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26
오스카 와일드 지음, 하윤숙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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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영혼과 아름다운 얼굴,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착한 마음과 아름다운 얼굴, 둘 모두를 꿈꾸지만, 하나도 제대로 갖기 힘들다. 아름다운 영혼과 아름다운 얼굴의 합을 100으로 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줬다고 해야 하나. 인생에서 겪어야 할 슬픔의 양과 기쁨의 양이 서로 같다는 말이 생각난다. 탱탱한 피부, 밤을 새워도 지치지 않는 체력은 어린 시절에만 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몸은 조금씩 굳어가고, 체력도 예전같지 않다. 본디 가졌던 것을 조금씩 잃어가는 일을 인정해야 하는 삶을 산다는 일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소설을 읽으며 도리언 그레이의 열망과 70대 재벌 총수가 자신의 재산을 다 주고서라도 젊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닮음을 알았다.
 
  아름다운 얼굴과 부유함을 모두 갖춘 청년 도리언 그레이에 흠뻑 빠져, 화가 바질 홀워드는 그의 초상화를 그린다. "젊음! 젊음! 이 세상에 젊음만한 것은 절대로 없다네."라는 찬사를 보며, 젊음의 유한성을 깨달은 도리언은 '그림이 자신 대신 늙고, 자신은 영원히 젊음을 간직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빈다. 소원은 이루어지지만, 그는 조금씩 타락하는 자신의 영혼을 대면해야 하는데...
    

#  질문거리를 던져주는 소설.
 
 
  좋은 책은 하나의 질문과 하나의 답이 숨겨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던지는 영혼과 소망에 대한 질문도 좋았지만, 교양있는 화가와 그의 친구 헨리경, 도리언과 도리언을 사모한 시빌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들에 음미할 내용이 많았다. 
  
  아 아름다운 사랑. 당신은 내 영혼을 감옥에서 꺼내어 자유롭게 했어요.  진짜 현실이 어떤 건지 내게 가르쳐줬어요.  당신은 내게 뭔가 소중한 것을 가져다 주었어요.  모든 예술은 그것을 그대로 반영한 것일 뿐이지요.  난 무대가 싫어요. 내 안에 아무 느낌도 없는 열정을 흉내 낼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나를 불태우는 이 뜨거운 불을 흉내낼수는 없어요. 

  사랑에 빠져있을 때의 열정, 사랑이 버림받았을 때의 불안, 공포, 낭만주의 시대의 작품이다 보니, 짧고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의 온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이보게, 시골에서는 누구나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네.  거기엔 유혹이 없으니까. 문명이란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거든. 문명에 이를 수 있는 길을 딱 두가지네. 하나는 교양을 쌓는거고, 다른 하나는 타락하는 거지. 시골 사람은 그 어느 쪽도 접할 기회가 없어. 그래서 정체되어 있는 거라네.
 
  오스카 와일드가 살았던 시대의 귀족과 농민의 차이, 교양에 대한 관점, 현대사회의 풍경과의 차이 등이떠오른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여자들이 잔인한 마음을 제대로 알아볼까봐, 노골적인 잔인성을 알아볼까 봐 걱정이네. 그들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원초적인 본능이 있어. 우리는 이런 본능을 모두 놓아버렸지만,  여자들은 여전히 노예 상태로 남아 주인님을 찾고 있지. 우리 모두 자기 안에 천국과 지옥이 함께 들어 있지요, 바질.
 
  인생은 늘 선택의 버튼을 누르며 살아간다 생각한다. 늘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한다. 최선보다 차악을 피해 선택하는 일이 흔하다. 자신의 모든 걸 걸면서 소망하기를 원하는 도리언 그레이의 선택이 부럽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다. 하지말라는 건 다 아름답고 달콤하다는 이야기처럼, 인생의 길 역시, 늘 유혹과 선택의 갈림길에서 좋은 선택을 하기도 하고, 잘못된 선택이 늘 마음에 남아 후회로 남아 자신에게 상처로 남기도 한다.
 
  유혹이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늘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에 많은 악의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보낼 수 밖에 없는 도리언 그레이의 모습을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더 예뻐지기 위해, 더 사랑받기 위해, 더 잘나보이기 위해, 많은 유혹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풍경이 보인다. 초상화의 얼룩된 그림만큼, 그의 용모는 더 아름다워졌지만, 그는 늘 괴로워했다. 보이지 않는 영혼을 팔면서도 괴로워 하는 인간의 모습이 양심적인 모습인지, 바보같은 모습인지, 단정짓기 어렵다. 강렬한 햇살을 받은 물체일수록, 더 강한 그림자를 남기다는 말이 생각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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