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오천축국전 - 혜초, 천축 다섯 나라를 순례하다
혜초 지음, 지안 옮김 / 불광출판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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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수, 혜초, 왕오천축국전
 
 
  이상문학상을 받은 김연수 작가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은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는 왕오천축국전에 주석을 다는 여교수가 나온다. 국사시간에 혜초의 이름과 왕오천축국전만 알고 있다가,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으로 이어지는 누군가의 절망에서 희망을 찾는 사랑이야기를 통해, 혜초의 이름을, 천년도 넘은 옛날에 하나의 꿈을 위해, 40개국의 나라를 헤맸던 구도승의 모습을 상상했다.
 
  김연수 책의 135페이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교수님은 혜초를 다 이해하시잖아요. 어머니를 아내로 삼는 나라에 대해서도 다 이해하시잖아요. 혹시라도 이해하지 못할까봐 주석을 다 달아놓으시잖아요. 저는 제 여자친구가 왜 자살했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거든요.(...) 하지만 교수님은 다 아시잖아요. 고작 227행뿐인 두루마리를 가지고 한권의 책을 쓰시잖아요.
 
  매우 짧은 분량의 기행문이라는 사실만 알고 접했던, 왕오천축천이다. 역주를 보니, 4년간의 여행동안 40개국의 나라를 둘러보면서, 여행을 한 기록이 담긴 책이다. 감정이라던지, 느낌이 담긴 부분은 거의 없고, 어떤 방향으로 여행을 떠났고, 그 나라가 불교를 믿고 있는지, 그 나라만의 풍습이 어떤지에 대해 간략하게 적혀있다. 간간히 있는 시에는 감격과 외로움, 고향을 그리는 마음으로 먼 길 떠난 수행자의 마음을 더듬어 보았다.


# 풍부한 역주가 좀 더 많은 사실을 보게 하는 책.
 
 
  결자라고 해서, 글자가 빠진 부분도 있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역주자는 꼼꼼한 정보를 바탕으로 혜초가 방문한 나라와 그 당시 종교와 특색에 대해 이야기한다. 앞에 소개된 어머니를 아내로 삼는 나라는 호국과 페르시아이고, 페르시아는 배화교, 조로아스터교를 숭상해서 실제로 남아있다는 정보는 역주자가 독자를 배려한 좋은 정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200개가 넘는 나라들과 셀 수 없는 부족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천년 전에도 구도의 마음으로 말이 통하지 않음에도 여행을 한 이가 있었는데, 난 뭐가 두려워서 가까운 이웃나라도 떠날 생각을 못하고, 웅크리고 있는가라는 자책의 마음도 들었다.
 
  뭔가 준비되어야 떠나는 것도 아니고, 마음 속의 강렬한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떠날 수 있다는 걸, 매우 짧은 두루마기에 적힌 글을 통해, 이해했다.
 
 
# 그리고 슬픈,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현실.
 
 
  왕오천축국전의 원본은 아직도 프랑스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제 나라 문화의 소중한 유산을 지키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이 눈에 보였다. G20을하고, 아무리 국민소득이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문화의 소중함을 지키려는 노력이 없다면, 욕망에 빠져, 언제든지 경제가 어려워지면 피폐해지는 가련한 인생을 살거라는 생각을 했다. '생존'과 '경쟁'이라는 이름의 노예가 되어, 꼭 지켜야하고, 많은 관심이 필요한 부분을 쉽게 잊고살아가는 한국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원문인 일체경음의와 남아있는 원본을 출판본으로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다른 3대 여행기 중의 하나인 현장법사가 쓴 대당서역기, 서유기의 내용도 궁금해진다. 김연수 작가에서 시작해서, 서유기로 넘어가는 길목에 혜초스님이 징검다리가 되었다. 고증된 사실을, 상상력과 역주의 풍부한 내용을 함께 음미하며 읽기 좋은 책이다. 여행의 두려움이 생길 때, 서가에 두고, 힘을 얻기 위해 가까운 곳에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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