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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3
혜경궁 홍씨 지음, 정병설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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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에서 한국 고전 문학 전집 10권이 출간되었다. 한국 고전문학은 학창시절에 배웠던 기억들은 있지만, 그이후에는 거의 접하지 않은 독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10권의 책이 가지는 의미는우리의 고전문학을 좀더 가까이 접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0권 중에서 3권과 4권은 모두 '한중록'이다.  3권은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인 '정병설'교수가 현대인들이 알기 쉽고 읽기 쉽게 연대, 특정어휘, 친족의 용어 등을 고쳐 놓았다. 가령, 임금이나 왕족들의 호칭을 원본에 쓰인 것과는 다르게 현대인이 알기 쉽게, 영조, 인원왕후, 정성왕후, 정조 등으로 기록한다는 것이다. 4권 역시 '한중록'인데, 이 책은 원본 '한중록'으로 정병설 교수가 주석을 달려 있다. 그러니, 우리들에게는 3권의 '한중록'이 현대어역이기에 수월하게 읽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책에 대한 이야기가 좀 길어졌는데, 조선의 역사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장희빈'과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은 많은 역사소설로 각색되기도 했고, 드라마, 영화 등으로도 많이 소개되었기에 아마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사도세자의 이갸기를 기록한 '한중록'도.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한중록'이 사도세자의 빈이었던 헤경궁 홍씨가 그사건이 일어날 당시에 기록했다고 생각하거나, 사도세자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임오화변'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가 자신의 아들이 정조가 죽은 후에 손자인 순조가 통치를 할 당시에 그의 아들에게 '임오화변'의 이야기를 알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쓴 글이며, '임오화변'의 이야기뿐만아니라, 자신의 일생,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사도세자의 죽음을 묵과, 방조, 또는 그 중심에 있었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친정, 즉 그당시 영의정이었던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인 홍봉한을 두둔하기 위한 '친정을 위한 변명'등으로 이런 이야기들이 시간적 차이을 보이면서 쓰여진 것이다. 그러니, 혜경궁 홍씨가 세 차례에 걸쳐서 회고한 내용의 글이 합쳐진 것이 '한중록'인 것이다. 


그리고, 이 글들이 순조에게 사실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 있었기에 목판이나 활자로 인쇄되지 않고 필사본의 형태로 남아 있기에 이본들이 있고, 그 구성도 조금씩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한중록'이 종전에 다루지 않았던 내용들이나 부분적으로 다루었던 중요한 이본을 모두 포괄했다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좀더 새로운 시각으로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한중록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느낄 수 있는 것은 사도세자의 비참한 죽음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영조라고 하면 조선의 성군으로 일컬어지며, 영정조 시대를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부르며, 특히 영조는 탕평책으로 당파를 없애려는 노력과 검소한 생활을 한 임금으로 많이 알고 있는데, 그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한 행동은 도저히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영조의 편집증은 극에 달하여, 화평옹주나, 화완옹주 등은 그리 귀하게 여기면서 경모궁(사도세자)에 대해서는 좋고 길한 일에는 참석조차 시키지 않고, 나쁜일에만 참석시킨다든가 하는 아들에 대한 미움은 극에 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모궁의 빈인 혜경궁 홍씨에게는 또 깊은 사랑을 베풀고 있으니.....
사도세장의 의대증을 비롯한 기행들... 그것은 병적인 증상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일인데, 그렇다고 하면 광병(미친병)에 걸린 사람을 뒤주에 가두어 죽인다는 것은 아비로서 할 수 있는 일일까.... 그래도 영조를 성군이라고 칭해야 할까?
경모궁 역시 병이 아니라, 그의 잘못된 성품에서 나온 행동들이었다면, 그것 역시 납득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또한, 그당시 경모궁의 장인이자, 영의정인 홍봉한은 왜 그런 엉청난 일에 가만히 있어야만 했을까? 아니, 홍봉한을 시기하는 무리들은 그당시 뒤주를 가지고 오도록 한 장본인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혜경궁 홍씨는 극구 그것이 아님을 '친정을 위한 변명'을 통해서 그렇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중록'을 읽으면서 전에는 혜경궁 홍씨의 처지가 안타깝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생각들이 많이 들었다. 혜경궁 홍씨는 영조의 총애를 받던 며느리임에도 그녀가 남편 경모궁을 위해서 한 일은 아무것도 없은 것이다. 차라리 남편이 병에 걸려서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니, 아들인 세손이나만 잘 보존하기 위해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또한, 남편의 안위보다는 친정에 해가 될까.... 40여년이 지난후까지 자신의 친정이 풍비박산이 나는 모습에서 친정 아버지와 친정을 위한 변명을 하기에 급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모궁 돌아가신 지 사십여 년동안 그 일로 충성과 반역이 잡되이 섞이고 옳고 그름이 거꾸로 되어, 지금까지도 그것이 바로잡히지 않았따. 경모궁 병환이 만만 어쩔 수 없게 되어 영조가 부득이 그 처분을 하신 것이요, 뒤주는 또한 영조께서 스스로 생각하신 것이라. 나나 정조나 애통은 애통이고 의리는 의리로, 각각 아픔과 의리를 따로 알아. 망극중이지만 몸을 보전하여 종사를 잇게 하신 성은에 감축하는 것이 옳으니라.  (...) 경모궁 돌아가신 경위를 내 차마 기록할 마음이 없으나, 다시 생각하니, 경모궁 손자이신 순조가 그때 일을 망연히 모르는 것이 망극하고, 또한 옳고 그름을 분별치 못하실까 안타까워. 마지못하여 이리 기록하니, 그중 차차 못 일컬을 일은 삔 것이 많도다. (p155)


 

이런 맥락에서 볼 때에 내 생각은 '한중록'의 혜경궁 홍씨의 순수한 마음의 기록이라기 보다는 후세의 사람들, 특히, 순조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기에 많은 숨겨진 이야기들과 그녀의 친정을 옹호하기 위한 변명이 많이 들어 갔다는 생각이 든다.
어쨋든, 28살의 꽃다운 나이에 남편이 뒤주 속에서 죽어야만 했고, 아들을 임금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그 아들마저 정권을 잡은후에  어미의 친정을 쇠하게 만들었고, 천세를 누리지 못하고 어미보다 일찍 세상을 뜨고, 손자가 임금이 되나 나이가 어려 정적이나 마찬가지인 정순왕후의 수렴청정과 그 과정에서 자신의 친정의 몰락을 몸소 겪어야 했으니, 이보다 더 애처러운 여인의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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