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트 뭉크 - 미술문고 208
장소현 / 열화당 / 1996년 3월
평점 :
절판




  #  뭉크의 절규.
 
 
   마음이 힘겨울 때가 있다.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다가 자신감 없이 한 일이 더 나쁜 결과로 다가올 때, 불안불안 했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 공포가 무엇인지, 절규가 무엇인지 생생하게 몸으로 체감한다. 불안과 절규, 인간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화폭으로 그려낸 이를 떠올리라면 뭉크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깡마른 여자아이를 그린 그림과 병든 아이라는 제목의 그림 등 뭉크 하면 어두운 기운이 먼저 떠오른다.
 
  책을 통해 뭉크의 생애에 대해 알 수 있었다. 80이라는 꽤 긴 생을 살았고, 작품의 대부분은 40세가 되기 전에 이루어졌으며, 말년에는 나치에 의해 힘겨운 생활을 했다는 점 등, 작품으로 기억하는 화가와 화가의 실제 삶에는 큰 폭의 차이가 있음을 배웠다.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만점이 넘게 그린 판화와 꾸준히 작품활동을 모색한 부지런한 화가라는 사실을 모른 채, 그림을 보고 지나갔을 것이다. 본 만큼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만큼 보인는 것이 미술세계라 생각한다.
 
 
#  뭉크는 뭉클하다
 
 
  뭉크는 뭉클하다.
  그의 작품들은 묘하게 우리의 심성 저 깊은 바닥에 숨겨져 있는 인간적 본성을 들쑤시고, 우리의 정서를 뭉클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평소에는 드러내지 않고 사는 본성들, 그리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밑바닥의 본능적 정서들에 생생하게 파고드는 뭉크의 힘은 우리의 마음 구석구석으로 거침없이 스며들어 우리를 뒤흔들고 옥죈다. 그래서 뭉크의 그림을 대하면 벌건 대낮에 벌거벗은 듯한 얄궂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부끄러우면서도 시원하기도 한....
 
  12p, 에드바르트 뭉크, 장소현, 열화당, 1996
   
  뭉크에 대한 저자의 평과 뭉크의 그림 시기를 다섯 시기로 나누어 그의 작품세계를 다루고 있다. 어린시절 강하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와 프랑스 유학을 통해, 예술이 꽃핀 시기, 스캔들로 인해, 그의 작품의 절정기를 살핀 후, 생의 프리즈, 삶과 죽음의 파노라마라는 내면에서 외면으로 바뀌는 시기를 다룬다. 마지막은 방황과 고독으로 가득한 그의 작품과 삶을 이야기한다.
 
  풍부한 도판이 글의 이해를 도왔다. 90개가 넘는 그림이 저자가 살았던 생애와 작품을 잘 보여준다. 뭉크의 그림을 보면 하늘에서 외줄을 걷는 이가 떠오른다. 흐릿한, 경계를 무너뜨리는 흔들리는 내면의 상황이 인물의 외부에 그대로 드러나, 마음의 흔들림을 자극한다. 작품을 보지 않았더라면, 뭉크가 같은 작품을 판화와 유채로 두 번 작업을 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았을 것이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판화의 질감과 매끄러운 유채, 같은 그림도 어떻게 담아내느냐에 따라 독자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느꼈다. 생동감이 넘치는 판화가 더 끌린다.
 
  저자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일본어로 된 뭉크 도판을 구입해 선물하고, 아내에게 번역을 해 주다가, 책으로 펴내는게 났겠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결혼 15주년 되는 날 원고를 끝냈다고 한다. 독신으로 살았던 뭉크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는 글을 보다 살짝 웃음이 나왔다. 뭉크가 살아있었다면, 자신을 위해 글을 쓴 작가를 칭찬해 주었을 것만 같다.
 
  우울할거라만 생각되었던 화가의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어 좋았다. 누군가를 알아나가는 일은 그와의 단편적인 추억만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애 전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나의 풍경 뒤에는 그의 삶과 다양한 인연이 그림자처럼 깔려있다. 예전에는 작품에만 집중했는데, 현재는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라던지, 화가의 생애에 대해 좀 더 관심이 간다. 이 작품 이후로 화가는 어떤 화풍으로 나아갔을까, 화가는 계속 이 스타일로 그림을 그렸을까? 그의 생애는 어떠했을까 등 다양한 질문들이 떠오른다. 다행히 뭉크는 주변에 그를 이해해주는 이가 많아 다양한 작품과 평가 등 자료가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자신이 죽은 후에도 자신을 떠올려 줄 사람이 있고, 그를 위한 미술관도 있다. 불안의 대명사였던 그가 매 순간 끊임없이 작품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화가로 기억되었다. 책이 그렇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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