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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교통경찰의 밤
# 운전석에 앉으면 성격이 바뀐다.
은행업무를 볼 일이 있어, 어제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시내로 나섰다. 평소 차분하고 말씀이 없으신 아버지이지만, 운전석 앞에 앉으시면, 작은 일에도 크게 예민해지신다. 지하 주차장에서 지상으로 이어진 길로 가던 중, 반대편에서 나오는 차와 마주치게 되었다. 뒤로 물러나시는 아버지와 달리, 상대편 차는 주차공간이 보였는지, 시간을 끌면서 주차를 다 시켰고, 아버지는 속이 상하셨는지, 표정이 좋지 않으셨다. 지상으로 올라와 좌회전을 해야 할 상황이 되자, 또 맞은편에서 온 차가 빈자리가 하나 남았는지 또 주차를 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다음 차 역시 자신이 먼저 진입하려고 차를 먼저 들이대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런 상황들을 매일 만나면서 살다보면, 아무리 넓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도 화가 울컥하면서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욕을 하시려는 아버지를 달래기 위해 진땀을 뺐다. 사실, 아버지에게는 화를 내지 않는게 좋다고 말했지만, 마음 속에는 불쾌한 마음이 가득했다.
진입에 대한 사소한 문제에서도 감정이 얽히는데, 한쪽의 과실로 인해 나타나는 교통사고에서 우리는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까. 『교통경찰의 밤』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교통사고의 진실을 들여다보며, 교통사고는 쉽게 누구나 저지를 수 있고, 교통사고 앞에서 진실을 가려내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지 깨닫게 한다. 단편적인 사실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기심, 그리고 법규라는 장벽에
놓인 이점을 약삭빠르게 활용하는 사람들, 자신의 부주의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교통법규와 교통사고에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지 돌아보게 한다.
# 도로 위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
운전면허를 딴지 얼마 되지 않았다. 차를 타게 되면, 운전자들이 어떻게 운전을 하는지 옆자리나 뒷자리에서 지켜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있어, 도로의 상황들을 잘 지켜보고 있다. 규정속도는 60인데, 다들 80으로 달리게 되면, 단속카메라나 경찰관이 없는 이상, 교통법규를 지키기 보다, 주변 사람들의 흐름에 맞춰 운전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고 있다. 때로 초보이거나 묵묵하게 속도를 낮춰 가는 사람을 보면, 운전자들은 답답해 하고, 급한 일이 있을 때는 나 역시, 마음이 급하기도 했다. 반대로 몸이 좋지 않고, 천천히 달리기 좋아하는 운전자의 차에 타고 있을 때는, 커브 길에서 위험하게 추월하는 차를 보았을 때, 사고의 위험이 느껴져 두려웠다. 사고는 뭔가 큰 잘못을 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짧게 생각해서 지금을 빨리 넘기려는 생각에 빠지는 순간 일어남을 느꼈다. 내가 아무리 안전운행을 해도, 뒤에서 큰 속도로 달려오는 차가 박아버리면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매우 불안하고 위험한 상황이지만, 다들 무덤덤하게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6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초록색인지 빨간색인지 신호등의 색에 따라 가해자가 결정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천사의 귀』에서는 목격자의 발언의 중요성과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밀도있게 지켜볼 수 있어 좋았다. 선의로 운전하는 사람이 있어도, 악의에 넘치는 사람에 의해 충분히 가해자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분리대』에서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과 자신의 목숨을 걸고 법률의 경계를 넘기면서까지, 가해자에게 보복하는 피해자의 분노가 전해졌다. 교통경찰에게는 많은 업무 중 하나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인생의 진로가 바뀌는 중요한 문제라는 점도 함께 떠올랐다.
『위험한 초보운전』에서는 저속으로 움직이는 차량에 위해를 가한 남자가 살해자로 몰리는 과정을 통해, 살인미수 못지 않게 다른 차를 압박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생각했다. 『불법주차』에서는 내 자신의 편의를 위해 잠시한 불법 주차가 만드는 최악의 상황과 대면했다. 『버리지 마세요』에서는 운전석 창 밖으로 던지는 깡통이나 담배를 던지는 일의 위험성이, 『거울 속에서』에서는 생활습관의 차이가 만드는 사고의 위험과 사랑하는 이를 지켜주고 싶은 남자의 마음이 전해졌다.
# 오늘도 안전운행 하고 있습니까?
운전을 할 때 롤모델로 삼고 싶은 운전자가 두 명이 있다. 방어운전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신 아버지의 섬세한 운전습관과 신장이식을 두 번이나 받은, 지인이다. 지인은 조금 늦더라도 과속하지 않고, 뒤에 차가 바쁘다고 추월하려하면, 그냥 추월하도록 자리를 내어준다. 처음에는 너무 느린 것 같아 답답했었다. 하지만, 룰을 어기면서 바쁘게 달려가던 차가 큰 사고가 나서 병실에 오래 있는 모습과 타인의 교통사고를 막을 순 없지만, 내가 현명하게 대처하면 사고를 줄일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현상을 목격하면서 속도를 즐기며, 아슬아슬하게 조금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 달리는 운전보다, 조금 느리지만 여유있게 안전한게 달리는 운전습관이 중요함을 느꼈다.
『괴짜 경제학』에서 무인 베이글 판매기를 10년 이상 운영했던 이의 통계에 따르면 87프로의 사람은 선량하게 규칙을 지켰다고 한다. 도로 위에서 운전하는 사람들의 열 명 중의 아홉명은 조금 더 빨리 가는 길이 있더라도, 정해진 룰 안에서 현명한 안전운행을 하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10명 중 한 명을 만나게 되었을 때는, 화가 난다. 약속을 지키는 10명 중 9명이 있기에, 운전대를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 택시, 자동차 등 하루에도 몇 번 씩 도로 위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추리소설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건을 추적해가는 세 사람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기에,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좋은 장르라 생각한다. 왜 사건이 일어났을까를 따라가다보면, 인간의 악의와 만나게 된다. 조금 더 편해지려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악의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 사회는 조금 더 신뢰할 수 있는 공간으로 될거라 믿는다. 당장의 순간에만 집중하던 내게, 타인의 입장도 한 번 고민하게 만든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