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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턴트 - 2010년 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ㅣ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4월
평점 :
# 콩고, 마운틴 고릴라, 콜탄, 탄탈 콘덴서.
뜨거운 햇살이 구름에 가린 이른 아침에 어머니와 집 근처 뒷산에 올랐다. 어머니는 두 번째 봉우리에 다녀온다고 하셔서, 첫 번째 봉우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핸드폰과 집 열쇠도 어머니가 지니고 있었기에, 내려다보이는 오밀조밀 모여있는 아파트와 집들과 숲으로 둘러싸인 맞은 편 산들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맑은 공기를 마시는 일도, 구름이 사라지고 햇살이 강한 하루가 느껴질 때쯤 올라오는 등산객에게 시간을 물었다. 왕복 40분 거리인데, 한 시간을 기다렸음을 알게 되자, 집으로 먼저 내려왔다.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한, 핸드폰 없이는 하루도 견디지 못하는 현대사회에 살고 있다. '시간이 돈이다'란 글귀가 삶을 지배한다. '언제 잘리지 모르는 구조조정'과 선택되지 못하면 안된다는 불안이 만연한 사회에서 견디고 있다. 평생 한 번 땅을 밟을지도 모르는 콩고와 마운틴 고릴라, 콜탄과 탄탈 콘덴서는 책을 읽기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다이아몬드와 너무 많은 자원이 있지만 힘이 없어 선진국과 다국적 기업에 의해 황폐화되어가는 아프리카 대륙에 관한 이야기만 떠올랐지만, 나와 관계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핸드폰과 컴퓨터 등의 전자기기를 사용하고 있다면, 탄탈 콘덴서의 사용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탄탈 콘덴서의 탈탈은 콜탄이라는 물질에서 만들어지고, 콜탄을 채취하는 일은 매우 쉽다. 콜탄은 민주 콩고 공화국의 반군들이 점령하며 선진국에서 자원을 파는 대신에 사람들을 강간하고 살인하는 무기와 바꾼다. 내가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동안,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내전으로 인해, 사람들이 끝없이 죽어가고 있다. 소설을 통해, 지구 반대편의 현실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타인의 삶을 구조조정하는 살인 시나리오를 쓰는 컨설턴트의 이야기를 읽으며 세계경제의 모순과 직면했다.
# 『아내가 결혼했다』가 떠오르다.
축구와 중혼이라는 거리가 먼 두 소재로 일부일처제와 결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아내가 결혼했다』 를 기억한다. 거리가 먼 두 소재를 긴밀하게 이어낸 작품을 또 만나는 일은 즐겁다. 타인의 삶을 비간접적으로 간여하는 죽음의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와 아프리카 대륙의 콩고에서 죽어가는 사람들과 킬러의 문화사적 이야기가 촘촘하게 잘 이어졌다.
페이퍼 컴페니에서 회사의 지시를 받고, 의뢰인이 정한 고객의 살인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가 마주하는 사랑과 도피, 선택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현실과 마주한다. '더 많은 돈'에 끌리는 삶과 '어쩔 수 없잖아'라는 자기합리화라는 말을 통해, 현대사회를 이끌어가는 삶의 방식과 대면하게 된다. 진정한 구조는 결코 조정되지는 않는다. 사라지는 건 늘 그 구조의 구성원들 뿐이다라는 말이 머리속에 계속 남아있다.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상황에 떨며,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과 마주한다.
# 웃으며 시작했다가, 고민에 빠지게 하는 소설.
소설은 재밌어야 한다. 삶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은 알차다. 독특한 일을 하는 화이트 칼라 킬러의 삶을 들여다보다, 세계의 시각에서 지구의 경제상황과 마주치게 하는 소설이다. 웃으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지금 잘 살고 있는걸까하고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노동의 흔적이 없는 고운 자신의 딸의 손을 보며, 피비린내에 겨운 행복을 느끼는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축구공을 만드는 아프리카 어린아이의 손과 제 1세계의 풍부한 삶의 질을 위해 어린 나이에도 일을 하는 커피농장의 어린아이의 거친 손도 떠올랐다. 그리고 많이들 하는 변명, 어쩔 수 없잖아라는 변명도 떠올랐다.
난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갈수록, 생각도 깊어진다.
"그래서? 내가 핸드폰 바꾼게 잘못됐다는 거야?"
백미러로 찡그린 그의 표정이 보였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아니, 그게 아니야. 그냥 이 상황을 말해주고 싶었어. 뭔가 말도 안 되잖아, 이런 건. 어떤 생각인지 그저 상식적인 의견을 듣고 싶어."
"의견은 무슨, 얼어 죽을. 그 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건 그쪽 사정이고,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지들이 총질하고 죽는 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그건 그들의 사정일 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그게 상식이었다.
"나라고 핸드폰 바꾸고 싶겠어?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리면 미칠 거 같아. 뭐라도 질러야 숨통이 트인다고. 그리고 할부 갚아야 하지, 아주 족쇄라고, 쳇바퀴야. 나도좋아서 이딴 거 지르는 거 아니야. 로또라도 당첨되면 모르겠다. 여유가 되면 콩고 사람들을 도와주고 하겠지만 당장은 나 먹고 살기도 죽겠어. 넌 컨설팅해서 떼돈을 버니까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내 모가지 간수도 힘들다고. 콩고 놈들은 바나나나 따먹으로고 그래. 걔들은 카드 값은 안 갚아도 될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