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불안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삶의 지혜.
 
 
  비정규직, 인턴, 노동 유연성 등등 21세기는 불안의 시대이다.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다들 아무것도 없었을 땐, 연대라도 가능했지만, 소수만이 탈 수 있는 동앗줄이 있기에, 다들 연대보다는 그 줄을 잡으려 노력한다. 조선전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의 모음인 임꺽정은, 이런 불안에서 자유롭다. 그럭저럭, 하는 일 없이도, 어떻게 버둥기면서 자유롭게 사는 청석골의 일곱 두령들은 신분은 비천하지만, 누구보다 자유롭게 한 세상 살다 떠난다.
 
  열하일기를 열정을 담아 소개했던, 고미숙씨 였기에, 더욱 흥미가 갔던 책이다. 수유+공간이라는 비정규직의 지식공동체에서 활동하던 저자는 우연히 벽초 홍병희의 책, 임꺽정에 관한 책을 쓸 권을 권유받는다. 머뭇머뭇하던 저자는 한 번 책을 읽고, 등장인물들이 전하는 이야기에 흠뻑 빠진다. 정착민에서 유목민으로 넘어가는 경계의 시대, 유목인으로 흠뻑 살았던 그들의 삶을 지켜보다보면, 불안과 두려움의 시대를 이겨낼 지혜를 얻을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신분과 예의라는, 정착민에게 필요한 규범이 벗어난 자리에는, 우정과 연대가 자리를 채운다 뜨거운 정으로 연대하는, 순환이 멈추지 않는 공간에는 어울림의 문화가 존재한다.
 
 
# 사라져버린, 우정의 재발견.
 
 
  저자는 근대사회에서 사라져 버린, 우정의 끈끈한 연대를 청석골의 일곱두령의 우애를 통해 재발견한다. 자신의 컴플렉스를 다 드러내고, 밉지 않은, 마음이 끌려,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어도 아깝지 않은 존재, 가부장의 제도 이전의 그곳에는, 혈연공동체라는 사돈의 팔촌까지 함께 어우려 사는 문화가 있었고, 그 문화는 가부장의 책임의 굴레에서 자유롭게 해준다.
 
  그냥 배우고, 목표를 가지고 집중하다보니, 백수에서 달인으로 변한다. 일곱두령들을 보며, 공부의 의미와 달인의 매력, 인적 네트워크의 소통과 영향력을 발견했다. 신분은 천했지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벗과 함께 도를 향해 성장해가는 스승이 있는 삶을 발견했다. 그런 삶을 살려면, 정착민의 규범의 틀에서 벗어나는 용기가 필요하다.
 
  좋은 책은 사유의 지도를 다시 그려준다는 저자의 말에 동감한다. 저자의 글을 읽다보니, 임꺽정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정보화 사회가 지속될수록, 유목인의 삶을 준비해야 함을 느낀다. 얼마나 더 많이 버는가가 아니라, 돈 없이 얼마나 풍요롭게 살 수 있을지 연구하는 저자와 저자와 꿈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기획하는 일도 엿볼 수 있다. 공부를 매개로 하여, 따로 또같이, 활동하는 동번서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저자의 행보를 보니, 배움과 삶의 일치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들의 실험이 성공하여 청년들이 백수라는 자신의 위치에  절망하거나 초조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용기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배움의 터가 되어준다면 더욱 좋겠다.
 
  일탈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는, 새로운 삶을 고민하는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임꺽정을 읽어 본 후, 고미숙씨의 책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마음 고운, 지인과 함께 읽으며, 우정을 더욱 도탑게 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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