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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들 플라워
김선우 지음 / 예담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 자연 친화적인 외국인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촛불집회.
2008년 '광우병' 수입 소고기 수입에 관한 논란으로 서울의 시청 광장에 촛불이 올라왔다. 시위를 원천적으로 막는 법률때문에 시작된 촛불문화제는 6월 21일 추가협상 타결까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한동안 사회의 이슈였다. 뜨겁게 타올랐던 촛불이 '삽시간에' 사라져 버린 현상에 대해 좌파와 우파 사이에서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고, 한 번 꺼진 촛불은 현재까지 다시 타오르지 않았다. 촛불 시위의 현장에 있었던 시인은 '촛불'을 소재로 하여 이야기를 만들었고, 2년 전 물대포와 명박산성, 폭력, 불안, 투쟁, 배후론 등 다양한 목소리가 담겨있던 촛불에 참여했던 사건을 돌아보게 한다.
# '촛불'의 풍경을 되돌아보다.
캐나다에서 자연친화적인 오지에서 어머니와 할머니, 아버지 역할을 무리없이 해내는 동성애자 조안 아줌마와 함께 자란 지오는 15살 성년이 되자, 한국을 여행하기로 결정한다. 7살 때 기억을 잠시 잃었던 지오는 그때 자신의 기억을 떠올려서 자서전을 썼고, 조안 아줌마는 책으로 만들어준다. 꿈속에서 자신과 반대쪽인, 오른쪽 엉덩이에 점이 있는 남자아이가 나타난 꿈을 꾼 지오는 그 아이를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오기로 한다. 지오는 카우치 서퍼로 희영과 인연을 맺게 된다. 희영은 사과라는 유기견으로 인연을 맺게 된 아마추어 영화감독 연우와 거침없이 말하는 강남녀 수아와 함께 지오와 파티를 한다. 연우와 희영과 수아는 촛불을 들고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고, 지오는 반쪽 아이를 찾기 위해 예쁜 인형과 카드를 만들어 촛불 광장에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찾는다.
지오는 같은 또래의 학생들인 촛불 문화제에 참여하면서 민기, 태연 등과 친해지게 된다. 거리에 나왔던 광분하던 소를 껴안고 웅얼거리다, 할머니 숙자씨는 쓰러지게 되고, 연우와 지오는 할머니를 구급차로 운반하는데 돕는다. 언론과 경찰에서는 할머니를 남파된 고정간첩의 의혹이 있다는 방송을 하고, 민기의 아버지는 지오의 일기장의 한 페이지를 첩보로 몰아 숙자를 간첩으로 제보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배후가 누구인지 밝혀라', 촛불 시민과 물대포와 폭력 등 촛불 현장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소설의 이야기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캐나다 오지의 자연친화적인 환경과 여성의 기운이 가득한 편견없는 15세 소녀의 눈에 비친 모습을 통해, 한국이 얼마나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어긋나 있는지, 촛불문화제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의견과 생각들을 이야기를 읽으며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다.
#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경험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된다. 마음의 역사에.>
2008년 뜨겁게 타올랐던 촛불의 풍경은 누군가에게는 지우고 싶은 기억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촛불과 촛불을 이어, 혼자가 아니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따스한 추억일 것이다. 하나의 경험은 경험에 그치지 않고, 마음의 역사에 남아, 다음에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을 때, 자신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칠거라 생각한다.
간첩으로 몰아 기사를 썼던 이지훈과 죽은 할머니의 친구였던 고물상 시인 할아버지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탐심. 그거 문제 맞지요. 촛불들이 날마다 증오를 퍼붓는 지금 대통령 누가 만들었습니까. 그 사람들이 모두 투표권자들이에요. 자기 눈은 못 보고 왜 남의 눈만 쳐다보면서 손가락질 합니까? 평범한 촛불 시민들이라구요? 그 사람들 속에 죄다 괴물이 한 마리씩 들어앉아 있는 겁니다. ...... 자기 사는 동네 뉴타운 만들어주겠다고 하면 덕 보는 열에 아홉은 다시 지금 대통령 찍을 겁니다. 당장 눈앞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람한테 표 주는 거지요. 정의니, 분배니, 민주니, 이상이니, 입으로 아무리 떠들어도 아무도 안 보는 투표소 안에선 괴물이 다시 고개를 쳐드는 거라구요."
"참으로 그렇소. 그러니 저마다 자기 마음부터 잘 살펴야지비. 내 마음이 실은 내 적이라오."
"이 보오. 기자양반.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오."
"첫째. 반성 없이 그냥 넘어갈 수 있소. 둘째.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해 볼 수 있소. 보수 신문이든 진보 신문이든 자기갱신이 필요한 거 아임메. ... 진보도 보수도 서로에게 선생이 될 수 있씀둥. 참여정부 시절엔 광우병 위험하다고 사사건건 비판하다가 지금 정부 출범하자마자 미국산 쇠고기 절대 안전하다고 돌변해서리 정권의 나팔수 노릇 자처하는 거이 제대로 된 언론이라고 말할 수 있게씀둥? ... 국민이 달라지고 있는데 맨날 오십 년 전 빨갱이 타령을 해서야 쓰게씀둥. 그러러면 보수 신문에서 일 하는 기자들부터 변해야 함메. 신문사 사주가 변하지 않으면 기자들이 변해서 사주를 변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게씀둥. 사주의 입맛에 길들여지는 게 아니라 말입지. 신문사 다니는 당신들, 다들 많이 배운 똑똑한 사람들 아임메? 지식인들 아임메?"
"그리고 마지막 방법이 입지비.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 가장 어렵겠지비.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거. 잘못된 증거였다고 인정하는 거. 조작된 거라고 인정하는 거. 거기서부터 새로 출발하는 거. 그걸 뭐라더라, 기렇디, 양심선언이라 하던데 말입지."
정권은 누군가의 쿠테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모두에게 촛불처럼 작은 힘이 있다. 촛불을 잇고 이어, 큰 횃불을 만들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일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하나의 사건은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선택의 큰 밑거름이 된다. 방향을 정하지 못하면, 겉보이는 모습에 끌려 그대로 휘말리고 만다. 보수던지, 진보던지 자신의 방향을 정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할까. 잘되면 내가 잘 선택해서이고, 못되면, 남의 탓이라는 생각을 버리기만 하더라도 다음 선거부터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일이 시작될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A만 아니면 돼라는 거부권의 행사가 아닌, 내가 꿈꾸는 세상에 가장 가까운 이를 선택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헛된 공약을 이야기하거나, 특정 계층만을 위한 정책을 내세우는 이는 최소한 멀리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달콤한 언어가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내는 시인의 섬세함이 잘 녹아있는 소설이다. 잘 짜여진 플롯을 읽다보면, 다음 세상을 자연스레 꿈꾸게 된다. 그 많던 촛불을 든 이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자신을 불사르며 빛을 밝혔던 순간을 후회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잘 견디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밝혀지듯이, 시간이 지나면, 어두운 밤도 지나가고 따스한 햇살이 비출거라 믿는다. 마음 속에 촛불은 끄지 않고, 꼭 간직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