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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아 54
에프라임 키숀 지음, 이용숙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7월
평점 :
'인생 역전의 황홀한 판타지, 명랑만화같은.....' (책 뒷표지의 소설가 '김종광'님의 서평)
책을 읽기도 전부터 '확'끌리는 느낌이 든다.
연말이라 왠지 서글픈 느낌이 드는 이때에 스트레스를 확 날려 줄 수 있는 책이 있다면 읽어볼만 하지 않은가? 책의 내용이 '인생역전'이라면 더욱 더 관심이 갈 것이다.
어제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오늘이 있다면,풍선에 잔뜩 바람을 불어 넣어 두둥실 하늘로 올라 가는 그런 느낌이 든다면 인생이 참 즐거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바로 '행운아 54'이다. 제목부터 인터넷 사이트의 아이디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어느날 갑자기 뜻하지 않은 행운을 잡은 54세의 남자 이야기'를 주인공이 55세에 쓴다.
이 책의 저자는 풍자소설의 대가인 '에프라임 키숀'이다.원래 그는 헝가리인이고 유태인이어서 2차세계대전때는 강제수용소에서 혹독한 시련을 치렀고, 전쟁후에는 가족과 함께 이스라엘로 망명했다. 그는 헝가리 부다페스트대학에서 예술사와 조각을 공부했기때문에 예술비평서인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를 썼는데, 이 책 역시 현대 예술의 난해함에 거침없는 풍자의 펀치를 날린 작품이다.미학자 진중권은 어떤 책에선가 '에프라임 키숀'을 좋아한다고 했다.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개를 위한 스테이크'가 있는데 이 책 역시 풍자소설이다. '행운아 54'는 작가가 2005년에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전에 쓴 그의 마지막 작품이면서 그의 유작인 것이다. (2003년에 쓴 책)
주인공인 '칼 뮐러는 삼류배우(?), 당나귀역(단역)을 맡았던 것이 마지막으로 지금은 백수, 뷰티크 경비일을 맡았으나 잠이 드는 바람에 그날로 쫒겨났다. 아내와는 22년전에 결혼, 아내는 대학을 졸업한(이를 강조하는 것을 보아 뮐러의 학력은 그보다는 낮다) 사회과 교사. 딸(23세), 그는 마음이 약한 것인지 울기도 잘한다.
이런 심상치 않은 인물이 어느날, 에이전트의 전화를 받고 미니시리즈에 출연을 하게 된다. 제작자인 '줄츠'는 부도덕한 인물로 '카를라'에게 마음이 있어서,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황당한 설정의 어설픈 TV 미니시리즈를 제작하게 되고 그과정에서 하루 일당 15달러인 '칼뮐러'를 섭외한 것이다. 물론,'뮐러'는 대사도 제대로 못하는 울렁증(?)배우라서 3회정도의 외과의사역을 주었다. 그런데, 간호사역의 '카를라'는 '뮐러'와의 접촉조차 싫어해서 배역을 바꾼다.
첫날 촬영 실패, 우울한 '칼 뮐러'는 계단에 앉아 울고 이를 본 심리학자 '뵘'은 '스포크'박사의 책을 소개해 준다.
우여곡절끝에 미니시리즈'파일럿'(방영전에 보여주는 예고편) 이 촬영되고, 파일럿의 방영이 두려운 '칼 뮐러'는 자살을 하던지, 외국으로 도피를 하려는 찰라에.....
행운은 찾아온다. 미니시리즈 '파일럿'을 본 저명한 비평가인 '게르숀 그라스코프'의 리뷰 덕을 톡톡히 본다.
'스타탄생'- 카밀로 L 로마노프,무명의 배우, 하룻밤사이에 전국을 점령하다.
진짜로 이것은 당치도 않은 해설이다.
" 무명 배우와 특정 장르의 명성 있는 영화 제작자가 우리에게 영화계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선사했다. 그리고 이들은 연극에 관련한 기존의 사고 방식을 폭발적으로 전환시겼는데, 그 중요성은 필설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P69)
이런 해설이 나온 방송 내용의 촬영은 어리없게도 여자 배우의 말 한마디에 배역이 왔다 갔다하고, 드라마 내용도 수시로 즉석에서 뜯어 고치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냥 3회정도 방영하다가 끝내 버릴 생각의 작품인 것이다. 제작자인 '줄츠'는 여배우인 '카를라'의 환심만 사고 그녀와의 외도밖에는 생각이 없었으니까....
'칼 뮐러'의 대사 역시 펠리니(칼 뮐러가 대사 암기 능력이 없어서 자기 맘대로 지껄이도록 하고 나중에 편집처리하는 방식)처리이다.
그런데, 그 엉터리 대사가 그대로 편집없이 방영된 것이다.
참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저명한 비평가의 리뷰는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있다. 신인 연예인를 띄워주기 위해서 인터넷 곳곳을 궁금하지도 않은 그들의 소식으로 도배를 하는 일이라든가, 노이즈마켓팅으로 궁금증을 자아내서 검색하도록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설정은 그정도를 넘는 기막힌 이야기들이 독자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렇게, '칼 뮐러'는 리뷰의 힘으로 승승장구 그야말로 '대스타'로 발돋움한다. 빈 풍선에 바람을 잔뜩 넣은 것처럼, 화제의 화제인물이 되어 두둥실 올라간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뮐러'의 아내 '힐데'여사도 두둥실 덩달아 춤을 춘다. 사회과 교사가 '뮐러'의 매니저로 변신, 집은 '집'겸용 '사무실', 아내는 '아내'이자 '매니저'....
딸도 한 몫을 한다. 케이블 tv로 진출, 미국 흑인과의 사랑으로 시도 때도 없이 돈만 요구한다. 딸의 입장만 생각한다.
인기절정의 '칼뮐러'는 '줄츠'의 즉석 생각으로 러시아 황족 가문의 '로마노프'로 탈바꿈되고, 이런 가운데, 여자 배역인 '카를라'는 '칼뮐러'에게 관심을 보이고, 카메라 여기자 '베티'역시 그에게 관심을 보이며 '칼 뮐러'의 인기에 편승을 하려는 속셈을 보인다.
그야말로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속이다.'
그런데, 잔뜩 부풀어 오른 '거짓말로 가득찬 풍선'은 언젠가는 터지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도 않은 인터뷰 기사가 연일 신문을 장식하고, '카를라'와의 관계를 밝히려는 파파라치(?)의 카메라 공세, 새로운 장르의 연기라는 호평에 대한 악평이 거듭되면서 사면초가에 놓이게 되는 주인공 부부.
어떤 상황에서든지, '칼 뮐러'는 자신의 멘토격인 스포크박사의 심리학책을 열심히 탐독한다. 결혼한지 119개월의 서구 남자의 경우에는 이런 경우에 이렇다 하는 책의 내용을 지침삼아서 '카를라'와의 만남도 이어가고, 연애의 경험도 배워가면서 책에 의존한다. 그 모습 역시 참 웃기면서도 재미있다.
최악의 상태로 터질듯하던 풍선이 조용히 바람만 살짝 빠진다.
해피엔딩이다.
나는 이 소설을 몇 가지 관점으로 생각해 보았다.
(1) 인생역전
인생역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평범한 직종이 아닌 특별한 직종에 있어서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도 있다. 그런데,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땅꼬마 '칼 뮐러'는 남편으로서, 배우로서, 심지어는 야간 경비로서도 낙오자였다. 아내의 수입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그런 남자였다. 사랑에 있어서도 낙오자였던 그가 아리따운 여배우의 사랑까지 받게 되는 것은 '에프라임 키숀'의 기막힌 상상의 세계에서나 이루어 질 법한 이야기인 것이다. '칼 뮐러'의 기발한 인생을 통해서 작가는 '인생의 황홀한 판타지'를 대리만족으로 느껴 보면서 웃음을 자아내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2) 미디어 문화의 허구성
미디어 매체들에 의해서 얼마나 많은 사실들이 왜곡되는지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어떤 사실들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여론의 향방에 좌우되는 경우를 많이 보고 있다. 최근의 아이돌 가수의 퇴출은 정확한 파악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터넷을 통해 속사포처럼 퍼져 나갔고,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자 그의 귀향으로 마무리지어졌다.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한데, '에프라임 키숀'은 '행운아 54'를 통해 너무도 재미있게 이런 문제를 파헤쳤다.
(3) 비평가들의 글
이 소설에서도 모든 문제의 발단은 '게르숀 글라스코프'의 터무니없는 리뷰 기사때문에 일어난다. '비평'이라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책, 연극, 드라마 등 모든 분야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비평이 과연 얼마나 신뢰성이 있는가하는 생각들을 많이 해 보았을 것이다. 모든 매체는 그것을 접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그대로가 중요한 것이지,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느냐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같다.
☆ 연말로 접어드는 요즈음, 날씨도 을씨년스러운데, 한바탕 마음으로 웃을 수 있는 책으로 '행운아54'를 읽어 보면 좋을듯하다. 소설가 김종광작가는 공공 장소에서 읽다가 배꼽빠진 사람으로 오해받는다고 했는데, 그 정도의 큰 웃음은 아니고, 마음으로 웃고 지나가는 정도의 웃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인 '에프라임 키숀'의 '개를 위한 스테이크'도 대표적인 풍자소설이니까 함께 읽어보면 좋을듯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