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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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나은 삶이 보이지 않는다. 밑바닥 인생이다.
 
 
  마흔 여덟, 20억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를 망친 오감독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팔고, 팔순 고령인 어머니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52살에 전과 오범의 변태성욕자, 인간망종인 별명이 오함마인 형 오한모가 살고 있다. 치열한 영역 다툼 끝에 엄마와 함께 살게 된 오감독에게 갑자기 못보던 열 여섯 소녀가 나타난다. 술집에서 돈을 버는 여동생 미연은, 남편 몰래 바람피다 걸려서 이혼당하고, 할머니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거기에 싸가지 없는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오는 거침없는 영혼, 열여섯 민경도 집으로 들어왔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방 구석에 평균 나이 48세의 다섯식구가 모여서 밑바닥의 삶을 살아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가족들에게 볕들 날이 올까?
 
 
#  살아 숨쉬는 캐릭터들의 좌충우돌 사건들 속에 풍덩 빠지다.
 
 
   - 와, 씨발. 졸라 웃겨.
 
   - 그럼 너는 내가 네 삼촌이라는 거 아니?
 
   - 아저씨, 내 이름 알아요?
 
   - 조카 이름도 모르는 삼촌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더 미래가 나아보이지 않는 고령의 삼남매에게도 여러가지 일들이 얽히면서 묘하게 일이 풀려간다. 상식적인 사람의 눈에는 그리 나아보이지 않는 삶이지만, '막장' 드라마라 불리는 출생의 비밀과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가 폭로되어도, 왠지 이 캐릭터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넘치는 구라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흥미로운 이야기로 바꿨다고 할까. 캐릭터의 힘이 살아 숨쉬는 작품이다.
 
 
#  더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아.
 
 
  우울하고 찌질해 보이는 삶들이 놀란만큼의 해피엔딩도 그렇다고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며 사라져가는 슬픈 결말이 아닌 점이 좋았다. 밑바닥의 삶, 더 나아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세 남매와 어머니 곁에는 그다지 멋져 보이지 않는 삶도 인정하고, 함께 있음을 기뻐해주는 사람이 있어, 그들의 삶은 그 전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큰 돈을 벌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추앙 받을 수 있는 멋진 직장이나 명예를 얻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또 하루를 살면서 충분히 만족하며 지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까. 양극화 시대가 점점 심해질수록, 고령화와 사회적 약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길은 어둡고, 힘겹고, 빛이 보이지 않는 길이 놓일거라 생각한다. 어둠의 끝에서도 자신을 이해해주는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면, 그 삶의 여정이 우울하고 비참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스한 봄날, 예쁘게 만발하는 꽃들을 보며,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봄이다. 소설이 풀어내는 대상들을 생각하면 어둡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 외면하고 싶어진다.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 한국사회가 얼마나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좋은 책은 누군가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책이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그 기준에 만족하다고 확정하지 못하지만,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밝지 않은 곳에 머무는 이들이 따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하게 해 준 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는 소설이라 생각한다. 진흙 속에 피어나는 연꽃같은 책이라고 할까. 진흙탕에 빠지는 일이 감내할 수 있는 독자의 삶의 폭을 넓혀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로 독자를 즐겁게 해 줄까? 다음 책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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