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방 - 내가 혼자가 아닌 그 곳
언니네 사람들 지음 / 갤리온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 상처와 아픔을 간직한 그녀들, 언니네 방에 모이다.
 
 
  한국인에게만 있는 '화병'은 가부장적인 질서에 눌려, 화를 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꼭꼭 담아두었던 상처와 아픔이 쌓여 생기는 병이다. 비밀은 편견과 사심없이 진심으로 내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없기에 비밀이 된다는 책 속의 글귀처럼, 누구에게 토로할 수 없어 쌓이는 마음의 어두운 작은 조각이라 생각한다. 인터넷이 발전하기 이전에는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 연대와 익명의 끈이 이어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익명이라는 보호장치가 서로의 상처를 감싸안는 작은 둥지가 되어 상처와 아픔을 토로하게 하고 낫게 만든다. 여자이기에, 말하지 못했던 아픔, 사회적 소수자이기에 겪어야 했던 상처들을 글을 통해 치유하는 공간이 언니네(www.unninet.net)이다.
 
  남성이기에, 언니네에 가입이 불가능하다. 독자들에게 가장 공감을 받았던 글들을 보며, 차마 남성들에게,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아픔을 읽으며, 아, 이런 아픔을 마음속에 감추며 살아가고 있구나라고 짐작해 본다. 차별은 차별을 하고 있는 이는 잘 느끼지 못한다. 지배계층이 그들의 논리로 피지배계층을 착취하고, 부유한 이들이 가난한 이의 소소한 아픔을 이해하기 힘든 것처럼,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는 그 힘겨움을 이해할 수 없다 생각한다. 그저 짐작만 가능하다. 정말 평등한 사회라면, 언니네의 존재의 이유는 없어진다.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때론 성차별적인 논리에 빠져 상대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차별을 묵인하고 있지 않았는지 고민해 본다. "몰랐어,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 말을 하지 그랬니"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는 피해자만이 알거라 생각한다.
 
 
#  여성이 행복해지는 그 크기만큼, 남성이 져야하는 그 무게도 줄어든다.
 
 
  섹스, 성정체성, 성폭력, 차별에 관한 이야기들, 공론화하기 곤란한 이야기들이 책 속에 가득 담겨있다. 지나친 자신감으로 배려가 없는 남성과 자꾸 확인을 통해 무능함을 벗어나려 하는 남성, 자위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마음속의 검열, 예쁜 여자, 착한 여자, 외모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살고 싶지만,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관습이라는 편견으로 채워진 우리 사회를 언니네 방의 글들은 거울이 되어 비춰준다.
 
  가부장제의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티나지 않는, 많은 수고스러운 일들 당연히 해야하는 풍조때문에, 심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심했다면, 남성 역시, 권위있어 보여야 한다는, 남자다워져야 한다는 사회의 풍조에 희생당하고 있다. 하지만, 남성보다 여성이 직접적으로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기에, 여성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출산과 군대라는 진부한 싸움을 넘어, 서로가 공존하기 위해, 다음 아이들이 이러한 차별의 연속에 빠지지 않게 하기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100년 전, 첩을 두는 문화가 당시 사람들에게 그렇게 큰 제약이 아니였지만, 지금의 사회적 인식으로 용서받지 못하는 것처럼,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통해 그들이 얼마나 아파하고 힘겨워하고 있는지 외치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들의 생각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책 속의 글을 통해 우리 사회에 아직도 얼마나 많이 보이지 않는 차별이 많은지 생생하게 인식하게 하는 점이 책의 장점이다.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도 10년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지만, 동사무소 또는 사회적 의식에서 그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전무하다 생각한다. 동성애자들이 없어 그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커밍아웃을 했다가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분위기 때문에, 그들은 숨어서 그들끼리 연대한다고 생각한다. 동성애자 여성은, 사회적 구조에 가장 억압받는 대상이기 때문일까. 그들이 언니네 방에서 자신들이 경험하는 사회적 피해를 토로하며, 언니네 방이 있어 행복하다는 글을 볼 때, 얼마나 사회에서 힘들게게 하면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성애자를 난치병처럼, 바라보는 사회적 의식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여전히 어두운 그늘에 가리워져 있을거라 생각한다. 네 주변에 동성애자와 장애인 관련 시설이 들어오면 집값과 아이들 교육에 좋겠니라는 인식 뒤에 숨어있는 무서운 폭력에 몸서리쳐진다.
 
  사회의 인식은 우리가 자라기 전에 고정되어 있지만, 우리가 성인이 되었을 때 능동적으로 행동하면 바꿀 수 있다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무관심하며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두운 곳에서 힘겨워하며 아픔을 토로하는 사람이 늘어간다고 생각한다. 절대적 빈곤보다 더 무서운 일은 상대적, 사회적 외면이다. 당장 한 개인이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당신이 사회적 소수자, 여성, 차별을 받는 대상에 보내는 작은 시선이, 어둠속에서 혼자 아파하는 이에게는 햇살 가득한 위로와 살아가는 희망이 될거라 믿는다. 언니네에 모여드는 사람이 많아지기 보다, 언니네에서 외치는 이야기가 사회속에서 공론화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녀에 관계없이 인간이라면, 차별에 대해, 인권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생각한다. 언니네에서 외치는 이야기들은 여성을 위한 외침이 아닌, 인권에 관한, 함께 동등하게,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당신이 알아두어야 할 이야기들이다.
 
  당연하다 생각되는 결혼, 제사, 데이트, 키스, 섹스, 성정체성, 등등 익숙한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뀔 때, 우리가 함께 살아숨쉬는 풍경은 늘어날거라 생각한다. 깨어있기를 원하는 당신을 위해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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