많아 / 삶은 나를 더욱 / 설레게 하고 / 고마움과 놀라움에 / 눈뜨게 하고 /
힘들어도 / 아름답다 / 살 만하다 / 고백하게 하네/
어제와 내일 사이 / 오늘이란 선물에 / 숨어 있는 행복! (p137)

5장: 언제나 그리움

  
이 장에서는 절친했던 장영희 교수, 그리고 화가 김점선도 암 투병끝에 홀연히 그녀의 곁을 떠나갔고, 그녀들에게 미처 말하지 못했던, 베풀지 못했던 맘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에 대한 봉헌기도도 수록되어 있다.

6장 : 시를 꽃피운 생각들
마지막 장인 6장은 시가 아닌 자신의 일상은 일기형식으로 날짜별로 써나가고 있다. 아주 짧은 일기이긴 하지만, 그 글들 속에서 투병과 치료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감사하는 맘을 표현하고 있다.
'희망은 깨어 있네'는 이처럼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사랑과 기쁨을, 희망을 이야기하는 이해인 수녀님의 따뜻하고 속깊은 시와 글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수녀로서의 모습도, 그리고 딸로서의 모습도, 모두~~ 모두~~ 희망을 놓지 않고, 우리들에게 작지만, 따뜻한 희망을 이야기해 준다.  

이해인 수녀님의 쾌유를 비는 마음으로 이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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