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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들
로빈 브랜디 지음, 이수영 옮김 / 생각과느낌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 옳다는 걸 알지만, 많은 걸 잃을 수 밖에 없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인생은 선택이다. 수많은 선택지 위에서 우리는 선택을 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 결과가 좋아 좋은 선택을 했다고 안심하기도 있고,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인해 선택을 후회하기도 한다. 어떤 선택을 하던지, 결과는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미나는 근본주의적 기독교에서 자란, 보수적인 집안의 하느님을 믿고 있는 소녀이다. 기독교 신념이 강했던, 교회 친구들이 저지른 종교적 신념아래 벌인 잘못으로 인해, 한 친구-데니 피어스가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미나는 미안한 마음에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를 본 부모님이 교회아이들에게 소송을 걸었고, 교회 사람들에게 보험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부모님은 그 편지를 통해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종교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빠진다. 학교에서는 교회 친구들의 따돌림이 계속되고, 집에서도 불편한 생활을 해야 하는 미나는, 하루하루가 괴롭다. 힘든 상황이 올때마다, 미나는 하느님께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과학시간에 셰퍼드 선생님의 생물수업에서, 교회 아이들은 진화론 수업을 거부하고 창조론을 수업해 줄 것을 요구한다. 셰퍼드 선생님은 그에 반대하고, 목사님의 발언과 여러가지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지만, 셰퍼드 선생님은 자신의 포기하지 않는다. 일련의 소동 속에서 미나는 실험 파트너이자 유일한 친구인 케이시를 만나게 된다. 케이시에게 이성적으로 호감을 느끼지만,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와 여러가지 걱정으로 고민을 하게 되는 미나. 케이시의 누나에 의해 시작된 성경소녀의 칼럼을 쓰며, 조금씩 성장하게 되는데...
# 신념을 기반으로 한 강요된 폭력과 신념을 거부하고, 진화해 가는 돌연변이들..
실제 미국에서는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논쟁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근본주의적 종교단체에서는 과학시간에 진화론과 함께 창조론도 수업에 넣어달라는 요구를 하고,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제기한다. 도저히 변하기 힘들어 보이는, 교회와 부모님의 환경 속에서, 힘들어하면서도 미나는 조금씩 현실을 이겨나간다. 진화론에서 개체가 환경에 맞춰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돌연변이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논쟁적인 사안을 소설로 풀어낼 수 있는 저자의 용기에 감동했다. 소설을 통해 실제 사회에서 토론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의 차이를 논쟁하는 모습은 적과 나를 가르는 일에 익숙한, 한국사회와 다른 미국사회의 힘을 엿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지적설계론이 가당치도 않은 상황이지만, 교육부관계자와 특정종교를 믿는 근본주의적 사람들이 장악하게 되면, 다양한 방식으로 교사의 교육권이 훼손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든다.
신념을 가지는 일이, 종교를 깊이 믿는 일이 나쁘다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도 그래야 한다는, 그렇게 하는 일이 너희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오만은 그 종교까지 거부하게 만든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기독교만이 아니라, 불교, 이슬람교, 천주교 등 모든 종교에서 종교의 배타성으로 인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비종교인이 그런 오해를 할 수 있게, 더욱 많이 참고, 인내하고 모범을 보여야 함을 소설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주제는 논쟁적이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부모님과 하느님을 사랑하는 보수적인 소녀가 좀더 성숙한 생각을 하는 과정을 하는 성장소설이다. 주어진 룰만 지키려던 미나가, 그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을 하고, 그 책임을 감당하면서 행동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아이와 어른의 차이는, 선택과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이라 생각한다. 진화론 논쟁과 사건을 거치면서, 미나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간다.
책에서는 지적설계론과 진화론의 대립이지만, 배타적인 시선의 피해에서는,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민족의 문제라 생각한다. 외국인과 함께 학교를 다니지 않은 황인종과 어울려 다니는 삶이 익숙한 아이들과 1990년 말부터 급속도로 증가해서 100만명이 함께 생활하는 다민족사회에서 성장하게 되는 5세 미만의 아이들은 다양한 인종의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함께 공존해야 한다. 생물학적 특성으로 인간의 자신과 닮은 사람들과 가까이 하기 마련이다. 야생의 법칙으로 한다면, 다수가 힘이 세고, 타인종들은 그에 대한 피해를 감수하고, 싫으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 생각하면 생각할 필요로 없고 마음도 편하다. 하지만, 생각을 하는 인간이고, 함께 공존해야 하기에, 민족과의 갈등을 넘어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익히고, 배워야 한다.
민족이라는 허상 아래, 우리민족이라는 틀 안에서 버텨온지 50년이 지났다. 경제적으로 힘겹고, 서로 함께 뭉쳐야 잘살아 보자라는 마음이 근대화를 만들었다면, 경제적으로 성장한 지금은, 어떻게 함께 세계시민으로 공존해야 할지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라 생각한다. 그의 얼굴색에 관계없이, 특히 백인종과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인에 서로 다른 시선을 보이는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생각한다. 이성으로는 그럼 안된다 생각하지만, 실제 대면하게 되면, 편견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다. 나중에 코시안 아이들이 성년이 되었을 때, 사회의 유리벽으로 인해 차별과 고통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게, 감싸안는 일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미 감지되었지만, 당장 드러나지 않기에 다들 모른척 외면해버린다. 태풍이나 산불처럼, 닥치고 난 후에야 소잃고 외양간 고치듯이 해결하려 하지만, 그때는 갈등의 골이 깊어 해결이 쉽지 않다. '하워드 워즈'의 신화가 한국에서는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별과 힘겨움이 아닌, 당당하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한국사회라 자신할 수 있을까?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의 갈등에 치중하기 쉬운 사람들의 심리에서, 빼놓지 말고 논의해야 하는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