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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시체들의 연애
어맨더 필리파치 지음, 이주연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 무료한 일상을 견디기 위해, 스토킹을 시작하다.
무기력만큼 생의 의지를 꺽는 일이 있을까? 오늘이 어제보다 더 나아질거라는 욕망이 사라졌음을 깨달았을 때, 인간은 희망을 잃는다. 뛰어난 미모에 현대미술 갤러리 대표인 린은 대머리에 키작은 남자 앨런이 스토킹을 하는데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도리어, 생기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부러워한다.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 마음에 빠진 그녀는 비서 패트리샤의 권유로 누군가를 스토킹하기로 결심한다. 그녀가 선택한 사람은 검사인 롤랑이다. 그는 청산가리가 든 로켓목걸이를 늘 목에걸고 있는 좋은 대학에 운동도 잘하는 멋진 남자이지만, 사이코처럼 쉽게 살인을 저지른다. 앨런은 린을 스토커하고, 린은 롤랑을 스토커하고, 그들 주변에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들의 스토킹관계는 반대방향으로 바뀌기도 한다. 세 남녀의 좌충우돌한 자신들만의 로맨스를 읽다보면, 웃음과 함께, 현대 사회의 풍경이 떠오르는데....
# 욕망에 중독된 현대의 풍경을 그리다.
재미있는 소설이다. 린, 앨런, 롤랑, 그리고 정신과의사에서 홈리스로 변한 레이, 린의 친구 주디, 앨런의 여자친구였던 제시카와 루스 역시, 각자 자신들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사랑’이라는 로망을 가지고, 각자 나름대로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조금은 과장된 그들의 행동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들만의 사랑에 대한 논리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허술한지 웃다보면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뭔가 매력적인 모습에 반해, 쫓아다니는 모습과 타인과 자신을 가르는 자신만의 논리 등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풍경을 그대로 드러낸다.
스토커, 약물 중독, 술 중독, 섹스 중독, 노출 중독 등 현실사회에서 쉽게 용인되기 힘든 인물들이 벌이는 에피소드들이 무겁지 않게 다가온다. 결핍이 심해지면, 그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게 되고, 그 강박이 지독되게 되면 중독에 빠지게 된다. 돈과 쾌락이 많은 걸 해결해주는 시대에, 눈뜨고 살기 위해, 다양하게 미쳐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은 현대사회가 그만큼 병들어 있다는 풍경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 재미있게 웃고 난 후...
극단의 끝까지 달려보는 소설이라고 할까. 현실사회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을 상상의 캐릭터들이 하나씩 부딪치면서 끝까지 간 후의 결과를 대신 겪게 하는 소설이다. 사랑에 빠지는 경우도 제각각이지만, 사랑의 끌림을 정리하는 방법도 다들 제각각인 사람들, 옆에서 볼 때 보았던 연애의 풍경과 등장인물들이 겪는 자신들만의 논리의 변화를 지켜보는 일은 소설을 읽는 일을 즐겁게 한다.
극단적인 사건들이 혐오감이나 충격으로 느껴지지 않게 잘 짜여진 소설이다. 곱씹어볼만한 글도 있다.
"있잖아, 산다는 게 항상 최선의 일만 벌어지는 건 아니잖아. 최선은 아니라도 그냥 만족할 만한 수준만 돼도 좋은 거야. 꼭 애인이 아니라도 그냥 친구들하고 지내도 되지. 그것도 그렇게 나쁜 인생은 아니야."
앨런이 린의 말에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으므로 린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난 일생일대의 위대한 사랑을 만나는 게 아무한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나도 물론 그런 사람을 만나고야 싶지. 하지만 못 만날 수도 있는 거야. 그리고 너도 못 만날지도 모르는 일이지. 하지만 연애나 뜨거운 로맨스가 아니더라도, 우정이라든지 우릴 지지해주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만큼 좋은 거라고 생각해. 아니면 다른 분야에서 열정을 갖게 될 수도 있고. 너하고 루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너한테는 레이나 나같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잖아."
순조롭게 흘러가다가, 독자의 예상을 깬 다른 이야기를 반전이라고 한다. 반전의 요소가 가득한 소설이다. 하나의 반전이 나올때마다, 그들이 빚어내는 사건들에 웃다보면 어느새 이야기는 끝나있다. 칙릿 계열의 가볍고 톡톡튀며 잘 짜여진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에게 어울리는 소설이다. 미국의 다양한 개성의 특성을 이해하는 이가 더 즐겁게 읽을거라 생각한다. 일정 나이가 되면, 사회의 관습에서 벗어나기 힘든 한국사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가득한 소설이다. 경험할 수 없는 일은 더 매혹적으로 보인다. 매혹의 향이 가득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