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렐 차페크. 어쩌면 생태소모임이 아니면 평생 만나지 않았을 작가이다. 130년 전에 태어나고, 프라하를 배경으로 한 책을 많이 쓴 극작가이자 소설가. ROBOT 이란 말도, 그가 쓴 희곡 <R.U.R>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himjin님을 통해 알았다. 

   도서관에 구비된 책을 찾다, 도서관에서 로봇은 어린이 책이라서 건너 뛰고, 『단지 조금 이상한 사람들』, 『초록숲 정원에서 온 편지』를 빌렸다. 『단지 조금 이상한 사람들』은 즐거운 책이다. 웃음과 인간사회의 이면을 풍자, 재밌게 풍자하는 소설이다. 극작가의 그의 재치가 짤막한 소설에 잘 드러난다.  

   보행 금지 표지판 하나로, 아름다운 푸른 국화를 발견하지 못한 이야기가 실린, 「푸른 국화」를 읽었다. 정원사를 했을 정도로 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카렐의 글은 자연스레 「초록숲 정원에서 온 편지」로 이어진다. 

  황폐한 땅에서 물을 뿌리는 호스와 잡초와 싸워가며 정원을 만드는 기쁨을 묘사한 머리글을 읽고 나면, 그냥 가볍게 지나가면서 보였던 잘 꾸며진 정원이 다른 시선으로 보인다.  

   13p. 이제 세상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은 변했다. 비가 내리면 당신은 정원에 비가 내리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햇살이 비치면 그건 정원을 밝게 비추기 위한 햇살일 뿐이다. 밤이 오면, 당신은 정원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며 흡족해한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정원은 온통 초록빛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다 자란 잔디들은 이슬을 흠뻑 머금은 채 반짝거리고, 부풀어 오른 진홍색 꽃망울들은 장미 덤불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리고 나뭇가지에는 어느새 자랐는지 잎들이 무성하고, 습한 나무 그늘은 부엽 냄새를 가득 품고 있다. 그때가 되면 지금의 이 빈약하고 헐벗은 갈색 정원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잔디인지 잡초인지 구분하기 힘든 최초로 돋아난 빈약한 잔디와 꽃망울들, 진흙투성이에 초라하고 애처롭기 그지없던, 막 만들어졌을 당시의 정원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미래의 얘기이다. 지금으로서는 부지런히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돌을 열심히 골라 내야 한다.


  15p. 우리가 언뜻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정원사는 씨앗이나, 새싹, 알뿌리, 덩이줄기나 단측지 같은 것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환경과 자연적인 조건들을 통해 탄생한다. 

  어렸을 때 나는 아버지가 가꾸던 정원에 대해 삐딱한 태도를 보였고, 때로는 심술궃은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아버지가 화단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고, 덜 익은 열매는 따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의 아담 역시 그 넓은 화단을 밟거나 '지혜의 나무'에 매달려 있는, 아직 익지 않은 열매를 따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아담 역시 어린 시절의 우리처럼 익지 않은 열매를 땄다.  

  .. 한창 젋은 나이일 때, 우리는 꽃이란 윗옷의 단춧구멍에 꽂거나 여자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라고만 생각한다. ...... 우리는 화단을 가꾸는 대신 소녀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고, 야망에 탐닉하고, 자신이 직접 키우지 않은 인생의 열매들을 아무 생각없이 따 먹고, 대체로 아주 거칠게 행동한다. 아마추어 정원사가 되려면 성숙의 시기,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식을 낳아 기를 나이는 되어야 한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정원으로 만들 수 있는 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그리고 어느 날, 자신의 손으로 뭔가를 심는 일이 일어난다. (내가 최초로 심은 식물은 바위솔이다) 식물을 직접 심는 과정에서 손톱 밑이나 긁힌 상처를 통해 흙이 우리 몸속으로 들어와서 일종의 중독 증세나 염증을 일으킨다. 일단 이 독에 감염되면 이후부터는 걷잡을 수가 없다. 요컨대 그 순간부터 정원 가꾸는 일에 열을 올리는 원예광이 되고 마는 것이다. 

  또 어떤 때는 이웃에게서 전염되어 정원사가 탄생하기도 한다. 아마 이웃집 정원에 피어있는 수염패랭이꽃을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빌어먹을, 나도 저 정도는 충분히 키울 수 있어. 두고 봐, 내 꽃밭이 훨씬 더 근사해질 테니까!" 

  그렇게 해서 탄생한 아마추어 정원사는 재배에 성공할 때마다 기운이 샘솟고, 실패할 때마다 자극을 받으면서 새롭게 일깨워진 열정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든다. 그리고 수집욕이 꿈틀꿈틀 용솟음치면서, 원예 사전에 수록된 A에서 Z까지 모든 식물을 자기 정원에 옮겨 놓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 후 수집욕은 보다 체계화되고 전문화되어 한 품종에 대한 열정으로 발전한다. 그리하여 그 열병은 지금까지 멀쩡하던 한 인간을 장미 마니아나 달리아 마니아, 그 밖의 별별 식물들에 집착하는 편집증 환자로 만들어 놓는다.
 

  그 뒤의 재미난 에피소드는 생략!
 

  다시 『단지 이상한 사람들』로 돌아와서, 선인장 수집에 푹 빠진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178p의 우체국 노파의 에피소드는 패스. 
 

  178p. 편지 도둑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 모략은 너무나 간단하니까. 나는 선인장 도둑에게 놓은 덫 이야기를 하겠다. 홀벤 식물원의 주 정원사로 있을 때의 일이다. 홀벤 씨는 누구나 인정하는 대단한 선인장 애호가이다. 홀벤 씨가 수집한 선인장을 돈으로 환산하면 30만이 넘을 것이다. 그 종류의 유일한 품종의 것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그 노인은 수집한 선인장을 일반에 공개하는 데도 아주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홀란, 선인장 수집은 고상한 취미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혜택을 줘야 해." 

  그러나 나는, 젊은 선인장 애호가는 금빛으로 빛나는 그루손을 보면 자기 것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도 크게 상심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늙은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법이다. 

  그런데 지난 수년 동안 우리의 선인장이 없어져 온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형제들이나 다른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했던 선인장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선인장이 없어졌다. 하루는 가시선인장 비슬리제니가 없어졌다. 그 다음은 그라에스네리가 없어졌고 곧 코스타 리차에서 막 수입해 온 비티아가 없어졌다. ...... 도둑은 전문 감정가임에 틀림없다. 

  노인네가 얼마나 역정을 냈는지 여러분은 상상 못할 것이다. 식물원을 닫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그는 풍요로움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며 야비한 도둑을 잡아들이라고 했다. 문지기를 해고하고 새로운 사람을 고용하라고 했다. 경찰에게도 알리라고 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5만 5천 개 화분 하나 하나에 보초를 설 수는 없는 문제였다. 궁여지책으로 나는 퇴임한 두 형사를 고용해 감시하도록 했다. 그런데 곧 필로세레우스 핌브리아투스를 잃어버렸다. 화분에 남겨진 것은 패인 자국 뿐이었다. 그것을 보자 나는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나 스스로 선인장 도둑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선인장 애호가들은 수도승과 같다는 것을 여러분은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구레나룻 대신 거센 털과 가시를 기른다. 그렇게 그들은 선인장에 미치게 된다. ...... 두 지도자로부터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자 나는 우리 식물원의 단풍나무에 올라가서 사태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생각을 할 때에는 나무 위에 올라가는 것이 제일 좋다. 올라와 있으면 모든 것과 약간은 멀어지는 기분이다. 물러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높은 곳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 철학자들도 꾀꼬리처럼 나무 위에서 살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단풍나무 위에서 계획을 세웠다. 우선 정원사 친구들에게 썩어가는 선인장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훌란의 실험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방법으로 2백여개의 선인장을 가져올 수 있었다. 밤새 나는 그 화분을 식물원 선인장 사이에 놓아두었다. 나는 이틀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흘째 되는 날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훌란 식물원 선인장 위협


비길 데 없는 훌란 식물원 선인장의 많은 부분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병으로 치명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볼리비아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청되는 이 병은 선인장에 침투하여 일정 기간 장복 기간을 가진 후 뿌리 부분을 붉게 한 후 전체로 퍼진다. 급속하게 전염되는 병이며 아직 규명되지 않은 소포자에 의해 급속히 번지고 있다. 이에 홀란 선인장 식물원은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약 열흘이 지난 후 - 우리는 열흘 동안 선인장 애호가들의 질문을 피하기 위해 몸을 숨겼다 - 신문사에 다른 기사를 보냈다.


홀란 식물원 선인장, 구할 수 있는가?


K 식물원의 M 교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홀란 식물원 선인장에 발생했던 병이 특이한 열대성 노균병이라고 밝혔다. 감염된 선인장에는 하바드 롯센 정기제를 뿌릴 것을 권하고 있다. 홀란 식물원선인장에 대대적으로 행해진 이 치료방법은 현재까지는 성공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바드 롯센을 구할 수 있는 곳은 다음 장소이다.


그 장소에는 비밀 경찰이 앉아 있었으며 나는 전화기 옆에 붙어 있었다. 2시간이 지나자 경찰은 도둑을 잡았다고 전화했다. 10분후에 나는 그 청년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무엇 때문에 저를 잡고 이러십니까? 유명한 하바드 롯센 정기제를 사러 온 것 뿐입니다." 청년이 항변했다.


"알아. 하지만 새로운 질병 같은 것은 없어. 네 놈이 홀란 식물원에서 선인장을 훔쳤지, 이 악당 같으니!" 나는 그에게 호통을 쳤다.


"그럼 새로운 병은 없는 것입니까?" 청년은 불쑥 말했다. "정말 다행입니다. 나머지 선인장들도 그 병에 걸릴까 봐 열흘 동안 한 잠도 못잤습니다!"


그를 잡고 나는 경찰과 함께 그의 아파트로 갔다. ........ 나는 세상에서 그런 소장품을 본 적이 없다. 그의 아파트는 여섯 평 넓이도 채 안 되는 좁은 공간이었다. 구석에는 담요와 작은 테이블과 의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선인장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선인장의 종류나 모양은 비길 데가 없었다.

어느 것이 훔친 선인장이냐고 경찰이 물었다. 눈물을 삼키고 있는 청년을 나는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경찰에게 말했다.


  "우리가 생각한 것만큼 대단하지는 않소. 서장에게 가서 50크라운만 벌금으로 물게 해주시오. 나머지는 내가 지불하겠소" 

  경찰이 떠나자 나는 그에게 우리 선인장을 모두 내놓으라고 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그는 눈을 감지 못하며 물었다. "대신 복역하면 안되겠습니까?"

"안 돼. 우선 가져간 것 다 돌려줘."


그러자 그는 하나씩 꺼내 한쪽에 놓기 시작했다. 약 80개나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많은 선인장이 없어진 줄 생각도 못했다. 내 생각으로는 여름 내내 훔쳐간 것 같았다. 나는 분명히 해두기 위해 소리쳤다. "이게 전부야?"


그때 그는 울음을 터트렸다. 예쁘고 작은 흰색의 레티를 집어서 나머지와 같이 놓았다. 그러고는 훌쩍거리며 말했다. "나머지는 모두 제 것입니다. 맹세합니다."


"그렇겠지." 나는 으르렁댔다. "이제 자네가 어떻게 훔쳤는지 말할 차례야."


"실은...." 그는 입만 달삭거렸다.. 그의 목젖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저는...... 그러니까...... ( ) ......"


-----------------------------------------------------------------------------

  읽다보니, 책장에 꽂혀있는 『젠틀 매더니스』가 생각났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 다른 책이 떠오르고, 다양한 생각들이 터져나온다. 이게 다 바쁘기 때문에 그렇다.  

  타샤 투더의 정원도 생각나고, 정원과 식물, 무엇보다 내가 내 주변에 있는 생명체에 대한 관심이 매우 적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이폰, 모니터, 컴퓨터, 노트북, 전자기기와 아파트 등 인공적인 건축물과 생산품에 빠져, 호흡하고, 살아 숨쉬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부끄럽기도 했고, 인간의 문명이 걱정되기도 했다. 그 걱정을 심화시키고,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을 필요성을 알려준 책이 『아름다운 생명의 그물』과『동물의 역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