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 책과 사람, 그리고 맑고 서늘한 그 사유의 발자취
김풍기 지음 / 푸르메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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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책하면 떠오르는 몇가지 이미지들.
 
 
  조선시대와 책을 연관해서 생각을 하다보면, 몇 가지 이미지가 떠오른다. 김홍도 그림에 나오는 회초리를 맞아가며, 공부하던 학동과 훈장 선생님, 선비와 정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다, 글과 시를 남겨 정표로 간직한 일도 눈에 그려진다. 금서로 지목되면, 소장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큰 처벌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몰래몰래 책을 전달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벼슬을 얻기 위해서는 논술처럼 과거라는 제도에서 글을 잘 써야 했고, 그 과거의 병폐로 정해진 글만 읽는 형식적 글쓰기의 바보로 만드는 교육을 한 점은, 현대 교육의 경직성과 닮음을 느낀다. 뜻 있고 의미있는 책들이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 팔리지 않으면 출간조차 되지 못하는 현실, 안타깝다. 태어나면 신분이 고정되어, 글을 배우는 일이 특권이 된 사회를 생각하면, 현재를 사는 일이 그렇게 슬프지 만은 않구라는 생각을 했다.
 
  드라마와 영화, 책을 통해 조선시대의 이야기를 접하곤 하지만, 조선시대에 유행하던 책들이 어떤 경로로 보급되고 유통되었으며, 지금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모른다. 관심이 없었다. 천자문과 경서를 읽는 선비들의 딱딱한 이미지만 떠오른다. 한 시대를 이끄는 새로운 사유와 지식은 책의 유통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저자는 한 권의 책으로 학파가 만들어지고, 책을 통해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왕조의 몰락으로 지금은 소외된, 당대와 후대의 조선의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책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 한 권의 책, 뒤에 스민 다양한 의미들.
 
 
  많은 전란 때문이었을까? 인쇄술을 가진 기관이 권력의 선택적 책의 출간 때문이었을까. 책과 책 속에서 소개된  많은 책 중, 많은 책들이 전해지지 않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남아있는 책들의 조각 사이에서, 원본이 아닌, 필사본과 이본들의 연구를 통해, 조선시대 서재들의 책들을 조각난 퍼즐을 맞춰가듯, 의미를 찾고 있는 국문학자들의 노고가 느껴진다.
 
  조선과 서가라는 단어를 보면 재미없네, 딱딱해, 지루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딱딱한 분위기를 독자의 관심을 끄는 에피소드로 채우고, 소개된 책의 저자와 유통경로, 내용을 간략히 설명한 후, 지금 책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짚어준다. 지인에게 책을 빌렸는데, 책을 분실했다가, 신문광고를 내고, 광고를 본 다른 이와 연결되어 책을 다시 찾게 된 에피소드에서는 책을 소중히 생각하는 학자의 마음과 어디에 머물지 알 수 없는 책의 인생이, 인간의 삶과 닮은 부분을 생각했다. 재미있게 읽다보면, 정보도 얻게 되고, 책을 읽는 의미에 대해 알게되고, 읽고 난 뒤, 책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남겨진 완벽하지 않은 책이 많은 정보를 읽고, 생각거리를 던져준다는 사실이 좋았다. 발해고를 통해, 앞 시대의 역사정리를 마무리 하지 못하는 일이, 현대에 어떤 영향를 미치는지, 남북관계에 대해 다시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연암집의 보존에 일정 역할을 한 친일파 박영철을 통해, 자신이 한 일의 역사적 의미를 인식하지 못한 채 눈 앞의 일을 대하는 인간을 대면하게 된다. 딱딱한 성리학의 거목으로 알고 있던 율곡 이이에게서 좋은 시를 통해, 사람들의 수준을 높이려는 마음을 엿보며, 지구에서 볼 수 없는 달의 뒷모습 같은 새로운 모습을 재발견하기도 했다.
 
 
# 긴 호흡으로,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
 
 
  기획회의라는 격주간지에 실린 글이다. 한 호흡에 읽기보다, 일주일에 한 번이나, 서가에 두었다가 문득 생각이 날 때, 끌리는 글로 읽기 좋은 책이다. 조선지식인의 서가도 돌아보고, 자신의 서재도 살펴보면 좋겠다 생각한다. 한 권의 책에 스민, 시대의 풍경과 사회의 모습, 개인의 운명과 책의 운명, 그 책을 통해 인생이 바뀌어진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한자로 된 멀게만 느껴지던 책이, 컴퓨터 옆 서가에 있는 책들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한 시대의 변화를 통해, 지금은 사랑받지 않은 많은 책들을 보니,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책들도 시대가 변화게 되면, 사라지고 잊혀지고 말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후대에 사랑받지 못하지만, 내가 원하면 얻을 수 있는 책들에 스민, 편집자의 노고와 저자의 땀흘린 글에 대한 정성을 알아주는 일은, 책을 읽고 책이 주는 의미에 대해 한 번 곱씹어보게 된다.
 
  조선시대와 관련된 저자는 정민 선생님과 안대회씨가 떠오른다. 새 책을, 챙겨보게 되는 저자가 한 명 늘어 좋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건,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의미를 넘어, 다양한 책의 유통의 관계자와 인연을 맺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과 정보화 시대의 발달로, 책의 흔적을 남기면, 다른 이에게 영향을 주는 일이, 글을 남기는 이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루어진다. 멀게만 느껴졌던 조선 지식인과 작은 유대의 끈이 연결된 느낌이다. 이미 존재하지만, 사람들에 손길이 적어 수풀로 가려진 길을 알게 된 기분이다. 내가 걷기 전에, 길을 걸었던 수 많은 사람들, 그 길을 알려준 저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 글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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