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편력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 지식여행자 8
요네하라 마리 지음, 조영렬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얼마전에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의 지식 탐구의 무한함과 번뜩이는 재치가 어우러진 음식에 관한 에세이였다. 그런데, 작가가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의 글을 이젠 접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 책소개 글에 아직 공개되지 않은 글들을 모아서 출간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우리곁에 '요네하라 마리'의 신간 서적이 출간되었다. 



 '문화편력기'는 '요네하라 마리'의 생전의 글들 71편이 실려 있다.
작가인 '요네하라 마리'는 일본인이지만 아버지의 직장일로 어린시절(초등학교~중학교 2학년까지 약 5년간) 프라하에서 자랐으며, 인문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이며, 러시아 동시통역사로 일했기때문에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서 문화를 보는 관점이 대단하다. 또한, 하루에 책7권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이기에 그녀의 글들은 다른 에세이에 비하여 풍부한 지식이 담겨져 있다.

 

'미식견문록'의 부제가 '유쾌한 지식 여행자의 세계음식 기행'으로 주제가 음식에 국한 된 것에 반하여 '문화편력기'는 '유쾌한 지식 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의 부제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동서양의 문화, 역사,교육, 음식, 정치, 일상생활까지의 모든 분야의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그녀만의 샘솟는듯이 넘쳐 흐르는 지식탐구 능력과 읽다보면 어느 순간 독자들을 웃게 만드는 독특한 위트로 읽는이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작가의 '언어 유희'는 상당히 위트가 넘쳐 흐른다. 책뒷표지에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의 저자 '곽아람'님의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일본의 드라마 '꽃보다 남자'라는 제목이 일본속담의 '꽃보다 경단'에서 나왔다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동원된 각나라의 속담들은 그녀의 독서편력에서 나왔음을 보여준다.'꽃보다 경단', '꽃 밑보다 코밑', 영어의 '새의 지저귐보다 빵', 러시아의 속담 '휘파람새를 이야기로 기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늘을 나는 학보다 손아귀의 박새'. '미남미녀로 태어나기보다 행복한 사람으로 태어나라', '집의 매력은 건물의 화려함이나 아름다움이 아니라, 파이의 맛에서 결정된다.' 등이 소개되는데, 이것은 독일의 낭만파 시인 "노발리스의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의 소설도, 푸른 꽃을 추구한 결과 시적 재능이라는 열매를 얻는다는 이야기이다. "(p31)라는 글을 쓰기 위해서 인용된 글인 것이다. 이 한 주제에서 볼 수 있듯이 그녀의 속담 실력은 " 당신을 속담의 달인으로 임명합니다."라는 말을 해 주고 싶을 정도이며, 그녀의 '언어 유희'도 작가의 언어적 감각과 재치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이런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각종 서적의 내용을 뒤져서 독자들에게 설명해주는 지식 탐구의 노력이 가져다 준 결과인 것이다. 속담 한 마디가 인간의 존재 본질까지 파고 드는 이야기들은 책의 곳곳에서 읽을 수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요네하라 마리'의 책을 읽는 묘미이며, 이런 글을 접하게 되는 독자들은 그 순간부터 그녀의 열렬한 팬이 되고, 그녀의 글에 매료되는 것이다.

                
 이 책의 '옷갈아 입기도 일이라서'(p38)의 경우로 그녀의 글의 구성을 생각해 보면: 계절의 변화를 느낀 작가 옷정리-개,고양이 털갈이- 공상(그 털로 양탄자를 만들면)-속담소개(러시아속담)-지인이야기(주재원k씨의 빨래이야기)- (위트- 웃지 않을 수 없는 엉뚱 대답) 이와같이 어떤 이야기가 그녀에게 쓰여지게 되면 실타래가 술술 풀려나가듯이 풀려서는 끝없는 지식탐구와 톡톡튀는 재치로 다시 짜여진다.
난데없이 팡팡 터지는 웃음에 도저히 웃지 않고는 넘길 수 없는 재치만점의 이야기에 읽는이의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내가 '문화편력기'를 읽으면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이야기는 '이야기덕분에 산다.'(p69~72)이다. 작가가 '올가의 반어법'을 쓰기위해서 유태인 여죄수 전용 강제수용소에 관한 자료를 얻던 때의 이야기이다. 수용소 생활의 갈리나의 이야기를 통해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에 그 곳에 갇혀있던 여배우가 '오셀로'를 혼자 모든 배역을 재현하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되고, 그후에는 힘든 노동에도 불구하고 각자 기억속의 책구절을 서로 보완해 나가면서 즐기게 되는데, 장편 대작인 '전쟁과 평화', '백경'등의 소설까지도 거의 문장 그대로 재현하기도 했고, 그런 비참한 상황속에서도 '안나카레리나'를 동정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열두개의 의자'를 듣고는 포복절도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수면부족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더 생기있고, 삶의 생명력이 넘쳤다는 내용인데, 얼마나 감동적인 글이었다.
이 내용에서도 우리와의 문화의 차이점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책을 좋아해서 나의 리뷰를 읽는 사람들은 '책이 없는 세상'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두뇌의 공황상태가 오지 않을까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 요리와 먹이의 경계선'은 '미식견문록'을 생각하면 글의 내용이 짐작 될 것이다.

 

마지막 장인 '드래건 알렉산드라의 심문'편은 대부분의 글이 작가의 추억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맞선보던 이야기, 실연한 이야기, 프라하시절 이야기,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 그리고 다양한 꽃(라일락, 왕벚나무, 석류꽁, 사프란, 아네모네, 민들레, 수유나무, 마가목)에 얽힌 이야기들이어서 이 책중에서는 가장 정서적이고 추억이 담긴 이야기들이다.
이중에서 또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글로 '맞선남 이야기'- 그는 더욱 큰소리로 고함을 쳤다. "큰 거예요, 작은 거예요?" 가게 여기 저기에서 실소가 새어나왔다. "왜 그런 거까지 당신에게 일일이 보고해야 하죠?" "부탁이니까 말해주세요!" 큰거예요, 작은 거예요?" '이사람하고는 오늘로 끝이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말했다. " .... 작은거."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 그런가요." 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p190)
이 글을 읽고 무슨 상상이 드는지 궁금하다. 맞선남과 대화인데....
웃음이 '팡'터지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아빠 사랑해요', '어느 날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 '아버지곁으로 여행을 떠난 어머니'는 가족애가 느껴지는 잔잔한 이야기들인데, 역시 자녀에게는 언제나 부모라는 존재가 느끼게 하는 애틋한 마음이 있는 것이다.

자식에게는 '뚱뚱하고 공산당'인 아빠, 16년간 지하에 숨어 사는 아빠도 자랑스러운 존재이고, 당당하던 어머니가 치매 노인이 되신 것도 귀찮은 존재가 아닌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 주는 존재인 것이다. 책 속의 글에 나타난 어머니를 향한 작가의 마음이다.



기억력이 희미해져가는 인간은 얼마나 순수하고 맑아지는 것인가. 어머니를 관찰하면서 곰곰 그런 생각이 든다. 멋을 부리거나 뻗대는 것, 욕망과 원망에서 해방된 어머니는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한없이 상냥하다. "많이 힘드시죠?" 라고 주위 사람들이 동정을 표하지만, 어머니랑 살면서 내가 얻게 된 마음의 평온은 무엇과도 바꾸기 어렵다. (p245)
'요네하라 마리'의 마지막 작품이자 유작인 '문화편력기'는  일본인이지만,어린시절의 프라하 생활과 러시아 동시통역사라는 이력이 성장과정에서 '코즈모폴리터니즘'과 '내셔널리즘'의 균형을 맞추어 가야 했다. 그래서 작가가  '문화'를 접하는 태도나 느낌이 다른 사람들보다 독특하였던 것이다. 또한,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의 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그로 인한 그녀만의 '사유'가 작품에 녹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글 속에는 언제나 위트가 함께 한다.
'문화편력기'로 '요하네스 마리'를 처음 만나는 독자들은 아마도 그녀의 팬이 되었을 것이다. 나 역시 '미식견문록'을 통해서 '요하네스 마리'를 처음 알게 되었지만 이제는 그녀의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검색을 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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