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인간의 가치를 위해 존재하는 도구일까? 동물은 감정 표현이 없고, 본능으로만 행동할까? 서양에서는 동물을 도구로 바라본다. 편집자 서문에 이런 내용이 잘 드러나 있다.
4p. 어떤 것이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본래 가치가 있든지 수단으로써 가치가 있어야 한다. 삶, 자유, 행복 추구는 '본질적으로' 가치가 내재한 것들이다.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가치이다. 우리는 이러한 가치들을 소중히 여기며 법과 규칙을 만들어 존중하고 보호한다. 돈, 자동차, 샴푸는 '수단으로써' 가치가 있다. 다른 것 즉, 본래의 가치가 있는 궁극적인 것들을 얻기 위한 도구로써 이들은 가치가 있다. 돈이란 행복을 증진하고 삶을 유지하기 위한 물건과 서비스를 살 수 있는 '수단'일 뿐이다. 우리는 세상을 도구로써 가치 있는 것과 목적으로써 가치 있는 것으로 나누고 도구가치를 목적가치에 종속시키려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단지 어떤 것이 본래 소중한지, 어떤 것이 단순히 수단으로써 소중한지 혼동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 한 그렇다는 말이다. ........ 노예제도가 바로 그러한 대표적인 실례이다. 노예의 가치는 노예 개인의 행복, 자유, 삶의 관점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사람들을 위해 노예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하는 관점에서 노예의 가치는 결정된다. 노예는 자동차와 다름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기위한 도구일 뿐이다. 노예제는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존재를 단순히 도구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취급하는 근본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 동물에 대한 도구적 관점은 인간의 영혼 깊숙이 스며 있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동물이 자신의 복리에 기여하는 만큼만 그 가치를 인정해왔다. 인간을 위해 동물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항상 판단의 기준이 된다. 우리의 먹이가 되는가, 우리의 옷이 되는가,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가, 우리를 위해 싸우는가, 우리를 안락하게 해주는가. 하지만 노예와 마찬가지로 동물들도 분명히 도구사용 능력이 있다. 동물은 여러 방식으로 정교한 도구를 만든다. 동물의 경우에, 그들의 본질에 대해 우리가 인식하는 방식은 훨씬 더 도구적인 관점으로 깊이 물들어 있다. 사실상 다른 방식으로 동물을 인식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 이유는 이기심에 의해 뒷받침되는 우리의 전통과 습관의 힘 때문이다.
동물에게 권리가 있을까??
7p. 다시 말해, 동물의 삶, 자유, 행복에는 본질적인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새로운 관점의 등장은 우리가 무심코 생각해오던 동물이라는 존재에 대한 개념정의를 다시 한 번 고민해보도록 자극한다. 이제 동물이 도구로써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런 주장으로 동물들이 전혀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 움직이는 인형이 아니라 감각이 풍부한 유정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점차 깨달아 가고 있다. 동물에게 특별한 권리와 보호를 부여한다는 생각, 동물이 도덕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우리는 이제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물의 관심이 무엇인지를 배려하지도 않고, 동물은 그냥 자유롭게 쓰다 버리는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 그 오만한 편견을 우리는 이제 벗고 있다. 동물들의 관심을 배려하는 일은 여느 사람들의 관심을 배려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통증의 정도가 같다면 사람보다는 어쨌든 동물이 덜 고통스러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해부학적 차이는 통증의 도덕적 무게를 덜어주거나 통증을 무시해도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10p. 롤즈는 원래 인간 사회 안의 재화와 기회의 분매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을 깨기 위해 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롤랜즈는 이를 더 근본적인 - 따라서 더 급진적인 - 질문으로 바꾸었다. 당신이 어떤 종에 속할지 모르는 상태에 있다면 어떤 판단을 할 것인지 묻는다. 이러한 질문은 착취당하는 동물, 인간의 무가치한 도구가 되는 동물의 입장에 섬으로써 현재 우리가 취하는 동물에 대한 태도의 모순을 드러내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그의 논의방식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운하고 특권적이지 않은 위치에 처하면 당신은 어떤 감정이 들까 항상 스스로 되물어보라는 오랜 진리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가장 확실한 방식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우연하게' 속한 집단의 견해만 두둔한다면 정의는 결코 설 수 없다.
롤렌즈는 탁월한 솜씨로 자신의 주장을 서두르지 않고 끈기있게 전개해 나간다. 자신의 주장에 대해 있을 수 있는 반론들을 하나 하나 논파해 가면서 체계적으로 독자들을 도덕의 문제 속으로 인도한다. 우선 저자는 동물의 권리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도덕철학을 전반적으로 고찰하여 명쾌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런 다음 이 결론에 비춰 실제 동물을 이용(남용)하는 여러 행위들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하나하나 따져본다. 이러한 2단계 논증은 저자의 주장에 있어 모두 기본적인 요소이며 따라서 동등한 비중으로 다뤄진다. 우리는 원칙을 분명히 세우고, 그 원칙이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무심코 행하는 일상적 행위에 숨어 있는 문제가 놀라울 정도로 뚜렷이 드러난다. 저자는 여기서 나오는 결론을 독자들에게 믿으라고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매번 논증을 할 때마다 롤랜즈는 자신의 주장에 완벽을 가하고 설득력 있게 만드는 데 힘 쓸 뿐이다. 아마도 동물들이 처한 가장 불리한 상황이라면, 동물이 스스로 자기 주장을 못한다는 것일지 모른다. 동물은 자신이 받는 부당한 대우에 저항하지 못한다. 어쨌든 말로는 표현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 마크 롤랜즈가 동물들의 주장을 대변할 것이다. 아마도 이보다 더 뛰어난 동물권리 지킴이는 찾지 못할 것이다.
콜린 맥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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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도 감정을 느낄까? 라는 사소한 질문에 빠져, 책 절반을 단숨에 읽었다. 원제는 <Aniamls likes us>인데, 한국어판 제목은 강렬한 느낌이다. 동물원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저자에 대한 생각을 잘 드러내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박물관이나 교도소라고 할까. 인간에게 그런 공간에 있으라고 하면, 있을 사람이 많지 않을텐데... 우리는 쉽게 동물원과 수족관을 보면서, 생태계를 보존하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간다. 사냥, 공장형 축산, 애완동물까지... 책을 읽고 나면,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거라 믿는다. 문제는 100페이지를 넘게 읽을 수 있는 끈기가 있는가, 없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