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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의 서울대 말하기 강의 - 소통의 기술, 세상을 향해 나를 여는 방법
유정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 말하기, 참 어렵다.
말하기에 관한 어려움을 피부에 와 닿도록 느낀 적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개학을 하고 한 달이 지났을 때로 기억한다. 길고 긴 자율학습과 지친 학생들을 위해, 기억과 학습에 좋은 방법을 알려주시기도 하고,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하셨던 담임선생님께서 종례를 마치면서 놀라운 제안을 하셨다. 담임선생님이 종례를 하는 때에는, 반장을 시작으로, 어떤 주제라도 상관없으니 1분 스피치를 하고, 노래 한 곡을 부르도록 했다. 반장이 제일 먼저 하고, 다음 차례는 반장이 지목한 이가 하는 릴레이식였다. 스피치와 노래를 부른 다음, 다음 학생을 지목할 때면, 발표자의 눈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시선을 피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얼굴이 빨개지고, 더듬더듬 거리면서, 모두가 한 차례의 발표를 끝났을 때, 서로 조금은 더 친해진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친구들 앞에서 말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직접 이야기를 해 보니, 단상에 앞에서 무언가 말을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잘 들어주는 일이 말하는 이에게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3명이서 친구들끼리 이야기를 잘 하던 아이가, 생각과 달리, 단상에서 발표할 때는 더듬더듬 떠는 모습과 평소에 말이 없던 친구가, 단상 앞에서 씩씩하게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들이 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트로트와 댄스곡을 불러,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말하기가 어렵을 뿐 아니라, 오랜시간 함께 학교에서 생활했지만, 서로가 알지 못하는 각자만의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느꼈다.
가족, 연인, 친구라 하더라도, 내가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으면, 그들이 내 마음을 알 수 없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통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알면서도, 말과 글을 통해, 다양한 매체의 수단을 활용해서,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상대의 마음을 듣기 위해 노력한다. 사회생활이 힘든 일 중 하나는, 상대의 마음을 알더라도, 적확하게 그 사실을 전하지 못했을 때 느끼는 무력함, 마음과 달리 다르게 발언하는 자신의 말하기, 듣고 싶지 않는 말을 들어야 하는 소통의 어려움이 큰 역할을 한다 생각한다. 스피치와 말하기에 관한 책이 많이 소개되어 있지만, 설득적인 말하기와 토론의 발언에 무게를 둔 책들이 많다. 『유정아의 서울대 말하기 강의』는 말하기의 본질에 대한 깊은 바라보기를 통해,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많은 말하기 책들 속에서 빛을 잃지 않은 이유이다.
# 한 학기 말하기 강좌의 강의실을 옮긴 듯한 알찬 내용들.
서울대에서 5년간 강의했던 말하기 강좌의 강의록을 정리한 형식의 책이다. 말하기를 배워야 하는 이유로 저자는 말이 소통의 수단임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한다. 세상과 타인에게 말을 걸고 싶지 않는 이는, 말을 잘 해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자신’만의 입장을 상대가 늘 이해해 줄 수 없듯이,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의 말하기 방식을 돌아보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다. 남들 앞에서 말할 때 자주하는 말하기 불안 증상이, 이제까지 자신이 살아온 말하기에 대한 경험과 마음의 자세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타인과 잘 소통하기 위해서, 자신과 먼저 소통해야 하듯, 내가 어떤 불안감을 가지고 있고, 이 불안감의 원인을 살펴,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감은 높아지고, 상대 역시, 말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인정하게 되며 상대의 발언에 귀기울여 듣는 배려의 마음이 생긴다. 잘 들어주려는 노력은, 자연스럽게 말하기의 능력을 키운다는 점을 배웠다.
말하기의 맞춤 강의 시리즈로 대화, 인터뷰, 토론, 정보 스피치와 설득 스피치를 할 때 알아두어야 할 사항과 범하기 쉬운 실수와 개선점에 관한 정보도 좋았지만, 말하기를 할 때 가져야할 소통의 마음가짐과 발성과 발음, 낭독의 기술의 중요성을 설명한 1,2장의 내용이 알찼다. 좋은 재료(바른 언어,이야기의 내용)를 확보하려는 노력과 좋은 쟁반(바른 발성)이 좋은 음식을 만드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비유가 좋았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자신에 걸맞는 발성을 찾아,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말하기 방식을 선택한 후, 바른 언어와 바른 발음을 하는, 형식적인 틀이, 말하기에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읽고 따라해보며 인정하게 되었다.
# 잘 선물했구나.
먼 거리에 있는 지인을 2년만에 만날 기회가 있었다. 뜨거운 햇살과 선선한 저녁날씨를 걷고,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지인이 학교 수업시간에 발표하는 일이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헤어지기 전, 기차역의 서점에 들릴 기회가 있어『세계의 끝, 여자친구』사인본과 함께, 서점에서 이 책을 사서 선물했다. ’말하기까지 공부해야 하나요?’라는 부담섞인 농담도 들었지만, 주변의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주라며 안겨주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선물한 건,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타인을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메시지를 잘 전하는 소설이었기 때문이였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통의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은 말하기와 글쓰기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말하기는 천부적인 능력이 아니라, 누구나 노력하는 마음을 가지고, 꾸준히 실천하면 가능한 일이기에, 그가 말하기에 힘겨움을 느꼈을 때, 이 책이 해답은 아니더라도, 지인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길잡이가 되어줄거란 마음으로 2장까지 밖에 읽지 못했지만, 그에게 선물했다. 시간이 흘러, 책을 다 읽고 나니,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꼭 필요한 말하기의 기술과 마음가짐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설교가 될 것 같아, 차마 얼굴보고 있을 땐 이야기 하지 못했다. 글을 통해, 대신 그때의 마음을 남겨둔다.
가장 좋은 말하기는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가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대화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몸짓, 말 한마디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는 그 시선이, 아이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더욱 더 자신있게 말을 하는 아이로 만들어 준다 믿는다. 사랑에 빠진 이가 전하는 언어는, 그 언어가 세련되지 않더라도, 연인에게는 매혹적인 언어로 전달된다고 믿는다. 진정을 담은, 진심이 담긴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믿는다. 잘 들어주는 이가 없다면, 잘 말하는 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책이 인생을 바꿔준다는 글을 좋아한다. 책이 인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라도 변화해야 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에게, 그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 그를 변화시키게 만드는 힘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는 글의 힘을 믿는다. 변화하려는 마음만 있다 하더라도, 꾸준히 실천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변화하기 힘들다. 말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더 나은 말하기를 열망하는 이에게, 시간내어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책에 있는 내용을 다 알고 있지만, 말하기가 힘들다면, 정보의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잘 말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간절히,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쪼개서 자신을 돌아볼 용기를 지닌 이에게, 특히 청소년과 대학생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