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블랙홀 - 자기 회복을 위한 희망의 심리학
가야마 리카 지음, 양수현 옮김, 김은영 감수 / 알마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  집 안에서의 모습과  집 밖에서의 모습이 같은 사람이 있을까??
 
 
  집에서 과묵하고, 무게를 잔뜩 잡던 형의 모습만 보아왔다. 밖에서 형 친구들이나 외부 사람들이 형에 대해 매우 상냥하고, 순수했다는 평판의 말을 했을 때, 놀랬던 경험이 있다. 오랜 기간 봐왔던 형제사이인데도, 모르는 면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난 후, 밖에서는 집에서와 같은 모습을 보일 순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지나치게 밝을 정도로, 격의없이 사람들을 대하던 지인과 조금씩 알아갈수록, 타인의 시선에 많이 신경을 쓰고, 마음에 밝은 면과 반대되는 마음의 힘겨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인간이란 참 깊고 난해한 존재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인터넷을 통해, 익명의 이름으로 충분히 생활할 수 있고, 철처히 다른 나로 살아가더라도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익명의 그늘이 주는 자유와 함께, 전혀 다른 두 성향을 오가는 사람들이 일본에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이중성을 너머, 극단적인 경계인 자신의 내면을 인정하지 못한 채, 힘겨움에 자해하고, 조울증에 빠지는 텅 빈 마음을 채우려는 노력을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저자는 그들을 기존의 정신학계에서 정의내리는 심인성, 내인성, 뇌기질성 질환이라는 세 가지 범주로 나눌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 다른 무언가가 충족되어도, 내 마음의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누군가와 함께일 때는 무척 사교적이고 말수도 많은데, 혼자가 된 순간 어둡고 지친 표정을 짓는 이들이 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이중성에 빠지는 사람들은 그 감각을 '마음속에 뻥하니 구멍이 뚫린 느낌이다', '나 자신이 그 구멍처럼 아무것도 없는 존재 같다'라고 느낀다고 한다.
 
  책의 장점은 프리터족의 증가와 인터넷 증가라는 사회적 현상과 최근 늘어나는 은둔형 외톨이, 연애의존중, 인터넷 동반 자살, 스토커, 어덜트 칠드런, 미니 우울증, 의태 우울증 등의 문화현상을 설명하려 노력하는 점이다. 정신은 개인의 의지의 문제라는 기존의 정신의학의 관점에서 벗어나,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마응의 상태를 인정하고, 그 위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시선이 따스했다.
 
  '살고 싶지만, 죽어도 괜찮다'라는 마음이, 약물중독사 또는 자해로 인한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이야기가 충격적이었다. 해리라는 기억을 못하는 현상 뒤에는, 어린 시절 큰 트라우마를 견디기 위해, 의식의 선상에서 그것을 거부하는 현상이 있었음을 알았다. 어렸을 때의 큰 사건이 마음에 남아, 그것을 딛고 일어서지 못하면, 쳇바퀴 돌듯, 벗어나지 못한다.
 
  가족들이 반대하는 연애를 하는 연인이, 도망치려 하지 않고, 가족을 살해하려고 한 사건을 현대 젊은이의 경향에 맞춰 정신과 전문의의 시선으로 풀어주는 부분이 좋았다. 불황에 저비용으로 사람을 쓰려는 프리터족의 증가의 이면과, 죽고싶다는 제비뽑기식 자살의 뒤에는 생각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누구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허무함을 치료자는 물론 주위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갔다.
 
  이런 텅빈 마음을 채우기 위해 연애를 하게 되면, 연애가 아닌 연애를 하는 누군가를 챙기는 마음이나 사랑받는 그 마음을 느끼고 싶어, 상대를 집착하게 된다. 텅 빈 마음을 채우기 위해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더라도, 결과가 나오더라도 마음에 만족감이 채워지지 않는다. 고등학생이 원하는 대학을 간다고 해서, 대학생이 원하는 직장에 취업을 한다고 해서, 직장인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 여성이 아이가 생기면 뭔가 해결될거라는 생각에 아이를 갖게되어 출산을 한다고 해도,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며, 도리어 우울즘이 더 심해지는 현상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에 공감이 갔다. 무언가를 갈망하더라도, 그 충족감은 오래가지 못하고, 원하는 것은 안정인 경우가 많은데, 안정이라는 건 현실에서 찾기 어렵다.
 
 
#  우연과 필연
 
 
  종교가 힘을 발휘하던 시대에는, 사후세계에 구원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했지만, 현실에서 종교는 이미 사후세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이다. 불안과 종교에 의지할 수 없는 현대인에게 저자는 때에 맞는 '우연'을 살아가는 고카미 쇼지씨의 사례를 예로 든다.
 
  "나는 지금 40대 이며,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무 살 때까지는 스무 살이 되면 정말로 죽겠다고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이유 같은 건 없었습니다. 다만 이 세상에, 그렇게 오래 존재하면 안 된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고층 아파트에 사는 건 피하는 등 자살 충동과의 싸움이 계속 되었지만, 40대가 되며 많이 안정되었다면서 이것도 우연일지 모른다면서 인사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연히 일어나는 자살 충동을 멈추는 것은 다만 하나의 필연을 상상하는 것뿐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자신보다 먼저 우연을 선택해버린 존재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생각했을 때 느끼는 절망과 슬픔의 감각만이 필연이며, 그 필연이 우연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카미 쇼지 씨가 간신히 40대까지 살아오며 만든 작품들은 일본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과 용기 그리고 '살아가는 힘'을 안겨 주었다고 한다.
 
  자신의 괴로움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일이 있다는 사례가 마음에 들었다. 증상은 있지만, 처방전은 존재하지 않는 현대에 살고 있다. 인터넷이 대중화 된 지 10년, 경기침체와 함께, 한국 역시 프리터족보다 힘겨운 경제적 조건에서, 도너츠처럼 마음에 텅 빈 구멍을 안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핸드폰 번호저장 기능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기억력과 암기력이 떨어진 것처럼, 세상이 점점 편리해지면서, 그 반대로 조금씩 잃어가는 부분도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가 힘을 잃어버린 빈 자리는 스스로 혼자서 해결해 내야 하는 현대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저자처럼, 현상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해결책을 모색해 보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조금씩 사회는 건강한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마음 한 구석에 어둠을 지닌 이들에게, 당신만 그런게 아니란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외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마음을 이해하고, 힘을 내는 방법을 찾다보면, 극단의 선택을 하지 않고도, 그 마음을 인정하며, 긍정적으로 현재를 사는 방법을 찾을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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