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기를 권함 - 2004년 2월 이 달의 책 선정 (간행물윤리위원회)
야마무라 오사무 지음, 송태욱 옮김 / 샨티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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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린 호흡으로 인생을 살자.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이란 책이 있다. 책, 이제 천천히 즐기면서 읽으라!, 매력적이고 창조적인 '오독'의 발견이라는 부제가 인상적인 책이다. 책을 읽는 방법의 저자는 느린 호흡으로 책을 읽기를 권한다. 소설은 속독을 할 수 없다. 책을 읽을 때 떠오르는 잡생각, 노이즈들이 책을 가치있게 만들어 주는 핵심 요소라 주장한다. 『책을 읽는 방법』이 소설을 좀 더 풍성하게 읽는 방법을 제시했다면, 이 책은 느린 호흡으로 인생을 살기를 권한다.
 
  고 권정생님의 추천사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책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너무 많이 읽지 말라고 권하던 권 선생님은, 한 달에 서른 권을 읽는 아이는 절대 안된다며, 아무리 많이 읽어도 다섯 권에서 열 권이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소년 시절 『죄와벌』을 이틀 만에 읽는 일이 후회된다며, 열흘간 천천히 읽었더라면 내용을 더 많이 기억할 수 있었을거라 이야기한다.
 
  빠르게, 더 남보다 앞서야 한다며, 속도를 강조하는 정보화 사회에서 느린 호흡으로 책을 읽자는, 살아가자는 주장은 세상의 흐름과 어긋난다. 의미를 찬찬히 생각하다보면, 고속버스로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인생이 아니라, 자전거나 두 발로 거닐며, 주변의 경치를 내 온 감각을 이용해서 호흡하고 숨쉬며 살아가자는 외침이 느껴진다.
 
 
#  느리게 읽었더니, 더 깊은 삶이 보이더라.
 
 
  저자는 느리게 읽기를 강조했던 많은 문학가와 글쓰는 작가를 인용하며, 느리게 읽기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헨리 밀러, 엔도 류키치의 글을 인용하고, 느리게 읽었을 때 더 깊이 있게 느껴지는 체호프와 보바리 부인의 글귀도 인용한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글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한 줄이다.
 
  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세 번째 읽었을 때, 이 글귀를 발견한 저자는 글이 있었던 풍경을 그려주며, 이 글을 통해, 고요한 야음의 광경과 쓸쓸하고 절실한 그래서 행복감마저 들게 하는 깊은 마음을 느꼈다고 이야기한다. 수 없이 스쳐지나가는 글귀들 속에, 마음을 서늘하게 만드는 글은, 작품과 함께, 작품을 읽었던 시간도 특별한 순간으로 만든다. 글의 내용이나 요점등을 파악하기 위한 독서에서는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없다. 영화와 드라마에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적인 부분을 많이 빼앗겼지만, 소설이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살아 있는 이유는, 이러한 즐거움을 향유하는 독자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  서가에 꽂아두고 마음을 다잡는데 사용하다.
 
 
  186 페이지의 짧은 글에, 책의 크기도 작다. 서가에 꽂아두고, 제목이 주는 의미만 생각하더라도 많은 이야기거리가 생각난다. 「천천히 읽는다」, 「행복한 책읽기」, 「생활의 시간」, 「대식과 다독」, 「독서의 주기」, 「책을 손을 들고」까지 6개의 글 모두, 느린 호흡으로 음미하며 읽기 좋다. 책이 만들어지는 시간만큼, 정성들여 책을 읽는 건 어떨까라는 저자의 물음표에 한동안 깊은 생각에 빠졌다. 누군가는 1년, 4년, 10년 이상 긴 정성을 들인 책을 난 하루나 이틀, 짧은 호흡으로 읽어나가고, 기억에서 잊고 살았다. 속도와 양을 자랑하지 않는다면, 자기만의 호흡으로 책을 읽는 일은 중요하다.
 
  비문학, 인문이나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분야의 책보다 문학작품에 특히, 느리게 읽으면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다독도 하고, 통독도 하며, 정독도 하는 잡식성 책읽기를 하고 있기에, 저자의 책읽기 방법에서 하나의 방법을 고수하는 이의 강한 신념을 느꼈다. 엉금엉금, 한 걸음씩 걸으며, 깊게 세상을 살아가려는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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