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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 마음을 비우고, 노란 화살표 방향만을 보며 걷다.
길을 걷는다. 누군가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다른 이는 자신의 내면에 쌓인 것을 비우기 위해 떠난다. 순례길 중 가장 유명한 산티아고 길을 저자는 걸었다. 이제까지 나온 순례길을 다룬 여행서와 다르다. 산티아고에 관한 정보가 많지 않다. 떠나는 나와 길을 걷는 나, 영혼의 깨달음을 얻은 나와 순례를 마친 후의 나, 내 마음이 어디에서 출발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마음의 변화를 중심으로 글이 서술되어 있다. 중년에 삶의 변화를 감지한 여인의 영혼의 변화를 맛보는 기분이다.
숨쉬는 것만으로도 삶이 힘겨울 때가 있다. 타인도 밉고, 내 자신도 싫어지는 때, 여행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심사위원을 자주 맡던 저자는 심사위원을 하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문하생과의 대화를 하다 길을 떠나야 함을 느낀다.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가 반드시 완성된 인격은 아니에요. 세상에서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룬 것으로 보이는 작가들이 있지만, 그 두 가지는 양립이 되지 않는, 가치 선택에서 하나가 하나를 내려놓을 때만 얻어지는 것이에요. 재능을 극대화시켜, 신기의 정점에 도달하고픈 것은 모든 예술가들의 꿈입니다. 그러나, 인격 완성을 생애의 목표를 삼는다면 재능은 걸림돌이 될 수 있어요. 예술은 나를 남기는 것에, 종교는 나를 버리는 것에 헌신하는 것이에요. 남기는 것에는 그것의 수단이 무엇이든 내가 있지만, 버리는 것에는 목숨을 버릴지라도 내가 남지 않아요. ... 나는 이제 신을 더 깊이 알기 위해 문학이 걸림돌이 된다면 문학을 내려놓으려고 해요. 내 안에서 문학은 자기 표현의 욕구이고, 밖에서는 세상 사람들의 인정, 명예를 얻는 것이었다면, 그 두 가지 다 내게는 차선의 가치에 지나지 않아요. 이제 절대적 가치를 위해 삶을 던져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요."
# 고독을 안고, 떠나다.
순례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저자는 문하생이었던 Y와 함께 순례길을 떠난다. 조용히 길을 걸으며 영혼과 만나고 싶은, 미각과 인연이 없는 저자와 아름다운 곳을 저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Y와의 좌충우돌의 순례기를 읽다보면, 함께 길을 걷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느끼게 된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으로도 채우지 못하는 차이의 부분이, 원망과 질투, 미움의 시작이라는 점, 모든 원망과 질투, 분노 등은 나에게 시작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깨닫는다.
만남과 체험을 통해 인간은 성숙해진다. 저자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Y와 그런 모습이 내키지 않았던 저자의 갈등은 여행의 마지막에 Y에 대한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며 그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어머니에 회한까지 내려가는 삶의 돌아봄과 깨달음은 함께 길을 걷는다는 것과 타인을 어떻게 감싸안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 솔직한 고백서에 용기내어 보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저자는 유년시절의 경험과 어머니, 남편과의 관계 등 순례길을 떠나며 자신이 마음에 담아두었던 기억과 추억, 생각을 다 내려놓는다. 순례길을 걸으면 내 마음도 그렇게 솔직해 질 수 있는걸까? 길을 걸었기 때문에 솔직한 글이 나온게 아니라, 솔직한 저자가 순례길을 걸으며 영혼의 변화를 찾았기에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나왔다 생각한다. 산티아고를 가보지 못했지만, 사진과 글을 통해서도 충분히 어떤 길을 걷고, 어떤 마음으로 걸었는지 느껴진다. 자신을 드러내는 글을 만나기 힘든 요즘, 솔직하며 마음에 울림을 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기독교나 개신교가 아니더라도, 종교에 관계없이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산문집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고민을 한다. 길을 걸으며 고민할 수도 있고, 한 공간에서 숙고하기도 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영혼의 존재에 대해 사색할 때, 누구나 순례자가 된다. 사색하는 일에 익숙해지면, 길을 걷지 않더라도 한 장소에서 영혼의 마음가짐의 변화가 가능해진다. 길을 걸으며 영혼과의 만남을 꿈꾸었던 저자를 통해, 삶에 대해,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아직은 인생이 무엇이라 정의내릴 나이는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돈과 명예, 재능을 벗어나, 살아가는 것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르게 인생을 바라보는 방법을알려준 산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