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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과 도 - 울자, 때로는 너와 우리를 위해
윤미화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6월
평점 :
# 다독으로 다져진 독서가의 글은 힘이 세다.
파란여우라는 닉으로 저자를 먼저 알았다. 모 인터넷 서점에서 5년간 천 권이 넘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쓸 때 쓴 아이디이다. 서평 중 86편을 모아 서평집 『깐깐한 독서본능』이 출간 되었다. 서평에서 독자를 가르치려는 부분이 없어 좋았다. 한가로운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듯 자연스러웠다. 소개된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글을 읽고나면 자연스레 떠올랐다.
이번에 나온 책, 『독과 도』에서는 서평에서 한 걸음 나아가, 하나의 주제를 잡고, 그에 어울리는 책을 골라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에세이의 느낌이 강했다. 『깐깐한 독서본능』에서는 책의 결을 살려, 책을 주목했다면, 『독과 도』에는 책을 매개로, 자이니치, 여성노동자, 자본주의, 스승, 멸종동물, 18세기의 시인까지 잘 보이지 않았던 부분과 존재가 다시 보게 했다.
# 상처받은 이를 위한 '사랑과 응원의 열쇠'
상처받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위로와 기억과 관심이다. 영화 <두개의 문>을 통해 잊혀져갔던 용산 철거민과 경찰특공대 사이의 일들이 다시 사람들에게 기억되듯, 책을 읽다보면 경쟁과 경제성장이라는 구호 뒤에 숨겨져있는 사회의 이면과 그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억압과 차별과 편견과 서러움의 능선을 넘느라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을 보며 이 책을 썼다. ... 정말 우리가 한 때 오롯이 지녔던 꿈은 날 선 현실에 긁히고 찢어져서 영영 손쓸 수 없이 마모된 것일까. ... 누군가에게 이 책 속에 숨겨놓은 '사랑과 응원의 열쇠'가 발견되기를 바란다.
# 숨겨진 책들의 재발견.
"13년 전 나는 전주를 지나고 있었고 내 앞에 나타난 풍경은 우연이었다. 처음 소 사진을 찍을 때는 이렇게 많은 것들이 사라질 줄 몰랐다. 그저 그 자리에 있었기에 셔터를 눌렀다. 그 세월이 벌써 15년 흘렀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사라진 것들이 너무 많다."
『소, 땅과 사람을 이어주던 생명』
1997년부터 2011년까지 소를 찍던 저자에게 찍힌 소들은 일을 했고, 늙어서 죽은 소들이라고 한다. 논과 밭을 갈던 일하던 소에서, 스테이크와 소고기의 재료인 육우로 바뀌는 과정에서, 농촌의 풍경과 우리들의 생활도 조금씩 변했다. 외양간에 있는 쇠죽을 끓이는 모습을 어렸을 때 본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 모습을 찾는 일도, 기억하고 있는 이를 만나는 일도 어렵다.
늘 한결같아 보이지만, 지금이 아니면 다시 보기 힘든 일상의 풍경처럼, 많은 책들은 독자의 사람을 받지 못하면 절판이라는 이름으로 독자와 이별한다. 적지 않은 절판된 책들의 흔적을 읽으며, 미처 읽지 못했던 책을 먼저 읽은 저자의 글을 통해, 만나기 어려운 책의 모습을 떠올렸다.
쓸데없는 질문 같지만 독서는 질문과 답을 추출하는 행위라고 여기는 나로서는 포기할 수 없다.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설명한 책을 아무 질문 없이 덮는 일은 수동적 독서다. 따라서 독서행위가 능동적 태도로 바꿀 때 책은 내 것이 된다. 그래서 서평이란 아무 짝에도 쓸모 없을 것 같은 질문으로 지면을 채우지만 질문이 남긴 서평은 온전한 내 사유로 흡수할 수 있다.
질문이 많은 책이라 좋았다. 자꾸 저자의 글에서 다른 생각들이 떠오르고, 질문이 떠올랐다. 그 해답은 저자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함을 안다. 세상의 풍경들을 책을 통해 읽으며 질문한다. 스승은 사라졌고 멘토만 남은 시대, 세상을 변화시킬 마지막 남은 힘은 사람, 사람이 남긴 한 권의 책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